201916일 일요일, 맑음. 소한


엄마는 저렇게 나이가 들었는데도, 내 어릴 적 늘 이 날이면 춥다는 나더러 "그럼, 춥지! 대한(大寒)이가 소한(小寒)이네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단다. 나갈래면 옷 단단히 입고 나가거라!" 하셨던 말을 기억하고 계실까? 늘상 실내온도 22도에 살고 계시는데 소한이니 춥다니 하는 말들이나 그 생생한 의미가 엄마의 뇌리에 남아있을까?


이빨치료로 인해 가래토시가 서서 음식을 먹기는 고사하고 입을 벌리기도 힘들다. 어름찜질을 하면서 하루를 버텼다. 그런데 송곳니와 남아있는 이 네댓 개로 모든 음식의 국물만으로도 밥 한 그릇은 꼭 비우는 울 엄마! 엄마한테 많으면 좀 남기세요.’ 해도 너희가 낸 돈으로 먹는 밥이다.’ 라며 반찬은 못 잡수셔도 밥이라도 정성스레 비우는 엄마의 모습은 기도하듯 잡수시는 식사다. 때로는 눈을 감고 드시는 까닭에 하는 말이다. 나도 오늘 점심으로는 순두부들 데워 반 공기 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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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푹한 날씨다. 날씨도, 마음도, 오늘 찾아온 사람들도 모두 따사롭다. 아침 7시에 빵을 구워 들고, 어제 구운 케이크는  공소에 어제 가져다 놓았다. 모니카씨가 처음 성당오는 길이 쑥스러울까봐 동행해주러 갔다. 집을 나와 나랑 걷던 그니가 길가에 세운 차에서 내리는 남정을 보더니만 공소와는 반대로 부지런히 걸어간다. 뒤따라가며 왜 그러냐?’니까 목사님이 오신 것 같아서...’ 란다. 자세히 보니 주차중인 우리 이사야여서 안심을 시키고 공소로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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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의 남편이 아플 때 원터마을 목사님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니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벨라데타였고 아버지가 바오로였으며 자신도 세살에 모니카로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여인이라면 자기 신앙의 뿌리를 찾아가는 건 당연한 일인데... 더구나 경주에서 가톨릭여고를 나온 사람인데... 하지만 새 신자 찾기가 몹시 어려운 시골교회에서 그간 공들인 교인을 놓치는 일도 마음아픈 일이리라. 하느님 눈으로 보시면 어느 종교 어느 교파도 성심껏 믿으면 다 어여쁠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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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의 공현 대축일인데 반갑게도 단성 사시는 임신부님이 미사를 드려주러 오시면서 봉재언니, 귀요미 미루, 그리고 이사야가 함께 와서 우리 공소신자들에게 공현(公顯)을 했다. 방가방가였다


신부님은 강론 중에, 먼데서 구세주 나셨다고 동방박사들이 찾아오는데 정작 예루살렘 시민들은 알지도 못했고, 베틀레헴으로 따라나서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그 아기와 생일이 비슷한 아기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잔인함을 상기시키셨다. 우리 신앙인들도 자기 주변에 와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마따나 우리 옆에 있는 하느님’(il Dio della vicinanza)‘을 몰라보는 맹목을 일깨우는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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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오늘 우리를 찾아오신 신부님,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온 모니카씨를 축하하는 박수 소리가 컸다. 각자 집에서 한 가지씩 마련해 온 음식을 내놓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새해맞이 대축일을 지냈다.


공소를 나와 임신부님이 휴천재를 처음 방문하셨다. 휴천재의 고요와 멀리는 지리산, 동쪽으로는 왕산이 보이고 앞산과 그 뒷산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쉬는 정경에 우리들 마음은 참 한가로웠다. 향기로운 커피, 비노산또에 찍어먹는 깐뚝치니, 잔잔한 주변 얘기들... 늘 만나도 할 얘기가 많은 우리지만 새해맞이 모임은 날씨보다 더 따사롭다.


손님들이 가시고 나는 책바오로 수녀님들이 성탄선물로 보내준 책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를 읽었다. 내과의사이면서도 어린이처럼 성령의 이끄심에 순이 믿고 따르는 안득수 선생의 모습에서 많은 걸 느꼈다. 의학을 하는 사람은 약이나 처방할 텐데, 마귀 들려 종일이나 밤새도록 누군가와 횡설수설하는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나라면? 어린아이처럼 온전히 믿고 행동하는 신앙이 절실히 필요해진다, 특히 지식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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