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1일 일요일,


공소예절 가는 길, 세찬 비바람에 능소화 고운 꽃이 꽃나무보다 땅바닥에 더 많이 피어 있고 더 많은 꽃은 길위로 흐르는 물길 따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데로 떠나갔다. 꽃이 봉오리를 조심스레 올리면 우리는 설레며 유월을 기다렸다. 그러나 능소화가 피기 시작하면 장마가 와서 막 피기 시작 한 꽃송이들이 빗살과 비바람에 그대로 사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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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가슴 두근거리며 꽃봉오리를 품었고 또 속절없이 저렇게 사위어만 갔던가! 며칠간 우리 대통령이 불편하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가슴 졸이는 이유는 민초들의 희망이 모처럼 송이들을 피워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리라. ‘세상에,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다니!’ 내 기억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이름을 빼놓고는 제 정신 가진 국민들에게는(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 자리에 올라앉은 인물들은 한결같이 기도와 사랑보다는 원망과 한탄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가톨릭에도 교황을 위한 기도가 미사경문에도 반드시 올라 있고 수시로 바쳐지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하기 전에는 진심으로 교황의 신상을 염려해 기도를 올린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 부부도 저녁마다 교황 프란치스코를 위해이 교황 밑에서 교회 개혁에 몰두하면서 특히 중국과의 국교회복을 도모하고 있는 파롤린 추기경을 위해(사사롭기는 하지만 그와 만나서 한 약속이기도 하다)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잘 돼서 교황청이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면 북한도 함께 정상화 되리라는 욕심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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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공소 식구가 큰비로 더 줄어드니 안타깝다. 다 들 농사를 짓거나 블루베리 수확중이어서 비가 많이 내려 걱정이겠다는 내 인사에 농익은 건 떨어질 테지만, 떨어지는 것만큼 매달린 걸 잘 익혀서 따라고 하느님이 안배하셨을 테니 안심하시라는 한 교우의 답변이 대견하다.


아침식사를 하며 휴천재 측우기’(딸기그릇)가 차고 넘치기에 ‘50mm!’라 외치고 쏟아버리고 다시 빗물을 받기 시작하자 금방 가득찬다. 지리산은 아예 구름바다에 잠겼고 앞산 와불산은 휴천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종일 화관과 베일을 바꿔 두르며 뽐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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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다리께로 물구경을 하러 갔다. 우리보다 먼저와 흐르는 강물과 인사하던 경무씨가 우리를 반긴다. 지나가던 세동 이장도 오랜만에 황토강을 이루어 도도히 흐르는 장관에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와 인사를 나누었다. 20년 전만해도 늘 맑은 물이 오늘만큼 흘렀었는데.... 


황토강이 기세 좋게 연화동을 휘몰아쳐서 한남대군의 유배지였던 새우섬 앞으로 도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려 '지리산 청정 낙원' 앞마당까지 갔다길가에 가로수로 심은 나무에서 보스코가 노란 열매를 따준다. 그런데 살구다. 면에서 그 나무를 심을 때는 자두나무라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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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우리도 그곳에서 한 그루 얻어다 텃밭에 심었는데 빨간 자두가 열렸다! 더 희안한 건 인월장날 체리 나무라고 재작년 두 그루 사다 심은 나무에서도 빨간 자두가 열렸다는 사실! 우리 집터가 요상해서 배나무를 빼고는 모두 자두나무로 둔갑하나?


돌아오는 길은 거문굴댁네 앞을 지나며 불러도 대답이 없다. 한길가 버들댁한테 마실가서 어제 내가 준 부추로 지짐이라도 부쳐먹나 보다. 어제 우리 셋이서 니약니약 주고 받던 정치 얘기버들댁 아들이 군의원으로 나왔는데 요번에 벌써 세 번째 떨어졌다 아이가?’ ‘전번에 세 표 차이로 떨어져 억울해서 나왔고 앞으로도 붙을 때까지  나올기다.’ ‘지엄씨 말이니께 그렇지 뭐가 세 표 차는 세 표 차냐?’ ‘그럼 네가 군청에 가서 세봤나, 세봤어?’ '그런 니는 세봤나?'


버들댁 아들이라면 저번에(3년전) 휴천재 길 포장할 때 부워놓은 시멘트를 굳기도 전에 트럭으로 깔아뭉개고 도망간 사람 같아서 그 얘길 꺼냈더니만 어데? 가가 이장네집 가서 신고하고 가는 걸 내 눈으로 봤다 아이가?"라고 싸고 돈다.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친구 아들 일이라고 감싸주는 마음이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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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남편 휴가를 맞아 블루베리 따느라 고생하는 엄마한테 밥이라도 해 드린다고 내려왔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야지 딸을 세간 미천으로 받지 나 같은 여자에겐 안 돌아오나 보다


손주 한빈이가 지난번엔 뒤집더니 오늘은 긴다. 엄마에게 안겨 이층 마루로 놀러와서도 침을 흘려 연신 방바닥에 발라가며 앞가슴으로 마루 청소를 깔끔하게 해준다! 제 집 청소 잘 하며 살림 하나 끝내줄 운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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