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719일 목요일, 맑음


보스코에게 한여름에 태어나 엄니를 힘들게 했다고 핀잔을 줬는데, 보스코와 같은 날 내동생 호천이가 태어났고 오늘은 한여름의 복판에 오빠의 생일이니 울 엄마는 아무리 예전엔 하늘이 점지하신 대로 낳는다지만 더위에 고생하나 옴팡지게 하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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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전화를 하니 반가워한다. 미역국이라도 먹었냐니까 미역국이란 엄마가 옛날 생각하며 드셔야 한다는 답변. 오빠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아 아버지가 가르쳐주시는 노래를 가사의 내용을 이해도 못할 나이에, 아이답지 않게 1절부터 3절까지 불렀다. 그러다보니 자식자랑이 취미였던 아버지는 손님이 오실 때마다 오빠에게 노래를 시키셨고 어쩌다 가사라도 잊으면 쥐어박혀 방구석에서 훌쩍거렸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속이 상해 아버지 흉을 봤고, 아버지는 그러는 엄마더러 데리고 들어온 자식이냐’, ‘새끼를 끼고 도니 애가 계집애처럼 찔찔 짠다’, ', 그쳐!'라고 불호령을 내렸다.어떻든 오빠가 공부 잘한다며 초딩 3학년을 서울 외삼촌댁으로 유학보내셨고 다른 애들이 서울로 유학 갈 무렵인 고딩2에는 시골로 끌려와 안법고등학교에 데려다 놓고서 수시로 오빠를 감독하고 구박하셨다. 내가 보면 큰아들이라는 명분으로 아버지에게서 받은 수모만으로도 오빠가 아버지를 무척이나 미워할 만한데 절대 그럴 기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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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오빠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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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함께 미리내로 오면서도 아버지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고, 사람들 앞에서도 당신의 사랑을 그 시대답지 않게 적극 표현했는데도 엄마가 지나치게 차가워서 아버지의 낭만을 사그리 무시했다고 오히려 아버지를 두둔했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3년 남짓 소대변을 받아내고 벽화를 지우는 고생은 하셨다지만 아버지를 묻고 돌아오던 날 밤에 ', 이젠 홀가분하다'하던 엄마 말에 큰아들인 오빠로서는 막 화가 나더라고 회상했다.


아들은 다 저런가?’ 나는 엄마가 살아온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보통 남자들'마저 다 지녔을 폭력성이 너무 싫었고, ‘하루 세끼만 먹으면, 아니 세 끼 다 못 먹어도, 착한 남자에게 시집가겠다는 결심을 일찌감치 세웠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폭력에 제일 많이 노출되었던 오빠가 나와 전혀 다른 아빠평을 내놓는 걸 보면 남자들 심리가 생각보다 복잡한 듯하다. 


오빠는 늘 부모님 말 잘 듣고’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내놓는희생적인 큰아들로서의 길을 걸어 왔다. 그리고 아들농사도, 부부해로의 행복도 아픔을 겪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을 위한 생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을 찾아 누리길 속으로 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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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멘트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며 함께 깨진 핸폰이 방탄필름 덕분에 액정이 금만 가고 보는 데는 지장이 없다. 오늘 함양 나간 길에 필름을 바꾸러 여러 SK 대리점을 돌았지만 노트-4는 낡은 기종이라 필름이 없다는 대답. 나처럼 늙은 여자도 아직 엄연히 존재하는데.... 어느 날인가 핸폰 액정이 쏟아져 내리면 바꿔야지... 그렇다고 내가 먼저 쏟아져 내리지는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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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마드'라는 여성운동 사이트가 갈수록 '남성적 폭력성'을 보여 여성학을 공부한 나마저 마음이 불편해진다. 특히나 이완용, 박정희, 전두환 대신에 안중근, 김구, 노무현에게 남초라는 증오를 쏟아내고, 제주학살의 주역 서북청년단을 바탕으로 하는 개신교와 한기총 대신에 '사제단'이 앞장서서 40년간 반독재 투쟁을 벌인 가톨릭교회에 공격을 가하는 방향성에 의혹의 눈길이 간다. 


'성체모독'이라는 사건을 두고 독실한 신자들이 보이는 반응에는 오늘 한상봉 선생이 띄우는 '가톨릭일꾼'에서 읽은 글이 마음을 갈아앉혔다.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244


저녁 7시 함양도서관에서 느티나무독서회.’ 가즈오 이시구로의 창백한 언덕풍경에 대한 각자의 느낌을 말했다. 일본 패전후의 그 처절한 상황이어서 읽기에 너무 불편했다는 사람들과 몰입되어 그 비참한 여성들의 입장에서 일본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두 부류로 독서평이 나뉘었다


어느 편이건 일본이라는 불편한 실체,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자행한 만행, 그런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지금 막 움터 오는 한반도의 평화분위기를 60%의 일본인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예 없어 보인다


우리 아버지 시대의 가부장적 사회풍토가 그곳은 여전하고, 개인적으로는 선량해 보이나 집단으로는 사악해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공존시키는 일본에 대해서 이시구로의 다른 책도 더 읽고 이야기를 계속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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