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9일 금요일, 맑음


새벽 530. 기독교방송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교황 방북건으로 보스코와 전화인터뷰를 한다. 실은 730분이 정식 프로그램 시간인데 보스코가 그 시간에는 다른 곳에 약속이 있다니까 그 시각에 김현정 앵커가 스튜디오에 나와 전화로 사전에 대담을 녹음하고 있다니... 김앵커의 그만한 인기 뒤에는 저만큼 노력하는 직업의식이 뒷받침하는구나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pZH4Mfnk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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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에 출연하려는 보스코를 상암동까지 에스코트 하려면 나 역시 바쁘고 힘들 텐데 때마침 어제 밤에 도착한 빵고신부더러 '아빠 좀 모시고 다녀오라' 했더니 새벽같이 일어나 아빠를 모시고 차를 운전하여 집을 나선다. 얼마나 고맙던지, '역시 아들은 낳고 볼 일이여!'라는 문정 아짐의 말이 옳다.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서는 보스코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뿌듯하고 당당. 아들은 아빠를 신뢰하고 인정하며 자랑스러워하기에 부자관계라기보다 우정관계처럼 든든해 보인다. 커피와, 크롸쌍, 그리고 과일을 아침으로 챙겨주었으니 부자가 사이좋게 오가며 차안에서 먹겠지.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712768&pDate=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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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부자는 나랑 10시에 모신부님 문상을 하러 살레시오 관구관엘 갔다. 지하차고에 도착했는데 맘마말가리타회(살레시오 수도회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의 모임) 한 엄마가 차에서 꽃 화분들과 꽃바구니를 꺼내기에 우리 셋이 하나씩 들고서 올라가 승강기에서 내리자 홍신부님이 말린다. '꽃은 절대 안 됩니다!' '어째서요?' '돌아가신 모신부님의 유언입니다. 당신이 돌아가시면 절대 꽃으로 꾸미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꽃을 제단이나 관 주변에 놓아두면 그걸 치우려고 벌떡 일어나실 텐데 그럼 참 골치아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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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신부님은 근래 5년 동안 점차 심해지는 치매로 회원들을 애먹이셨기에 '살아나시면 큰일난다. 신부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져다가 잘 숨겨 놓으시라.'는 농담이 나온다. 그러면서 들려주는 홍신부님 우스개


성당을 열심히 나가는 할머니가 며느리한테는 얼마나 고약하게 굴었던지 며느리는 성당에 대한 감정이 몹시 나빴단다. 그러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교우들이 정성껏 연도를 드리고 장례를 돕는 모습에 감동하여 신부님께 조용히 다가가 '저도 이젠 성당에 나가고 싶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부활하시면 엄청 좋아하실 겝니다.' 그 모질던 시어머니가 되살아나리라는 말에 깜짝놀란 며느리. '그럼 전 계속 성당 안 나갈래요.' 살레시안들은 어떤 자리에서도 농담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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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 앞에 누운 모신부님 시신을 바라보는 보스코의 시선은 먼 옛날로 돌아가 있었다.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날이었어. 저녁식사 후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힘없이 서있던 나에게 모신부님이 다가오셨어. 날 데리고 소성당으로 데려가시더니 '도움이신 마리아' 성상 앞에 세우고 한 마디 하셨어. '오늘부터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모든 걸 성모님께 부탁드려라.' 그러고서 오늘까지 난 평생 성모님 치마폭에서 살아왔지. 내가 기도드려 안 들어주신 게 정말 하나도 없었어." 


보스코만 아니고 고아원으로 들어간 세 동생들도 중고등학교를 그 학교 기숙사에 들어와서 먹고 자며 공짜로 다녔으니, 또 내가 그에게 시집와서 45년을 두고 늘 보스코의 신상에서 일어나는 공짜클럽을 체험했으니 맞는 말이다. 그러니 천애고아가 되어 혼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보스코를 성모님께 데려다 그분 손을 붙잡게 만드신 분이 오늘 저기 누워계신 모신부님이시다보스코가 한국 최초의 라틴문학박사가 된 것도 '모대감님'으로 불릴만큼 엄격하시던 저 신부님께 중2부터 라틴어를 배운 실력에서 비롯했단다. (보스코가 서강대에 있을 때는 보스코가 가르치던 라틴어를 저 은사님이 가르치시게 했다, 치매가 오기까지.) 


살레시안의 사업은 불우한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고 이끌어 길을 바로 가도록 거드는 일이다빵고가 제주에서 맡은 일도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들, 평생 한 번도 칭찬이나 격려를 받아 본 일 없는 아이들. 그러다 사고를 치고 '소년원이라는 범죄학교'에 가야할 아이들을 도맡아 '젊다는 이유만으로 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단다.'라고 일깨워주는 일이다. 우리 작은아들, 참 좋은 몫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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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구로동 성당에 모셨다 오늘 아침 관구 소성당으로 모신 모신부님께 조문하는 방명록 1번에 보스코가 이름을 기입하고, 인천에서 급히 올라온 실비아씨랑 우리 셋이서 첫 연도를 바치고, 12시 정각에 빵고신부가 첫 번 위령미사를 집전하였다. 모신부님의 또다른 제자 황신부님(전전관구장)이랑.


수도원에서 상가 점심을 하고 빵고신부는 3시 비행기로 제주로 떠나고, 우리는 우이동으로 돌아왔다. 보스코의 방송을 보고 들었다는 인사를 많은 지인들에게서 받았다. 주교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시던 김대주교님도 전화를 하셔서 (작년에 함께 대통령특사로 가셔서 당부드렸던대로) 교황님이 어서 북한을 가시기를, 그분의 발걸음을 보고 완고한 마음들에서도 돌심장이 꺼내지고 새살이 돋아나기를 바라시는 소망을 나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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