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14일 화요일, 맑음


어제밤 친구 아들(의사)의 전화가 자기 엄마한테서 생명연장의 기구를 모두 걷어냈단다. 어쩌면 오늘 중으로 아니면 내일까지? 아무도 모르는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단다. 가까운 친척들이 찾아와 떠나는 이를 배웅하고 있단다. 우리도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인데 정작 떠나는 이는 말이나 눈인사도 없고, 남은 이들도 일년 넘는 투병에 이젠 거의 담담하게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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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위에 잠자리들이 낮게 날고, 매미 한 마리가 서재창문 모기망에 발이 걸린 채 죽어있다. 매미는 7년이란 땅속의 긴 시간을 장님으로 살다가 허물을 벗고서 비상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는 짝을 찾아 목이 터져라 노랠 부르다, 10일 만에 이승을 하직하는 생물이다. 하지만 그 목청에는 자기 짧은 숙명을 그리 슬퍼하지도 않는 듯 그저 덤덤이 받아들인다. 저렇게 열심히 울다 요행히 암컷을 만나 후손을 남기면 나무에서 뚝 떨어진다. 우리 인생도 각자에게 닥치는 숙명의 시간을 고즈넉이 받아들일 뿐 딴 도리가 없다. 보스코의 말대로, 삶과 죽음만은 하느님이 알아서 하신다. 


종일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그니 소식 인가?’ 깜짝깜짝 놀라 확인을 하고, 그니 소식이 아니면, 내 친구의 운명의 닻줄이 끓겨가는 시각인데도 일단 마음을 놓으니 이 심사는 또한 무엇인가? 아직도 이 거친 이승을 날숨 들숨으로 헐떡이며 죽음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면 의사도 자식도 벗들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절실하여 저 편에서 그니를 받아주실 분의 손에 맡겨드리는 길밖에 딴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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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갖가지 보험들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는 걸까? 오늘도 서너 번 암보험, 요양보험, 뇌졸증보험' 들라는 전화가 왔다. 부고 대신 생명줄을 보장하라는 소식만 온다. 저 여자들은 내가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시각에도 내 전화번호를 돌릴 것이다. 오늘은 단체로 날 위로하겠다는 것인지 당신이 좀 더 살 것을 우리가 보험으로 보장한다는 위로의 말을 전하기로 서로 짠 것인지.... 이건희처럼 돈이면 모든 걸 보장받을 수 있다기보다는 돈이 많으면 죽을 수도 없을만큼 불쌍하다는 메시지도 있다. 난 차라리 가난한 죽음을 택하겠다.


점심상을 보면 휴천재 텃밭이 고스란히 식탁으로 평행이동했다. 오이냉채미역국, 가지나물, 호박나물, 오이노각무침, 열무김치, 김장김치... 소박한 밥상에도 타박 않고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물까치떼가 쪼아서 지레 익은 배를 저며 놓은 후식에도 '아 참 달다'는 보스코 입에서는 복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일년 365일 언제나 맛있게 잘 먹는다. 먹고서 안 움직여 배가 너무 나와 걱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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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독서회 아우 희정씨가 지난번 시아버님상에 찾아갔다는 데 대한 인사차 휴천재에 왔다. 모든 일을 정석으로 반듯하게 살아가는 그니 모습에서 나도 많은 걸 배운다. 자신이 그러다 보니 혹여 주변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로 상처입기도 하나보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그니여서 더 그렇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고 내 선의가 오해를 받을 때 너무나 마음아팠던 기억들이 있다. 다행히 보스코가 든든한 담이 되었던 것처럼 그니에겐 내게 없는 딸 주원이가 있어 고맙다. 이 널따란 우주 안에 내 편이 돼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는 건 내가 존재할 만한 이유가 된다보스코가 좋아할 고추장아찌를 자기 집에서 키운 청량고추로 담가 왔다니 밍밍한 인생에 매운 맛을 보여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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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저승의 문을 열고 이승의 문을 닫은 시각이 저녁 630. 앞산의 넘어가는 태양에 그니의 단말마의 고통을 실어 떠나보낸다. 내일이 성모승천대축일이다.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분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도 천년 같으시다니 우리도 몇 밤 지나면 곧 떠나려니...


보스코와 저녁기도를 위령기도로 바치며 주님이 그니의 남편 신프란치스코와 함께 그니를 반가이 맞아주시기를 빌었다. 빵고에게도 내일 아침미사에 김글라라를 기억하여 자비로이 거두어지기를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니처럼 사는 동안 열심히 살고, 떠날 때도 그니처럼 담담히 훌쩍 떠나가고 싶다잘가라 친구야, 우리 곧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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