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18일 월요일, 맑음


온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들으면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소리들이다. 무논에 개구리 소리, 쓰르라미 소리, 검은등 뻐꾸기와 소쩍새는 번갈아 솥 적다!’며 홀딱 벗고!’라며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어두운 밤의 지평에 걸어놓는다. 서울에서는 차 소리와 경적, 사람들 소란과 스피커가 우리 귀를 지치게 만들지만 지리산 속깊은 밤을 적시는 아우성은 자장가처럼 지친 몸에 꿀같은 단잠을 불러다 준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늦게까지 손질한 뜰을 보니 비자나무는 너무 잘렸고 무성한 둥굴레가 아예 베어져 바닥 이끼와 뒤엉켜 있다. 주인이 늘 함께 살면서 손질을 해도 마냥 안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초목인데, 달포에 한번이나 와서 급하게 손질하고 던져놓고 가니 저 생명들의 섭섭함이 여간하다. 우리 집사가 한번이라도 뜰을 둘러보는지도 모르겠지만 대문을 닫는 순간 서울집은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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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부엌청소를 하다 계란을 판째로 엎어 여덟 개가 금이 갔다. 하는 수 없이 계란말이를 해서 놓아두었다 구총각이 밤늦게 돌아오기에 반찬하라 했더니만 계란말이를 저녁간식으로 다 먹었단다. ‘~!’ 보스코의 경우를 봐도 남자들은 평소에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나눠먹을지 학습이 안되나 보다. 장가를 가고 나서야 아내에게서 그런 교육을 받나 본데 요즘은 여자라고 해서 별반 낫지도 않다.


구총각더러 겨울 났으니 엄마 좀 오셔서 이불 빨래, 방 커튼 빨래를 부탁해라.니까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란. ‘일하는 엄마가 쉬는 날까지 서울 오셔서 내 일을 해 주시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니 아들의 자립심 하나 끝내준다. 우리집 살다 간 총각들의 공통점이 일찌감치 엄마에게서 독립했고, 엄마의 치맛자락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살며, 그러면서도 엄마를 각별하고 애틋하게 위하는 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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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두 번째 집사 손총각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급식이 없던 때라 그의 도시락 찬을 보신 두 분 선생님이 번갈아 반찬을 해다 주셨단다. 그러던 어느 날 난생 처음 닭강정을 먹었단다. 그게 얼마나 맛나던지 감히 이런 부탁까지 드렸단다. ‘선생님, 한 번만 더 해 주시면 안 돼요? 울 엄만 생전가야 이런 거 맛도 못 보실 텐데, 주말에 논일하러 집에 갈 때 가져가 맛을 보이고 싶아서요.’ 


그 손총각이 오늘 나한테 두 아들 사진과 함께 안부를 물어왔으니 손아빠로서의 그 자상한 마음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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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우이동 다리께 열쇄수리집에서 오래 됀 재봉틀을 발견하고 얻어온 적이 있다. 15kg이 넘는다는 쇳덩어리를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 집에까지 가져다 놓았다. 재봉틀을 잘 고치고 수집한다고 소문난, 거창 목수 황신부님께 전해드리려고 오늘 실어오던 길이라 무주에서 고속도로를 나와 구천동을 지나서 거창 위천 북상골짜기에 있는 그분의 ‘덕유산한옥학교엘 갔다


때마침 김천 박신부님도 와 있었고, 강모니카(알고 보니 내 일기 페친이었다)씨, 거창에서 가르치는 김선생님도 황신부님 댁에 와 있기에 환담을 나누다 위천에 내려와 함께 어탕국수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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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화제는 시종 남북회담, 북미회담,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쉽에 얼이 빠져서도 전혀 이견이 없었다. 모두 우리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박신부님만은 태그끼 아재들 모임에서 박그네에게 큰절을 올린 기억을 더듬으며, 그 아재들과 카톡으로 주고받는 가짜뉴스’에 따라 '한반도 적화통일'에 관한 걱정을 거듭 물어오고 보스코는 또 인내로이(그의 특기) 자분자분 설명하여 그분을 안도시켰다


거창 위천읍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80년대형 다방이 있었고, 주인은 LP판을 벽에 가득 세워두고 손님을 맞았다. 커피를 마시며 우리 일행은 시국이 풀리자 마음도 넉넉하게 풀려선지 '봄날은 간다', 직녀에게’, 빈센트의 ‘스타리 스타리 나잇’, ‘맨발의 이사도라’, 베르디의 레쿠이엠등을 LP 판으로 신청해 들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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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황신부님께 재봉틀만 전하고 오겠다던 계획이 저녁 8시까지 우리의 마음들을  재봉틀로 누벼 잇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보내고 헤어져 지리산을 달려와 저 능선 위로 별이 빛나는 밤에 휴천재에 들어섰다


내가 하품을 거듭하며 일기를 쓰는 시각에 아쉽게 우리 축구는 졌지만 붉은악마들만큼 서운하지는 않았다. 데이트 중에 남친들에게서 듣는 '축구 얘기', '군대 얘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젤로 지겨워하는 게 여자들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