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4일 토요일, 첫눈 오고 흐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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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간밤에 눈이 왔을까?’ 커튼 사이로 내다본 세상은 내가 바라고 상상하던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다. 노랑 잎을 다 떨군 은행나무라든가 거침없이 뻗어 오르던 느티나무 잔가지 위까지 첫눈은 인심 좋게 그리고 섬세한 손길로 고루고루 가루를 흠뻑 뿌리고 있었다.


보스코는 센스 있게 불란서 샹송 '눈이 내리네'를 여러 버전으로 들려주었다. 그리고 하얀 눈의 나라 러시아, 슬퍼도 슬퍼할 수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검은 과부들의 나라체첸의 민속음악이던 백학을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의 바리톤의 비장한 목소리가 더 슬프게 만드는데, 눈은 계속 쏟아지고 보스코는 닥터 지바고에서 사운드트랙으로 라라의 테마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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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서울집에 도착해서 구총각 방을 열어 보니 형광등이 다 고장 나 있었다. 그 어두운 방에서 얼마나 우울했을까 가슴이 다 시렸다. 연료비를 절약한다고 자기방 하나만 아침저녁으로 한번씩 난방을 돌린다니 이건 삶이 아니고 생존이다. 당장 전기 자제 가게에 가서 안전기와 전구를 사다 놓고 전파사 아저씨에게 내일 당장 와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애들이라면 벌써 자기 손으로 다 고쳤을 텐데...’ 하면서.


그러다 오늘 새벽녘에 곰곰이 생각하니, 지금 그 방에 55W 등 세 개씩 두 등에 책상등 하나가 더 있으니 방 하나에서 밤마다 500W의 전기를 쓴다는 사실이 떠오르고 안정기를 바꿔줄 문제가 아니라 아예 모든 조명을 LED로 교체해 주는 게 집주인 도리이겠다 싶어 아침을 먹자마자 하얗게 쌓인 눈길을 걸어 수유리 전기 자재상을 다시 찾아갔다. 어제 사온 전구와 안전기 일습을 들고가서 LED 네 개로 바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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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 구총각에게 우선 천정의 등을 떼 내게 하고 설치하는 방법은 철학 교수 보스코가 공학도 집사에게 가르쳐야 했다. 등 네 개를 다 달고 나더니 구총각은 자신감이 생겼는지 자기 전공으로 밥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예감이 든단다.


점심 후에 이마트에 가서 이번 여행길에 보스코에게 입힐 바지 하나를 사와서 짜리몽땅 서방님’ 다리에 맞춰 단을 줄였다. 여행가방 역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내가 쌌다. 그에게 맡겼다가는 또 무엇을 빠뜨릴까 여행 떠나서는 책임을 질 수 없으니까. 그에게 자립정신을 심어주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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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토요특전 미사를 갔고 연중 마지막 주일 '그리스도 왕' 축일 강론을 들었다. 목숨까지 다 내주고 왕이라 불리다니... 지상의 왕들이 모두 사라지고도 2000년 동안 십자가에 매달린 분을 20억 인류가 마음과 인생의 임금으로 섬기다니... 종교 신앙이란 참 묘한 것이다.


미사 후 저녁으로 오랜만에 불량식품을 먹자며 시장골목  구멍가게에 갔다. 어묵, 순대, 떡볶이, 마른오징어 튀김을 한 접시 차려주는 아줌마는 두세 달에 한번 보는 우릴 단골이라 부른다. 40년 한 동네에 살면 모든 가게에 우리가 단골일 수밖에... 


보스코가 아침나절 3층 다락방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들을 들고 내려와 트리를 세웠다. 플라스틱 나무를 세우고 반짝이등을 감아 달고 방울들을 달고나면 장식용 구슬을 달고 나무 밑에 구유를 설치할 자리를 마련하고, 그리고 뒷청소는 내 몫이다. 그 몫을 다 하고나니 자정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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