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16일 토요일, 맑음


춘천교구 영동가톨릭사목센터’의 새벽. 주교님이 주무신다는 방 거실에서는 창밖으로 한가로운 날개짓을 하는 갈매기의 흰빛 날개가 눈부시다. 아침이면 일렁이는 파도 위로 해가 순식간에 떠오르고 바닷가에서 저 멀리 오대산까지 온 세상이 그 앞에 발가벗는다.


아침 8시에 배신부님이 드물게 맛있다는 섭수제비’(자연산홍합)집엘 데려가셨다. 바다 비린내가 물씬한 시장통에 부부가 함께 장사 준비를 하다가 신부님을 보자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는 것으로 보아 가까운 단골이 틀림없다. 신부님은 만나는 모든 사람, 사목하는 모든 교우를 단골손님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분 같다. 내게는 좀 매운 해장국인데 보스코와 신부님은 맛있게 들고 신부님은 거기다 된장에 청량고추까지 찍어 드시기에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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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반찬으로 나온 젓갈과 열무김치가 맛있어 먹다보니 어제 수타사 가는 길에 점심을 먹던 집, 젊은 부부가 만들어 내 놓던 밑반찬과 비교가 된다. 유치원생 도시락 찬같이 맛이 하나도 안 밴 음식을 내 놓고 맛이 어때요?’라고 물어오는데 대답이 힘들었었다. 그래도 젊은 나이에 산속에 내려와 흙집 짓고 텃밭엔 오이 상추 옥수수를 키우며 정성을 바쳐 찬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는 그것만으로도 기특하지 않았던가?


아침식사 후에는 주문진항이 다 내려다보이는 등대로 우리를 데려갔다. 끝이 안 보이는 바다. 그 바다로 빨간 등대 옆을 지나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만선이 되어 묵직한 배가 별 탈 없이 하얀 등대 옆을 미끄러져 들어오는 걸 상상해 봤다. 등대의 색을 흰색과 빨강색으로 칠해 드나드는 배가 충돌 없이 바닷길을 다니라고, 방파제의 작은 등대는 가까운 바다 교통을 책임지고 언덕 위의 큰 등대는 먼바다의 교통을 책임진다고, 15초에 한 바퀴 밤바다를 비추며 27km나 되는 먼 발로 빛을 쏴보내 뱃사람이 그 무서운 물굽이 속에 자기들만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않게, 자기네를 기다리는 여인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배신부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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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언덕에서 나무기둥 사이로 빠져나가며 자신의 비만상태를 가늠한다는 틈새로 지나갔는데 나는 '날씬'을 무사통과했는데, 보스코는 '뚱뚱` '통통'을 겨우 빠져나와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손님이 올 적마다 이렇게 바닷가를 안내하는 배신부님의 관광코스를 따라 바위에게 빌면 아들을 준다는 아들바위도 보고 바닷가에서 커피도 마시며 천혜의 자연 항구 주문진(注文津: 옛날 부산과 원산을 오가던 뱃사람들이 딱 중간의 이 항구에 들어 물과 식량, 나무와 일용품을 주문하던 곳이라는 신부님 설명)의 관광을 끝내고 신부님과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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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성심원의 인연으로 가깝게 지내던 엄수사님이 원장으로 계시는 강릉의 애지람을 잠시 방문하였다. 작은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지적장애우 사회복귀시설이다. 예전에는 장애우들을 집단으로 수용했는데 이제는 그들을 사회 속으로돌려보내 가정과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도록 이끄는 활동에 치중한단다


분노조절이 힘든 중년의 아저씨가 공원에서 혼자 놀고 있고, 집에 오는 손님마다 깔끔하게 깎은 연필을 하나씩 나눠주는 총각, 작년 음악회 때 만났다고 반가워하는, 하얀 머리칼의 아저씨, 가져간 꽃다발을 보자 자기 달라고 조르다가 돌려주는 처녀, 각자 하느님께로부터 뭔가 하나씩을 더 받아 우리와 다른 환경에 사는 이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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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님들 기돗방은 물탱크 옆 다락방에 있어 허리를 기역자로 꺾고서야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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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영성생활을 해오고 그런 글을 쓰던 헨리 나웬 신부님이 말년에 지적장애우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맑은 영성에 푹 빠졌다던 얘기를 들러주는 엄수사님 얘기에서 바로 그런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봉사하며 살고 계시는 수사님, 신부님(강신부님은 55년간 선교사 생활을 하고 계신다)들께 깊은 감사와 감탄을 느꼈다.


굴굴굴로 이루어진 양양고속도로를 서울까지 달려와 다시 일산까지 가서 일산병원 장례예식장에 들러 광주민주화 운동의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며 살고간 남편 강종호(피델리스)를 어제 하느님 품으로 떠나보낸 변레지나를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광주 5.18 국립묘지에 안장된단다. 민주화 과정에서 싸워온 여성동지들을 만났고 문규현 신부님도 뵈었다


집에 오니 지난 36시간의 운전에 지구를 한 바퀴 돈 듯한 피곤이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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