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18일 화요일, 맑음


엄엘리가 광화문을 지나며 청와대 쪽을 보니 무지개가 떠 있었다고, 오늘 문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아주 좋은 결실을 맺을 징조라는 카톡을 내게 보내며 그의 발걸음에 축복의 마음을 더했다. 어디 꼭 무지개가 떠야 좋은 일이 있겠는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국민 모두가 문대통령의 평양방문과 남북정상회담에 희망의 무지개를 띠워 올리고 있다. 이 비극적이고 비인간적인 분단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자들, 민족사의 바이러스나 곰팡이 같은, 기생충 같은 부류들만 나라가 분단으로 상처입고 썩고 곪은 부위를 그대로 간직하고 싶을 꺼다, 병든 데 기생하는 것들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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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날씨가 맑고 상쾌해서 창문을 열고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양껏 가슴에 들이킨다. 부디 이 나라를 위해 분단과 전쟁의 공포를 거둬들이는 멋진 결과를 이니가 가져오라고 축원하며 아침기도를 올렸다.


보스코는 분도출판사 사장 정신부님과 편집실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한다고 장충동으로 나갔다. 보스코가 번역하는 책은 학문적으로 중요하기에 우리나라 학문발전을 위한 책임감으로 출판을 감행하지만 출판사로는 커다란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기에 학자로서 보스코는 늘 출판사에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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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에 오면 언제라도 보고 싶고, 만나면 행복한 친구들이 있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거나 할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만나서는 마음에 고인 슬픔이나 남에게는 차마 못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들 털어 놓고 위로를 받고 치유를 받기도 한다. 우리 여성들의 치유법이자 행복의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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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벙게를 쳤는데, 두 친구는 선약이 있어 이엘리만 인천에서 우이동까지 달려왔다. 보스코는 엘리에게 허그를 해 주고 시내로 나가고 우리 두 여자는 집 뒤의 쌍문근린공원으로 올라가서 우이동둘레길을 걸었다. 성질 급한 도토리는 벌써 땅에 떨어져 모자를 벗어들고, 밤송이는 답답한 송이가 벙글어지자 성질 급한 놈부터 튀어나와 땅위를 구르고, 그 중에서도 보스코 같은 게으른 방안통수는 밤송이 안에서 여직 꼼짝을 않고 있다


그걸 보아 넘길 우리가 아니지. 다람쥐의 수고를 덜어주려 (다람쥐가 쿡쿡 찌르는 밤송이를 직접 까지는 못할 테니까) 운동화로 문질러 밤알을 까 숲속으로 던져 주었다. 다람쥐만큼 귀여운 유아원 아이들이 숲속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곰실거리는 고 어린것들이 일마나 예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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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떨어진 곳에서는 토끼가 놀고 있었는데, 지나는 아줌마 얘기로는, 언제부턴가 공원에 토끼 여섯 마리가 살고 있어 동네 아줌마들이 당근이랑 먹을 것도 챙겨다 주며 혹시 누가 잡아가지는 않았나 숫자를 센단다.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는 그 순간부터, 자연의 모든 식구들이 내 나무’, ‘나의 꽃’, ‘나의 별’, ‘나의 집’, ‘내 새끼’, ‘내 친구’, 그리고 내 토끼가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조금만 팔을 더 벌리면 우리 나라’, ‘우리 땅’, ‘우리의 하나뿐인 지구’, ‘우리 우주로 무한히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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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쯤이면 누구나 이미 성인(聖人)의 경지다. ‘살아있는 성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적한 대로 이웃집 푸근한 아저씨 성인’, ‘이웃의 수더분한 아줌마 성녀. 그 팔의 넓이는 각자의 인성과 신앙, 양심과 아량에 따라 길어진다. 그런데 조심스러운 건 팔을 넓게 벌릴수록 괴로움도 커진다는 현실이다. 보스코가 늘 하는 표현이지만, 십자가에 두 못으로 박힌 그리스도의 팔, 안으로 굽히려 해도 굽힐 수 없게 못질 해 놓은 팔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해야 할 경지를 상징한다.


빵기가 다녔던 선덕고등학교가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우리 두 여자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살아가노라면 좋은 일도 있었다고, 힘든 일도 있었다고, 또 풀 수 없는 일들도 있었다며 풀어놓다보면 각자가 아름다운 허스토리가 된다


하누소에서 늦점심을 먹은 뒤 엘리는 일터로 떠나고, 나는 보스코가 기다리는 강변터미널로 가서 5시 반 함양행 버스를 탔다. 모든 티부이 화면에 하루 종일 문재인과 김정은이 떠오르는데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문정리 골짜기로 들어가며 지리산 중턱에 걸린 반달이 닷새면 추석이라며 우릴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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