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12일 목요일, 맑음


어제보다 날씨가 더 덥다고 예고되더니 습도가 좀 줄어선지 오늘은 에어컨을 계속 켜지 않고도 견딜 만하다보스코는 오전에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뒤꼍의 대나무밭을 손질하였다. 산죽을 베어내어 산죽이 차지한 땅을 줄이고 그 틈에서 고생하는 오죽을 살려 오죽으로 뒤꼍을 채워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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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앞의 욱이네 밭은 버려진 채로 대여섯 해가 지났다. 이른봄 비온 뒤 고사리 끊으러 욱이엄마가 서너 번 오간 뒤엔 늘 버려져 있어 제동댁 담장부터 자라오르던 대나무가 욱이네 밭 절반을 차지했고 몇 해 지나면 우리 축대도 타고 넘을 것 같다


욱이아빠가 떠난 지 5년인데 욱이엄마의 삶은 전보다 나아질 줄을 모른다. 술을 먹고 길에 쓰러지면 욱이엄마가 리어커로 끌어가던 욱이아빠! 그런 남편이 없으면 더 잘 살까 했는데 술주정뱅이어도 그 남자가 밭도 갈고 벼도 심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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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윗동네 올라간 길에 욱이네집을 들여다 보니 봉당에 신발은 되는대로 엎어져 있고 마루 끝에도 대충 던져놓은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 버려두고 사람이 떠나버린 집이랄까. 길에서 만난 욱이엄마는 얼굴이 통퉁 부어 평소보다 세 배나 되는 얼굴을 하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신장이 많이 나쁘단다


작은딸 순이는 코찔찔이 때 대학생 오빠 빵기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빵기가 방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날 천 마리 학을 접어 유리병에 담아다 선물을 했고, 다음에 커서 빵기오빠에게 시집가는 게 꿈이라고 했었다.


빵기야 천마리 학은 잊어버렸고 순이가 누군지 기억도 없겠지만 그때만 해도 보스코의 대학방학 서너 달을 함께 내려와 지내면 순이 관심은 온통 빵기였다. 그 뒤 일찌감치 도회지로 돈벌러 나간 순이는 열여덟도 안 되어 어느 총각의 아이를 가져 동거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애가 애를 낳아 업고서 집으로 오더니, 애와 애를 연년생으로 낳아 고생을 했다. 그래도 남편은 착실히 트럭을 몰고 동네마다 고물삽니다, 고물!’하며 돌아다니고 온 식구가 다 시집으로 들어가 야무지게 살림을 해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다니 나도 맘이 놓인다. 가난은 저렇게 가난을 대물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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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에서 제일 시원한 곳이 아래층 복도인데 선풍기로 복도 바람을 식당으로 불어들이면서 오후 내내 책을 읽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창백한 언덕풍경을 보는데 오늘 날씨 만큼이나 내용도 무겁다. 일본이 동아시아를 정복하겠다며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섬사람들이 육지를 동경하며 그 단절된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야망에서 나온 것 같지만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백성들도 당한 사람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삶과 심신이 파괴되어간다는 줄거리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으로 다섯 아이 중 넷과 남편을 잃고 국수가게를 하며 40이 넘은 미혼의 아들과 사는, 바깥일이라고는 도시 모르고 유복했던 후지와라 부인. 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범하게 국수장사를 하는데 무의식중에 그녀가 하는 말이 가슴을 친다. "아침잠에서 깰 때면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죽은)식구들 아침을 준비해야지 하는 생각 말야." 전쟁이 없었으면 틀림없이 그랬을 그니의 일상, 아니 한 여인의 삶, 가정과 사회를 몽땅 파괴한 가공할 전쟁.


등장인물 사치코는 남편 죽고 딸 미리코와 남편의 먼 친척집에 얹혀사는 처지. 딸 미리코는 어떤 여인을 찾아간다며 걸핏하면 집을 나가곤 하는데 전쟁 끝에 어린 미리코가 보았던 여인이다. 집을 나서서 골목 끝 운하에 갔다 굶어서 비쩍 마른 여인을 본다. 그니는 운하 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는데 두 팔을 들어 올리자 아기의 시체가 들려 있었다! 여자는 씩 웃어보이면서 그 아이를 미리꼬에게 보여주었다그 뒤 여인은 예리한 칼로 자기 목을 그어 자살했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았다. 미리코는 그 뒤로도 자꾸만 그 여자가 보인다고, 그 여자를 만나러 간다고 한다. 대여섯 살 소녀가 목격한 참혹한 전쟁의 한 장면. 그 잔인한 기억을 어떻게 버티며 평생을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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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우울해져 저녁을 일찍 해먹고 휴천강가를 산보했다. 강물은 맑고 고요했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틀자 기무사의 군사반란예비음모’가 톱뉴스다. 적어도 조선말기 동학운동부터,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후와 박정희 시대에 기득권 세력이 백성을 학살하는데 왜군까지, 미군까지 업고서 주저 없이 부려먹던 게 군대다. 그렇게 길들여지다보니 간혹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당장 군사반란을 일으킬 흉계를 꾸미고 반란으로 정권을 잡아온 군대! 저 집단을 이 참에 우리가 어찌 손봐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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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은 일단 키를 키우고서 몇해에 걸쳐 속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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