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13일 월요일, 맑음


늙으면 피부로 느끼는 온도 감각이 둔해질까? 엄마는 문이란 문은 다 닫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안 틀고 주무신다. 긴 바지, 긴 팔 웃옷에 춘추내복까지 입고서.... 방안 온도가 31! "엄마, 안 더워요?" "덥긴 뭐가 덥냐, 여름이 다 그렇지? 이 만큼도 안 더우면 곡식도 안 익어, ." 에어컨 리모콘은 아예 치워버리고 선풍기 코드도 빼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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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온도를 (엄마 사정을 생각해) 27도로 했는데 좀 앉아계시다 빨리 끄라고 성화다. 그래도 낮엔 견뎌냈는데 밤엔 도저히 잘 수가 없어, 버티고 버티다 5층의 보스코 방으로 올라가서 (보스코가 함께 올 적마다 원장님이 책상이 놓인 손님방을 배정해 준다. 그 틈에도 집필할 여유를 드린다면서... 나는 당연히 엄마 곁에 자리를 펴고에어컨 밑에서 한 소금 얻어 잤다.


새벽녘 엄마 방으로 돌아오니까 그 어둑한 시각,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를만큼 더운 방에서 울 엄마는 착한 아기처럼 쌔근쌔근 잘도 주무신다. "엄마, 건강하면 오래 살아도 되는데 아프면 빨리 죽어야 해. 알아?" “그래, 고맙구나, 눈물겹게." 엄마는 눈을 흘기신다. 우리 모녀의 말을 듣고 있던 이모가 들려주시는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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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외할머니가 무릎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시다 며 왜 이리 오래 사는지. 빨리 죽고 싶다하시며 나더러 빨리 죽을 방법 좀 찾아달라고 매일 같이 조르시지 않았겠니? 그래 하루는 손주들이 놀러와 새알 초콜릿을 주기에 색깔 있는 건 다 골라먹고 밤색만 남겼더란다. 우중충한 그중에서 다섯 개를 골라 너희 외할머니한테 드리며 엄마 죽고 싶댔죠? 이 약 먹으면 죽을 테니 자, 받으세요.’ 하지 않았겠니? 사약 초콜릿을 받아든 너희 외할머니... 깊은 한숨을 쉬고는 먼 곳을 회한이 넘치는 시선으로 한참 바라보시더구나.” "그래서요?" 


아마도 귀양 가서 위리안치(圍籬安置) 당하다 사약을 받아든 신하가 머리를 풀고 거적에 무릎을 꿇고서 임금님 계신 곳을 우러러 보던 얼굴표정이, 내 모르긴 몰라도, 딱 그랬을 게다.” “그래서요, 이모?” “그래서라니? 너희 외할머니, 제 정신이 드셨는지 갑자기 눈을 획 돌려 날 노려보시며 이 못된 년!’ 하고 호통치시지 않겠니?" 


"그러고서 그 알약을 가져다 냄새를 맡으시더니 이거 쬬코라또구나!’ 하시며 얼굴이 환하게 펴지시더구나. 그렇게 사약을 드신 너희 외할머니, 106세까지 사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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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드시고 엄마가 아침잠에 빠져 있는 시간 우리는 지리산을 향해 떠났다. 그 지긋지긋한 도회지의 열기를 뒤로 하고 산 속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날듯한 기분이지만 바깥 온도 38도를 가리키는 아스팔트 고속도로에서 공사 중인 남정들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슬며시 돌아왔다. 차선 하나를 막고 그 뙤약볕에서 펄펄 끓는 콜탈을 깔고 있는 인부들...


정말 어제 읽은 기사대로 지구 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었을까?’ 우리가 지난 달 찾아간 제주도 비자림의 삼나무를 거침없이 베어내는 인간들이라니! 심지어 삼나무는 일제가 심었다!’ ‘목재가 안 된다!’ ‘그 밑은 산성이라 어떤 식물도 자라나지 못하는 해론식목이다!’ 등등을 지껄이며 벌목을 지지하는 환경론자들도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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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저수지마저 바짝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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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이의 4대강 삽질정치를 합리화해주던 교수들도 자칭 환경론자들이었다 저렇게 녹조라떼로 썩어가는 강물을 보고는 지금은 모두 어디로 숨었나? 브라질에 있는,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의 밀림을 사정없이 벌목하던 자들의 양심을 무마시켜 준 것도 자칭 환경학자들이었다. “아마존 천년 숲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아마존강 바닥에 쌓여 썩으면서 탄산가스를 만들어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 한다!”는 해괴한 논문을 써낸 작자들 말이다.


대진고속도로를 타면 덕유산과 지리산이 우릴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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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깊숙이 솔숲에 둘러싸인 휴천재는 해가 지자 제법 시원한 바람이 인다. 안주인 없는 새에도 텃밭의 남새들은 부지런히 할 일을 해내고 있었다. 늙은 오이, 노랑 호박, 기다란 가지를 한 소쿠리 땄다. 고맙지도 않은 잡초들은 더 실하게 컸고... 


해거름이 되자 이 산골의 물까치떼가 모조리 날아든다, 우리 배밭으로! 나야 좋은 화초와 채소를 잡초와 구분하고, 고운 새소리와 못된 물까치떼를 가리지만 하느님 눈에는 다 사랑스럽겠고 그 점에서는 내가 도저히 못말리는 분이어서, 나도 까치떼를 그냥 두기로 했다. 내가 소릴 질러봤자 서른 마리 쯤의 새떼가 듣는 척도 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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