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2일 월요일, 비와 안개


비가 한바탕 내리고 난 뒤 강에서 피어난 안개가 산허리를 부등켜안고는 산위로 사라져 하늘의 구름이 되면 어디선가 몰려든 검은 구름이 함께 비가 되어 쏟아 붓기를 몇날 며칠. 강에서 울리는 물소리가 길갓집 찻소리만큼 크게 들려도 자연의 소리여서 찻소리처럼 광폭하지는 않다. 창가에 앉아 책을 보노라면 어느새 눈길은 산등성이를 더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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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큼이나 심심했던지 남해 형부가 전화를 했다. 폭풍에 배도 못 띄우니 어시장도 못가고,매일 바다에 내리는 비를 보는 것에도 식상했으리라. ‘오늘 뭐 하느냐?’는 물음에는 어감상 우리 한번 뭉치자는 번개팅 프로포즈에 틀림없는데, 비오는 날 어제 읽던 책을 마저 끝내고 싶어 나는 움직이기 싫다고 했다.


잠시 후 우리의 도발자 귀요미의 또 다른 유혹. '이 빗속에 움직이기 싫다'고 대답을 하고서 생각하니 형부를 본지는 두어 달, 미루는 담담 주에나 만날 수 있으니 내가 좀 무심했나 싶어 다시 보자고 연락을 했다. 이런 방면의 달인 미루가 순식간에 우리 부부, 남해 형부 부부봉재언니 남매, 그리고 미루가 싸부님으로 모시는 민영기 선생님 부부까지 열 사람을 엮어내어 1230분 산청에서 번개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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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도예가 민영기 선생님 댁에 가서 차를 마시며 조선의 다완(茶碗)’을 복원하는데 성공하신 얘기를 들었다미루 얘기로는, 민선생님이 이 도예계에서는 대단한 분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도예에 관해서 워낙 무식하다 보니 그분의 작품에 대한 식견이나 조예가 부족하여 이 방면에 각별한 관심과 안목이 있는 미루는 속이 많이 상할 게다. 그렇지만 어떤 일에든지 경지에 이른 분에게는 당연히 객관적인 감탄이나 존경심을 표해야 할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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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재언니와 임신부님은 어찌나 조용한지, 또 임신부님은 도자 굽는 가마,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다 마당 밑으로 돌려진 물길까지 하나하나를 얼마나 찬찬히 살피시는지, 그 잔잔한 호기심 하나 하나가 초딩처럼 귀여웠다. 특히 임신부님이 봉재 언니를 '누나'라고 다정하게 불러 세울 때는 어느 누나라도 그런 동생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맘을 품게 하는 마력이 있다. 한마디로 하느님 눈에도 사람들 눈에도 엄청 사랑스런 남매다.


형부가 남해집 울타리에서 아침에 꺾어온 월계수로 만든 관을 돌려쓰고 사진을 박고 아이처럼 좋아들 했다


달릴 길을 거의 다 달려 인생의 월계관을 쓸 만한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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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선생님 댁에서 다완에 말차와 양갱이 그리고 수박을 대접받은 찻자리를 마무리하고, 2차로 미루네 산청 매장으로 찻자리를 옮겨 남해 형부의 무궁무진한 경험담을 경청한다태풍에 구르는 남해 바닷가 파도만큼이나 크게 웃어제끼는 언니의 웃음소리는 우울한 마음들을 다 날려버리고 남는다. 이 산속에서만 가질 수 있는 내밀한 정담들, 서로를 필요로 하는 뜨거운 피가 도는 인간관계가 우리의 남은 날들을 아름답게 채워준다.


이사야생일과 미루의 축일이어서 남해형부가 월계수와 수국을  한아름 꺾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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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면 이사야와 미루의 생일에다 보스코의 생일(11)이 있어 요 3년간 매해 셋이 함께 축하식을 했기에 올해도 오늘 만나서 논 것으로 퉁을 쳐야 할지 장고중이다.


산청 한방박물관을 품어 안은 왕산을 넘어 화계에서 엄천강을 끼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나운 빗줄기가 강물에 투신하여 강물로 사라지는 아픈 사랑, 흔적 없이 사라지면서도 연달아 연달아 강물로 투신하는 빗줄기처럼 사랑하며 살아왔기에, 그런 사랑을 하였기에 우리가 예까지 왔다. 지난 날의 수고는 다 물안개 속에 둘리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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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한가하게 다시 책을 집어 드는데 아랫집 꼬맹이 한빈이가 아빠에게 안겨 2층에 올라왔다. 고 보드랍고 풋풋한 아가 냄새, 책이 대수냐! 한 인생의 긴 역사가 여기 내 품에 안겨 시작을 알리는데. 꼬물거리는 손가락,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발동작, 한 송이 꺾어다 탁자에 꽃은 향그런 치자꽃보다 더 아름다운 웃음. 발가락을 입에 물리니 한참 빨다가 빙그레 웃는다. 우리 시아가 로마에 찾아왔던 그날의 감격이 되살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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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이한테 제 발가락물리기: "에이. 퉤퉤! 내가 왕년에(두달 전) 많이 했던 짓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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