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3일 수요일, 맑음 


어제 내가 가방을 챙겨들고 양로원 '유무상통'의 엄마 방을 나서자 승강기 앞까지 비칠 걸음으로 따라 나오던 엄마가 물었다. '갔다가 올 꺼야?' ', 갔다가 돌아와요.' 해질녘이 되자 혼자 걱정이 되어 서울집에서 보스코에게 물었다. '혹시 엄마가 기다리고 계시지는 않을까?'  '아마 잊어 버리셨을 거야. 당신이 어제 오늘 다녀간 사실마저...' '정말 잊어버리셨을까?' '... ...'


45년 전. "엄마, 요 앞에서 호떡 사다 드릴 게요." 안방에 계시던 엄마에게 이 한마디하고서 살살 걸음으로 집을 나가 아직도 못 돌아간 큰딸. 그 딸년의 아픈 불효를, 조금 전 일마저 잊어버리시면서, 아직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계시는 엄마의 깊은 상처를 최근에야 새삼 확인했다!. 큰딸에게서 받은, 가장 큰 배신의 상처.


세 아들들이 자라면서 워낙 많은 사고를 쳐서 "순란이 저건 뭔 일 하나 해낼 거야. 그래서 박순천의 '()', 김활란의 '()'자를 따서 이름을 지어주었거든..." 하시던 아빠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큰딸을 키우셨다. 드디어 시집을 보내며 집장만, 살림장만, 주례장만 다하시고 청첩장 돌리시고 식올리는 날을 기다리시던 엄마에게 역시 부모님이 기대하시던 '蘭'답게 9회말 만루 홈런(의 불효)을 날려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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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출을 해서 그해 103, 바로 오늘 보스코와 결혼식을 올렸다. 1973오늘 아침에 눈을 뜬 보스코가 내게 하는 말 "당신 결혼 축하해, 시집 잘 왔지?" 내 대답: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당신이 장가 하나 기차게 잘 온 건 맞는 것 같애." 그러고선 마주 보고 폭소를 터트렸다. 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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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남의 딸 열 안 부럽다'는 작은 아들이 무슨 일로 전화를 해 왔는데 엄마에게 축하 말 한마디 없자, 조금 서운해지려는 마음을 덮고, 오늘 복음 말씀대로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우리 아들이 하느님나라에 합당하니 엄마는 행복하다." 라는 글을 카톡으로 보냈다.


어젯밤 도착하여 미처 여름이불을 갈지 못하고 잤더니 밤새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새벽에 일어나 3층 다락에서 오리털 이불을 가져다 바꾸고 여름 이불과 시트는 깨끗하지만 그대로 넣어 둘 수는 없어 빨아서 빨랫대에 너는데, 빨랫대 펴는 법이 생각 안나 한참 헤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보스코가 혼자서 하는 말. '클났네, A/S기간도, 리콜기간도 다 끝났는데?' 


이렇게 치매기가 나타나는 딸을 A/S해 줄 울 엄마가 A/S를 받아야 할 판이고, 리콜 할 오빠네는 공장채 망해 버렸는데, 누구한테 리콜시키겠는가? ‘여보, 이젠 각자도생 하고, 자신이 알아서 스스로 고치고, 보링하고, 건강을 채워가며 살다 조용히 사라져야지 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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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건강하려면 제일 좋은 게 걷기다. 결혼기념으로 보스코가 신청한 '우이령 걷기'를 나섰다. 우리 집에서 '북한산 둘레길 21코스'인 우이령 분소까지 걸어가니 한 시간 걸렸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산길을 걷고 있다! '아하, 우리 결혼기념일을 이렇게 서울시민들이 거국적으로 축하해 주나?' 내심 감탄하면서 젊은 엄마랑 걷던 초딩에게 말을 건넸다. "학교 가는 것보다 엄마랑 이렇게 소풍 오니 좋지?" 아이의 대답이 뜨악했다. "할머니, 오늘 개천절이에요. 학교 안 가는 날이에요!" '아아~ 정말 전순란 아무래도 리콜과 A/S 받아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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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우이령을 끝까지 걸어 교문리까지 갔다가 다시 거꾸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철로 미아리까지 가서 (우리 '효녀 심청'이 표끊어 준)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서 돌아오니 저녁 8


우이천변을 걸어오며 우리가 이 천변을 지나다니던 세월 40년을 복기해 본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아름다운 나날이 사랑으로 도금되어 저 강물처럼 흘러갔고, 오늘 북한산 초가을, 파란물이 뚝뚝 떨어지는 맑은 나날이 그 자리를 메워오기를 빈다. 보스코가 자기 묘비명에 써 달라는 시편 구절대로: 주님께서 너에게 잘해주셨으니, 고요로 돌아가라, 내 영혼아!”(시편 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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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뉴스가 끝나자 결혼(기념일) 첫날밤 신랑은 곯아떨어져 있고 나는 일기장을 편다. 오늘 신랑(내게는 언제나)을 너무 걸렸든지, 나이 (일흔)일곱에 20.5km 산행은 너무 길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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