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9일 금요일, 맑음


아침 일찍부터 위아래 동네 이장님들의 방송이 문정리 골짜기 전체를 왕왕 울린다. 오늘은 휴천면 면민 체육대회날로 휴천면 공설운동장에서 축구, 윷놀이, 투호놀이, 한궁, 노래자랑 등을 하다가 점심은 뷔페로 먹는단다.


엊저녁 휴천강에 강물이 얼마나 늘었나 보러 내려갔다. 도중에 당신 논을 둘러보던 유영감님이 "교수님이랑 운동가는 게 보기 좋네요."라며 부러워하시기에, 같이 가자고 깍두기로 끼워드리겠다 했더니 "어데, 내일 공설운동장에나 같이 갑시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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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으면 선수들도 많아 재미졌고’ ‘마을마다 부녀회에서 음식을 해와 푸지고 만났었는데’ ‘이젠 부페식당에서 불러다 주니 부패한 음식처럼 맛탱이가 없다.’ 는 영감님의 푸념.


집에서 종일 노는 도시 여자들도 손님 대접을 한다면서 바깥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나서 집에서는 차나 과일 정도를 내더니 요즘은 아예 커피도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마시고 헤어진다. ‘?’ ‘집에서 하자면 집안 청소와 정리가 번거롭다.’는 대답. 하물며  요즘처럼 할 일이 지천인 시골에서 몇 안 되는 일꾼 먹일 식사 준비에도 다들 머리를 흔든다.


이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하던 덕산댁(‘현대아줌마’)은 마을회관에 가는 일이 없었다. 겨울에는 산넘어에서 통나무를 잘라다 지게로 지고 산비탈을 내려와 구루마로 끌고 가서는 화목보일러를 돌렸다. 초봄엔 산나물과 고사리로 돈을 하고, 한 뼘의 땅도 놀리는 일 없이 걸레질한 대청마루처럼 말끔하게 정리하고 무어라도 꽂아서 봄가을로 거둬드리는 이 동네 최고의 일꾼이자 농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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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년 봄 덕산양반이 교통 사고후유증으로 치매가 오고 화장실에 모시고 다니다 넘어져 이번엔 덕산댁이 대퇴골 손상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영감님은 전처의 아들 며느리가 돌보고 덕산댁은 당신이 후취로 들어와 낳은 애들한테로 가서 치료를 받기 6개월! 문정리로 돌아오기는 했는데 더는 나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늘 깔끔하던 시부모 무덤은 잡초로 덮이고, 그 옆의 문전옥답은 묵혀버렸고, 밭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 개망초 꽃이 만발하였다. 작년만 해도 고구마 줄기가 한창이고, 들깨와 콩이 싹을 세우고, 강낭콩이 밭가로 여물어 터질 때인데, 예전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때가 있고, 겸허하게 자기 처지를 받아들여야 순응하는 자세가 되어야 덜 힘들기에, 그니 신세를 슬프게 바라만 본다.


조카 에스터의 양장실습 덕분에 패션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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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스.선생댁 부부와 소담정 도미니카와 인월에 있는 오리고기집엘 갔다. '우리 나이가 되면 고기 먹는 일을 피하기 일쑤여서 단백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오리고기를 한 달에 두어 번은 먹어야 한다(병약한 아내에게 먹여줘야 한다)'는 게 스.선생님 지론이다. 우리야 그 말에 절대 동의하여 오랜만에 오리고기를 양껏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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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카페로 옮겨 올 여름 산티아고 순례에 도전하는 얘기에 스.선생님을 부러워하던 우리는, 요즘 시국으로 보아 남과 북의 통행이 가능할 시기가 언제쯤일까 어림잡다가 남북으로 철도나 도로가 뚫릴 시기를 2년내로 잡고서 그 해 여름 개마고원 피서 트래킹을 즉석에서 계획하였다, 우리 다섯 명이


매달 1인당 5만원씩으로 개마고원 여행 적금을 들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당장 5만원씩을 받아내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적금통장을 만들어 도미니카에게 관리하라고 건네주었다. 손에 들린 통장과 더불어 개마고원 트레킹이 손만 뻗으면 잡힐 지척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곧 성사될 것 같은 이 뿌듯한 희망에 우리는 오늘 그 씨앗을 심었다. 요즘 과로와 독감으로 몸져누웠다는 '우리 이니' 덕분이다. 


인월은 조선시대 역()이었다는 기념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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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 푸른 초원에서 고삐풀려 마구 뛰는 망아지처럼 대책 없이 자라나는 텃밭의 지심을 매자고 드물댁을 불렀다. 모기의 침이 절대 뚫을 수 없게 옷을 잔뜩 끼어 입고 얼굴은 깔따구 방지 모자를 쓰고 땅을 박박 기면서 풀을 뽑았다


비온 뒤 부드럽고 포실한 흙은 나도 한입 먹고 싶게 맛나 보인다. 땅에 빗줄기 같은 땀을 뿌리며 일을 하고 난 뒤의 그 뿌듯함은 아마도 우리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우리 어머니의 자궁이 그 흙속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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