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1일 월요일, 맑음


시골 사람들이 한양에 입성하려면 집신 미투리 한 다발을 엮어 한 짐을 짊어지고 몇 날 며칠, 저 남쪽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는 한 달도 넘게 걸렸으리라.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서 그런 일은 없지만 한번 서울엘 가려면 벼르고벼르다 날 잡는 게 큰일이고 당일에 다녀오려면 캄캄한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


달포나 서울에 있으면서도 멀쩡했던 이빨이 어제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밤부터는 욱신욱신 견딜 수가 없다. 우리 치과 주치의 곽선생님에게 전화로 상의했더니 우선 봐야 한다고, 임플란트를 하든 금니를 하든 직접 봐야 안다고 대답한다. 워낙 이가 약한 나로서는 곽선생님 말씀에 절대 복종. 새벽 다섯 시가 좀 넘어 개나리봇짐을 싸서 차에 싣고 함양읍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지리산 백무동에서 강변역까지 가는 첫차는 630분에 떠난다. 수동, 안의, 서상까지 둘러가는 완행이어서 서울까지는 40분 정도 더 걸리지만 다음 차가 820분이니 어쩔 수 없이 이 차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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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인심이 워낙 안 좋아선지 버스 안의 온도가 10. 한 시간이 지나도 15도 이상 안 올라간다. 기사 아저씨 자리가 제일 추우니 뭐라고 불평을 할 수도 없다. 죽암휴게소에서 15분간 쉬는데 차에서 얼굴을 본 사람들끼리 난로 앞 자리를 내주며 몸 좀 녹이라권유한다. 역시 시골버스다운 인심이다. 10시가 지나서야 겨우 20도에 오른 버스 안! 이젠 우리가 내리기 싫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추위에 구부정한 어깨가 보는 이들한테도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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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곽섐은 친정식구처럼 날 살갑게 맞는다. 오토파노라마를 찍었는데 사진을 보니 그동안 선생님 신세를 많이도 졌다. 성한 이빨이 거의 없이 사진 속에서 금으로들 반짝인다. 선생님은 말썽쟁이 어금니의 뚜껑을 벗겨 보고 20여 년 전 당신이 신경치료해서 씌웠는데 오래도 썼다며, 마지막 어금니여서 빼고나면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데 그걸 심으려다 뼈가 상하면 안 되니까 한전병원에 가서 빼고 전문의 단선생에게 임플란트를 가란다.


곽섐과는 정말 긴 인연이다. 97~98년 두 해에 걸쳐 안식년을 보내는 우리를 찾아와 이탈리아 여행도 함께 하고, 2005년에는 남편 서교수와 아들까지 관저를 찾아왔다. 우리도 우리 부부로 부족해서 두 아들, 며느리와 두 손주까지 그 집 공짜클럽리스트에 올라 신세를 지고 있다. 스켈링은 물론 성씨집안의 치아에 관한 한 곽섐이 있어 걱정이 없었다.


내 입속의 치아상태가 꼭 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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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0년지기 가정의와 헤어져 이를 빼러 한일병원으로 갔다가 꼭 그럴 필요가 없을 듯 해 단선생에게 곧장 갔다. 같은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한 오빠는 친구의 동생인 단선생에게 지리산에서 농사짓는 불쌍한 할메가 오니 잘해 주고 돈은 조금만 받으라고 전하라했다니 얼굴 화장도 지우고 손에 흙이라도 대충 바르고 왜바지 차림에 갈 껄 그랬나? 오빠 친구의 동생이자 우리 막내 호연의 초등학교 동기에다 곽섐의 바로 윗반으로 친하다니 나의 어떤 변장이나 위장술도 안 통할 듯하다.


단선생의 곽섐 평.’ 자기가 한 강의를 정리했는데 강사보다 더 잘 정리되어 있어 학생들 사이에 그 노트가 인기리에 돌아다녔단다, 베끼러. 단선생은 오빠의 소개반협박반에 나를 반기고 아주 친절하게 모든 걸 진행해 주었다. 그간 20년간 쓰면서 날 귀찮게 하던 부분틀니도 이번에 이별이다, 그것도 2018년 12월 3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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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 뼈가 안녕하신가 걱정이 많았는데 곽섐의 6개월마다 해준 스켈링 덕에 쌩쌩해서 그나마 고마웠다. 아프던 이는 20년 전 신경치료를 하여 뼈에 붙어버려 그걸 쪼개서 빼내느라 단선생도 나도 고생이 컸다. 모레 오전(12)에 아예 틀니 쪽 기둥을 두 개 심는다 하여 우이동에 가서 자겠다고 전철을 탔다이 빼느라 정신도 없고 힘도 들어서... 


그런데 강변역에 예매한 버스표 물리러 갔다가 오늘이 연말이고 내일이 정월초하루인데 남편과 지인들을 그냥 혼자 둘 수는 없어 혼몽한 상태 그대로 지리산행 막차에 몸을 싣고 말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조선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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