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2일 수요일, 맑음


어제는 성바오로병원에 보스코의 부정맥 때문에 순환기내과엘 갔고, 오늘은 그의 취침중 무호흡 때문에 호흡기내과엘 갔다. 둘 다 한때 그곳 병원장이셨던 노수녀님이 서둘러서 예약을 해 놓으셨다. 지난 달 휴천재에 다녀가시면서 보스코의 증세를 보고 예약해 주신 참이다. 덕분에 당신도 미리미리 큰일을 예방했다는데, 우리들은 늘 의사가 아는 순간 병이 생기니까 의사 모를 때 까지만 살자는 주장이었으므로 김원장님이나 문섐이라면 우리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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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병원에 가면 웬 아픈 사람이 그리 많은지! 그냥 주어진 상황 속에 적당한 시간만큼, 봄에 잎 나고 여름에 성했다가 가을에 시들어 겨울에 흰 눈 속으로 파묻힌다 해도 아무 저항 않는 자연처럼, 그렇게 살다 죽는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아프면서도 짐승보다 더 짐승다운 모습으로 목숨을 연장해가는, 삶 자체가 타인에게 혐오스러운 짐이 되는 그런 삶은 제발 원치 않는다.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갖고 싶다. 내 신앙이 그와 배치되지 않기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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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녀님이 주신 성탄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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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녀님이 친히 오셔서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셨다. 보스코는 17일 밤 입원하여 무호흡을 체크하기로 시간을 잡고, 수녀님과 청량리역에 있는 롯데 건물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때마침 옆에 롯데시네마가 있어, 귀여운 동생 희정이가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에 미쳐 4번이나 보았다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기로 했다. 그니가 내게 워낙 강추한 까닭이다. 소녀다운 우리 노수녀님도 어느 젊은 수녀님이 너무 영화가 좋아 두 번이나 보았다고 강추하더라며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함께 감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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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이라면 집시로 통칭되는, 가장 가난하면서도 주변의 멸시나 차별은 아랑곳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로마 변두리에 집시촌이 있어 가까이 지켜 볼 수 있었다. 카라반을 끌고 전유럽을 이동하며 노래와 춤, 점술과 마술, 구걸과 소매치기 등 그들만의 생존 방식으로 생활하지만 타민족들과는 전혀 관계없이 지내면서도 내부로는 자기네 전통과 관습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의 영화 집시의 시간에서 보았듯이, 세평이나 멸시와 상관없이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대단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동성애, 에이즈 등 어찌 보면 전혀 평범해 보이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지만 음악이라는 큰 틀 안에서 잘 섞인, 한 편의 몽환적인 리얼리즘이랄까? 성소수자의 자연스런 행동을 지켜보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프레디까지. 나까지 신나게 뛰며 춤추게 한 이 영화를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친구여, 우리가 챔피언이야, 루저들에게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라는 떼창이 이 세대의 비명으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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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태의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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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분 엄엘리랑 조선생과 최선생이 왔다. 남자들은 위층에서 얘기를 나누고 엘리랑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이 정부의 너무 굼뜬 정치에 대한 실망, ‘청춘시절부터 우리가 꿈꿔오던 세상이 과연 올 것인가? 온다면 언제 오려나?’ 우리는 늘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지만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그 시점에 역사의 전환이 오기도 함을 촛불혁명에서 목격한 우리. 역사의 도정에는 인간만 아니고 창조주도 한 몫을 하신다는 예감이 통진당 투옥자 대부분을 가톨릭 신자로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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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떠나고 보스코는 월요일 입원을 위한 문진을 쓰고, 나는 지리산 친구들과 광주에서 제주로 떠나려던 뱅기표를 취소하고 김포에서 떠나고 돌아오는 표를 희정씨에게 부탁했다. 이렇게 작은 일 하나도 계획대로 안 된다. 귀요미 미루는 나더러 일 좀 줄이라', 그만큼 겸손히 살라고 충고하지만 내 길은 주변이 늘 사람들로 붐비는 숙명인지도... 


돌아오는 우이신설선 전철 안에 도배된 튤립 그림만으로도 봄으로 달려가는 나인 걸 내가 누군지는 내가 결정하겠어(I decide who I am)”라는 저 영화 대사가 너무 매력적이니 난들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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