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0일 목요일, 맑음


예전엔 11월 말에 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성탄 카드를 보내는데, 11월말부터 12월초까지 네팔을 다녀오느라 카드나 연하장을 구하고 쓰고 부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옛날 친구나 일년에 한번이라도 소식을 주고받던 친구들이 보내는 카드가 요즘 속속 도착하자 보스코의 마음이 바빠졌다. 가까운 도봉우체국에라도 가서 연하장을 사서 소식을 보내온 사람들에게라도 답장을 쓰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함양 친구들에게 보낼 물건도 챙기고 나가서 우체국에서 택배는 보냈는데 연하장이 다 떨어졌단다. 명동에 있는 중앙우체국에라도 가야겠다고, 가는 길에 SKT에 들러 엊그제 산 샤오미핸폰을 새로 깔기도 하자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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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체국 앞에서 유턴을 하다가 잠깐 후진하는데 그만 뒷차 문에 살짝 부딪치고 말았다. 하는수없이 보험을 써주었다. 내 차엔 자국도 없는데 정말 희안하다. 보스코 말이 당신은 직진만 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후진은 왜 그리도 못하느냐?’고 놀린다. 내 차 운전석 문 밑이 전부터 좀 찌그러졌 있어 보스코가 언제 고칠 거냐?’고 물으면 누가 거길 받으면 보험받아 고칠 테니 기다리시라고 해오던 터였는데 말이 씨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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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차를 받고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 외제차가 아니라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 옛날 로마에 살 적에 대사관기사가 벤츠 문짝을 들이받혔는데 그 차 문짝 하나가 우리나라 마티스 가격이었다! 


세상을 떠난 내 친구 말람씨가 막 면허를 따고 운전이 서툴 무렵 미아리 어느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문짝을 들이받고 겁이나 우선 도망을 왔다.  다시 돌아가 보험을 써줘야 할 것 같다니까 지인들이 차라리 걸릴 때 걸리더라도 가지 말라는 조언을 하더란다. 그뒤 거의 몇해를 두고 전화 벨 울릴 적마다 그니는 마음을 졸였다. '전여사, 차라리 돈을 물어주는 게 낫지, 이게 뭐꼬! 전화 올 때마다 피를 말린다.' 라며 한탄하던 그니가 지금은 맘 편히 안식을 얻었으려니....


오늘 신문을 보니 졸음운전을 하던 대만 청년이 페라리 3대를 들이받아 수리비가 4억원 넘어 들어가게 되었단다. 120만원짜리 월급쟁이 청년이 한 푼도 안 쓰고 28년을 벌어야 갚을 돈이라니, 아마 로또에 당첨되어도 그 청년은 페라리를 사는 일은 절대 없을 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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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나더러 앞으로 10년만 더 운전을 하라는데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옆차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 할메를 보면 자존심 상해 면허증을 반납하고 말까? 함양의 시골 교통편이 불편하니 시외버스터미널까지만 운전을 해오고, 그 외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날이 가까운 미래에 내게도 올 듯하다. '하지만 잔까를로 신부님 누나 로세타는 90세까지 운전대를 잡았는데.'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SKT에 가서 한 시간 반 동안 망가진 보스코의 폰(공짜폰)에서 새 폰으로 내용을 옮기고 앱들을 새로 깔았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남들은 어찌하냐?’니까 아들딸들이 다 해준단다. 우리처럼 아들딸이 가까이 없는 사람은 SKT에서 남의 아들딸이 내 일처럼 친절하게 해주니 세상은 참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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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방에 사는 총각이 둘이 되니까 누에가 뽕잎 먹듯 해 놓은 음식이 다 떨어졌다. 동네 골목시장에 찬거리를 사러 걸어 내려가는데 누군가 갑자기 나를 흔든다. 깜짝 놀라 얼굴을 들어 쳐다보니 내 친구 영심씨! ‘왜 그렇게 힘이 없이 늘어졌어?’ 묻는데 정말 내가 걸으면서 졸고 있더란다. 나를 보면 언제나 팔팔해서 자기가 기운을 받는다며 좋아했는데 오늘은 내 몰골이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나도 내일은 전업주부 하루 휴가를 얻어 종일 자야겠다.


우리 동네 골목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 코딱지만한 땅에 있던 코딱지 만한 집이 팔리더니 근 일년 걸려 새집으로 리모델링되었다. 평수가 적어 집을 새로 지을 수는 없었단다. 좁다란 골목길 그 코딱지만한 집에 코딱지만한 '서점'이 생겼다. 한 평은 넘고 두 평은 못되는 서점에선 여주인이 종일 책을 읽는다. 한 주일쯤 전 내가 처음 들러 개업 축하차 책을 한 권 사온 일 외에 손님을 본 적이 없다. 우리 동네 유일한 문화시설인 그 '코딱지서점'의 운영이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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