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18일 수요일, 맑음


아래층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구총각이 학교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다.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라 기운이 없고 꺼칠해 보여 제대 후 첫 학기라 저렇게 힘이 들겠지싶다. 저렇게 한두 해 지내고 나면 여친도 사귀고 연애도 하고 열병을 앓다가 헤어지기도 하려니... 그 시간이야 죽을 듯 아프지만 젊음이라는 게 좋아서 아팠다가도 쉽게 털고 일어서고 더 좋은 아가씨를 만나 언제 아팠더냐 싶게 더 행복해지려니.... 


사랑은 참 신비롭다혼자서 좋다고 사귀자고 애걸하는 총각과 헤어지려는 한 처녀가 그 총각을 매몰차게 잘라내는 기막힌 대화가 나의 눈부신 친구에 나와 한참이나 혼자 웃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상대라면 한번 쯤 시도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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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원한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알아, 하지만 이제는 날 원해?" "아니, 좋은 사람이 생겼어." “둘 다 죽여버리겠어." "지금 당장 나라도 먼저 죽일 수 있잖아." "그러기엔 너를 너무 좋아해." "그러면 당신 동생을 시켜. 아니면 아버지나 친구한테라도 부탁해. 그들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 ..." "하지만 누구에게든 나부터 처리하라고 해. 내가 두 눈을 뜨고 있는데 내 주변 사람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내가 너희 가족을 죽일 테니까. 내가 정말 그럴 수 있다는 건 알잖아? 가장 먼저 당신부터 해치우겠어." 그는 격노하여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참았던 흐느낌이 터져 나오며 입술을 떨었다. 그러더니 등을 돌려 가버렸다....


나폴리에서 카모라(Camorra)식으로 하는 여인의 절교 선언. 이보다 좀 더 한 게 시칠리아식 이혼이라는 말이 있다. 그 보수적인 섬나라에서는 아내를 버렸다간 그니의 집안 남자들에게 죽음을 당하기 쉽다. 그래서 치밀한 수법으로 어떻게든 아내를 죽여버린단다. 아무튼 죽어야 헤어질 수 있다니까 아주 성서적(?)이다. 우리네 보통 결혼이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죽어라 싸우며 살겠습니다.’라는 선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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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아침에 '서정치과'에 가서 정기 구강검사를 받고 스켈링을 하고 왔다. 곽원장님은 지난 25년간 우리 가족의 이를 책임지는 주치의다.말하자면 우리 꽁짜클럽의 주치의다.우리 부부는 물론 빵기네가 일시 귀국할 때마다 온 가족의 치아를 관리해 준다. 내가 아는 서울치대 교수님이 '당신이 가르친 최고의 명의'라고 칭찬한 의사다. 


이층 세탁기가 '문이 열렸다.(DE-1)'거나 '배수구에 이물질이 끼었다 (0E)'라는  두 신호를 보이며 번갈아 태업을 한다. 하는 수 없이 아침에 LG A/S센터에 연락을 했더니 1030분에 수리기사가 왔다. 참 대단하다, 대한민국의 A/S 수준. 그런데 요즘 삼성서비스직원에 대한 본사의 횡포가 뉴스마다 뜨면서 고객의 이 편리를 위해 그들이 얼마나 혹사당할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타인들의 고통 위에 내 편리와 안락이 이루어진다는 건 못할 짓이다.소비자 역시 돈이면 뭐든 해결 되다는 잘못된 생각을 내려 놓아야 한다. 더구나 돈으로 모든 걸 다 지배할 수 있다는 삼성의 오만을 견지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삼성물건을 안 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써 봐도 가전제품은 LG만한 데가 없다.


저녁에 손님이 온다 해서 시장 가는 길에 영심씨네 집에 잠깐 들렀다. 우리 동네 시장은 언제 보아도 활기가 넘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모든 가게 주인이 2, 30년 낯익은 얼굴들이다. 


영심씨는 얼마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좀 한가해질까 했지만 다리 수술로 고생을 하고 있다혼자서 창밖이나 내다보며 외로운 오후를 지낸다내 다리지만 언젠가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게 되는 날들이 온다, 우리 모두에게. 저녁준비가 급했지만 그니의 얘기를 들어줘야 될 것 같아 마주 앉았다.


도봉구청에서 한 평 농장을 분양받아 텃밭 농사를 하면서 땅과 흙이 부부의 치유자 역할을 하더라는 얘기가 머리에 남았다. 저녁에 온 두상이 서방님도 심장전문의로서 힘든 병원생활 후 집에 돌아와 분양받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치유 되는 느낌을 갖는다니 자연의 치유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다. 바로 하느님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영이 온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두상이 서방님(보스코의 외사촌)이 이스라엘 학회를 가며 동서를 대동하는데 그곳에서 짧은 여유를 어떻게 조리있게 쓰며 성지를 둘러볼 것인지 조언을 들으러 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척간의 신뢰와 정이 서로 아쉬웠던 터라 이런 만남은 귀하다. 심장 전문의인데다 바로 보스코가 앓는 부정맥이 그의 전공이라니 왠지 보스코가 안심하고 아파도 괜찮을 것 같은느낌이 든다. 하기야 아무리 훌륭한 의사가 가까이 있더라도 안 아픈 게 가장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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