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3일 일요일, 맑음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산수유 붉은 열매가 북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구례 산동에는 산수유 마을이 있어 100년이 넘는 나무들도 숱하다. 그런 산수유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상위마을하위마을에 산수유가 만개할 때 만인보(萬人步)’를 하며 지리산 둘레길을 걷던 친구들과 자주 들렀다.


예전에는 산수유 값이 좋아 집집이 산수유나무 몇 그루로 아들 대학공부를 시켰다지만 상품으로 만들려면 까는 기구가 변변치 않아 이빨로 까서 어메들 이가 성한 사람이 없었다. 산수유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니 자식에 대한 어메들의 영원한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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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집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왜 대문 앞의 산수유를 안 따고 저리 놓아두었냐며 아깝다 하지만 따서 몸보신하기보다 우리는 눈으로 보아 맘보신을 하고 있다. 가끔 눈 내리는 날 하얀 눈 모자를 쓴 빨간 꼬마열매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보스코가 오늘은 큰축일 전야니 본당 11시 교중미사를 가서 아는 분들과 성탄축하도 나누자고 한다. 수유성당에서 30, 이곳 우이성당에서 10여년을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다. 욕심도 없고 산세가 좋아 마음붙여 사는 사람들이다. 욕심을 부려봤자 이곳 집을 팔아서 이사갈만한 더 좋은 곳도 몰라 그대로 머물러 사는 어수룩한 사람들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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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나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강남으로 갔으나 문화적응이 안돼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있어 그런 사람들을 본보기로 북한산 밑 우이동을 떠나면 인생이 종친다고 맘을 다잡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그중 하나가 우리 부부이고, 더 깊은 산속이 좋아 아예 지리산에 내려가 있으니 그 점은 우이동 사람들마저 부러워한다.


손신부 아버지는 빵고신부의 대부님으로 우리를 무척 반긴다. 혜선엄마와 아빠, 베로니카, 그 외에 동네 골목에서, 시장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많고, 예전엔 절에 다니다 입교했다고 수줍은 인사를 전하는 이웃도 있어 참 반가웠다. 이렇게 서로를 가깝게 느끼는 건 대자연이 주는 너그러움이고 우리가 함께 저 삼각산을 마주보고 있다는 공유의식과 연대감일 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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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본당 주임신부님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점잖고 겸손하고 따뜻하다.’ 오늘 영성체 후에 교리 받는 분들에게는 강복을 주었다. 오늘 내일 세례를 받을 분들이리라. 다 끝난 줄 알고 신부님은 제대로 올라가는데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늦게 나오셔서 머뭇거리자 옆사람 얘기를 들은 신부님은 곧장 돌아와서 그 할머니를 꼭 안아주고 강복해 주었다. 나이로 보면 신부님이 손주벌이지만 저런 장면에서는 사제의 모습은 아디까지나 아버지요 착한목자였다.


대림초가 한 개씩 새로 켜질 때마다 한 개는 깨어나라!’, 두 번째는 회개하라!’, 세 번째는 낮아져라!’, 그리고 오늘 마지막 촛불이 켜졌고 순명하라!’는 의미를 일러준단다. 그 곤란하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천사의 전갈을 받아들이는 성모마리아의 삶을 살자고 일러주었다. 소박한 강론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갈 이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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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이엘리가 상암동 딸네집에 왔다가 잠깐 들렸다는 핑계로 날 찾아왔다. 내가 서울에 있으니 이렇게라도 달려오면 잠깐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단다. 참말 선하고 귀여운 여인이다.


며칠 전 성탄과자 칸툭치니를 구웠는데 성탄도 되기 전에 다 떨어졌다. 성탄을 전후하여 찾아올 친구를 생각하며 또 과자를 구우니 집안 가득 과자 냄새와 크리스마스 캐롤로 명절은 이미 우리 곁에 풍성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맘 설레고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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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다리는 그분이 온 세상 구세주라면, 그것도 아주 작고 아주 귀여운 아가로 오신다면 사랑스러워 가슴 뛸 일 아닌가! 엘리가 갓난이 손녀 돌보기에 올인하는 저 행복감 그대로, 성모 마리아와 우리 여인들이 누리는 크나큰 특전 그대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아가들은 수년간 엄마들의 삶을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이를데없이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들이니 "저 어린 가슴들에 축복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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