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4일 금요일, 맑음


우리집은 덕성여대 후문 쪽 약초원 사잇길로 올라간다. 야산으로 이어진 쌍문근린공원으로 오르는 산중턱이다. 평상시에는 비탈로 오르는 길이라 숨이 좀 찰 뿐 걷는 것도 좋고, 나무들과 친해져 공기도 맑다. 대중교통이 있는 곳과는 거리가 있어 남들은 불편하겠다고들 하지만 10분 정도를 걸으면 지하철과 버스를 탈 수 있으니 만족한다. 우리가 빵기네 집'40년을 넘겨 사는 것도 서울에서 더 좋은 곳을 찾지 못해서다.


그런데 엊저녁 과자를 구우려다 설탕이 떨어져 슈퍼에 내려가다가 바리네가게옆에서 그만 꽈당!’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눈 온 뒤 녹아 얼어붙은 빙판이었다. 엉덩방아를 찧고 그대로 벌렁 뒤로 넘어지면서 뒤통수에 혹이 났다. 마주오던 아저씨가 달려와 별 탈 없는가?’ 묻는데 부끄러움에 벌떡 일어선 걸로 보아 아직은 여자로서의 자존심은 남아 있었나보다. 고관절이 나갔거나 뇌진탕이 안 된 걸 감사하며 집으로 올라오는데, 어제 따라 그 언덕이 왜 그리 가파르고 우리 집은 왜 그리도 먼지... 가도 가도 당도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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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티벳요가를 하면서 보니 목근육이 많이 놀랐는지 젖히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이동 4인방서울 5궁 탐방 계획의 일환으로 오늘은 덕수궁을 둘러보기로 작정한 날! 몸이 아프다고 하면 보스코가 못 나가게 할까봐 그에게는 아무 말 않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집을 나섰는데 온몸이 아우성이다. 꼬마들이 코피 흘리면서까지 노는 재미를 알겠다.


쉼터슈퍼의 유미엄마가 나를 붙잡고, 어제 내가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우정빌라 아줌마가 넘어져 고관절이 부서졌고, 응신을 못하여 119에 실려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우선은 내가 그만한 게 다행이라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 다음 튼튼하게 낳아주신 엄마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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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킨도너츠에서 두 노친(한목사와 나)을 기다리던 엘리들은 각자가 마련해 온 선물들을 탁자위에 펼쳐놓고서 우리가 가져온 것도 꺼내놓으라 독촉한다. 선물꾸러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성탄을 맞은 기분이 들며 내 아픈 것도 싹 잊었다.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티 없이 순수한 친구들이 또 있을까! 보면 볼수록 귀한 친구들이다.


점심은 나중에 하고 우선은 덕수궁을 관람하기로 대한문을 들어섰다. 마침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하고 있어 뭔가 궁궐을 방문한듯한 설레임이 있었다. 그동안 시위를 하러 대한문 앞에는 자주 왔고,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엘 가느라 덕수궁 돌담길은 자주 걸었는데 덕수궁 안을 이렇게 둘러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나뿐만 아니고 두 엘리도 마찬가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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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은 구한말 격변기에 조성된 궁전으로 2층 한옥인 석어당, 서구식 석조 건물인 석조전, 양식을 흉내 낸 정관헌 등 서로 다른 양식의 건물을 모아놓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우리 역사의 수난사를 보는 것 같았다. 어제 '뉴스뵈이다 42'에서 전우용 교수가 조분조분 설명하던 얘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과연 일본은 무엇인가?’ 저 사진에 마지막 의친왕을 둘러싸고 있는 친일파들, 오로지 흥하기만 한 친일파 자손들,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실존적 친일파들’, 한국인의 얼굴거죽을 쓴 '실천적 일본인들', 매국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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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차외과에 들러 주사를 맞고나니 욱신거리는 통증이 덜했다. 보스코에게 저녁을 해 먹이고 일산으로 떠났다. 저녁 8시에 일산 주엽동성당에서 예수 그리스도, 평화를 위한 구세주라는 제목으로 보스코의 대림특강이 있었다. 먼저는 이한택 주교님의 강연이 있었단다. 오늘 내가 모처럼 충실히 기사 노릇을 하니 보스코가 행복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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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후 원주 민실비아의 막내여동생도 만났고, 내 일기의 페친도 만났다. 실비아의 여동생은 어렸을 적 보스코에게 교리를 배웠는데 그가 온다고 해서 반가웠단다주임 이병헌 신부님은 얼마 전 제주에서 빵고신부를 만났고, 일본 주교님들을 안내하던 중에도 만났다는데, 아들을 보았다는 그 말씀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가까워지던지... ‘외롭지만 자유로운 생활이 행복하다는 신부님, 날마다 오전에는 당신 집무실에서 본당신자를 기다리신다는 착한목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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