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8일 화요일, 맑음


함양 산골에 살며 춥게들 살아선지 연수원 실내온도는 너무 덥다. 24도가 넘었는데 아직도 히터는 돌고 우리는 창문을 열고 땀을 닦는다. 윤희씨 얘기로, 부자들이 사는 곳에 가면 여름에는 에어컨이 너무 추워 긴팔에 세타를 걸쳐야 하고, 겨울에는 반바지에 반팔을 입어야 한다며 촌스럽게 수면바지에 수면양말까지 신고 온 우리를 놀린다.


나는 까딱하다 전기담요를 들고올 뻔했다고 고백했다. 서양에서는 겨울이면 대부분 벽난로나 라지에타를 켜놓다 보니 그렇게 더울 일이 없어 집안에서도 털 재킷을 걸치고, 앉으면 무릎에 담요를 덮고서 책을 읽거나 TV를 본다. 지금 우리집도 그렇다, 휴천재에서도 서울집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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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은 아침 일찍 사우나를 갔다가 아침을 먹고서 올라오고, 연수씨 정옥씨 나 이렇게 늙어오는 순서대로, 움직이기 싫어 집안에서 씻고 적당히 아침을 먹었다. 젊은이들은 밤늦게 잤는데도 활동하는 모습도 활기차고 기운이 넘치니 우리가 고맙게도 그들에게서 기를 받는다.


제일먼저 '위미 동백꽃 군락지에 동백꽃을 보러 갔다. 동백꽃은 12월에서 4월까지 종류에 따라 피는데 오늘 간 곳은 애기동백이 만발해 있었다. 피어나며 벌써 발밑으로 떨어진 붉은 꽃이 슬프다. 나더러 누님이라고 부르는 김유철 시인이 세월호 젊은 넋들을 읊은 시만큼이나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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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서 피는 꽃이 동백이라 했던가요.

통째로 떨어져서 슬픈 꽃이 동백이라 했던가요

한 송이 꽃 속에 온 생명이 담겨 있듯

보고 싶다는 외마디 속에

짧았던 인연 온 마음을 담습니다.

맹골수도를 동백밭으로 만든 임들

부디. 부디. 안녕         (김유철, 동백. 맹골수도에 피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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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보스코와 함께 방문했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도 갔다. 어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정 가까운 시간에 달려와 준 미혜씨와의 의리를 지키려 오늘 방문을 했다. 1957년에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82년에 제주 땅을 밟은 후 다시는 고향으로 못 돌아가고 2005529일 루게릭병으로 눈감을 때까지 제주 오름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다간 사진작가. 고인의 혼이 서려있는 두모악 갤러리는 언제 찾아와도 진한 감명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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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뱅커는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던 국가기간 통신시설을 개조한 것이다. 거기에다 프랑스식 몰입형 미디어아트 아미엑스식 전시장을 만들었다. 전시장에 입장하는 순간 수십 대의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에 둘러쌓여 클림트의 작품과 음악에 완벽하게 몰입하게 된다. 특히 전시장 곳곳을 자유롭게 돌며 작품과 내가 하나 되는 신비스런 시간을 체험했다.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클림트! 그의 웅장하며 현란한 색채의 세계는 우리 여덟 명 여인들의 혼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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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1997년에 개장한, 300헥터에 이르는 터에 50년생 삼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절물휴양림을 방문하고 해발 697m의 오름 정상까지 1시간 반 정도를 걸었다.


해질녘, 바닷가 카페에서 내일의, 아쉬운 제주와의 이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자연의 아름다움에 젖어들고"삶이여, 그대에게 고마움을(Gracias a la vida!)" 만끽하고, 매어사는 아낙들이 모처럼 자유를 고마워하며 가까운 횟집에서 싱싱한 방어회로 저녁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힘들었던지 어제 밤엔 한시 넘어까지 소근거리던 아우들이 10시도 안 되서 모조리 꿈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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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어제 성바오로병원에 하룻밤 입원하여 수면검사를 받았다. 밤마다 코골이에 이갈이에 무호흡까지 '삼박자축복'을 아내에게 연주하는 남자! 얼굴과 머리에 온통 전선을 연결하고서도 잠만 잘 자고 아침에 돌아왔단다. 이 보호자 없이 그가 혼자서 병원엘 가고 입원하고 한 것은 난생 처음일 게다


제네바 손주들이 성탄을 앞두고 한인공동체에서 아범과 함께 악기를 연주한 사진도 자랑하고 싶다. 둘의 삑삑거리는 연주가 할미에게는 세계 최고의 앙상블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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