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17일 화요일, 맑음


오늘 하는 대장내시경 준비로 장청소를 하느라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보스코 땜에 자다깨다를 반복하느라 눈꺼플이 천근이다, 분명 잠을 자기는 잤는데.... 내가 그런데 정작 본인은 밤새 잠을 설쳤으니 얼마나 힘들까? 김 원장님 말대로, 이런 검사는 실제 필요 없다고, 거기서 발생하는 의료공단의 경비가 엄청나다고, 그래서 의사인 그 부부는 이 정기검진이나 내시경검사를 안 받는다고 하니 우리도 재고해 봐야겠다.


우리 둘이 살 때는 이층화장실 하나가 번거롭지 않았지만 빵기 하나가 더 있으니 출입이 바쁘다. 화장실 안쪽이 샤워장이어서 변기의 물을 누를 적마다 샤워물의 온도가 일정치 않아  "~! 뜨거! 아악! 차거!" 샤워장에서 비명이 터진다. 우리집 남자들은 5분에 샤워가 끝난다. 머리에 샴푸를 바르고 그 흘러내리는 샴푸 물에 몸을 헹구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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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습관은 보스코가 60년전 살레시오 학교 기숙사에서 익힌 거다. 1950년대! 그 시절로서는 꿈같은 일이지만, 겨울에도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옷을 갈아입는 위생적인 생활을 했단다. 추운 겨울 샤워장에서는 7분의 시간을 주어 뜨거운 물로 목욕을 시키는데 5분이 지나면 호루라기를 불고 2분이 더 지나면 온수를 잠가버렸단다. 학교의 성무감(聖務監) 민신부님은 스페인 선교사로 아주 깐깐하셨단다.


그때 익힌 목욕법이 습관이 되고 DNA가 되어 빵기도 5분 샤워를 하더니 시아 시우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단다. 작은손주 시우에게서는 더 진화하여 3분으로 샤워를 단축하는 신기록도 달성했단다.


살레시오 중고등학교 교훈이 '몸을 깨끗이, 마음을 깨끗이, 환경을 깨끗이!` 였다는데 요즘 보면 그 교육이 보스코에게 이뤄낸 결과는 마음을 깨끗이!’ 정도인 듯. 초딩 시절 엄마에게 매를 맞으면서 겨우 목욕을 했을 만큼 지금도 엔간히 내 잔소리를 들어야 목욕을 하니 몸을 깨끗이는 저리갔고, 책들을 너절하게 늘어놓은 채 먼지가 쌓이고 쌓이는 그의 책상을 보면 환경을 깨끗이!’는 온전히 아내에게 미뤄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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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분에 공단검진을 예약한 보스코를 한일병원에 데려다 주고, 나는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선내과에 피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하러 갔다. 선내과 원장님도 백내장수술을 하며 이렇게 깐깐하게 검사를 하는 안과병원은 처음이라며 책임감 있는 태도라고 칭찬하신다. 선내과 원장님은 안식교 신자로 성실하고 타인에 대해 늘 긍정적인 시선을 보이는 모습에서 당신이 믿는 종교의 신실함을 보게 만든다. 요즘 매스컴에 나타난 만민중앙교회 목사의 추악한 얼굴과 너무도 대조된다. 어쩌다 하느님이나 예수를 자처하는 사기로 대형교회를 만들고서는 예수 팔아 호의호식하다 여신도들을 겁간하는 목사들이 참 많다는 소문인데 드디어 구체사례가 드러난 것이다.


한일병원에 돌아가보니 보스코가 혼자서도 검사를 잘 받고 있었고 위내시경을 받으려는 참이었다. 전에는 수면내시경을 했는데 의식이 있는 상태의 내시경 검사를 택한 건 좀 힘들더라도 잘 한 일 같다. 장내시경 할 때는 담당 의사가 당사자 보스코는 물론 보호자인 내게도 대장 속을 관람시켜줬다.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윤기 나는 붉은 산호 협곡엔 게실이라는 개미굴도 있고 폴립 하나를 즉시 떼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묻는 말마다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품이, 옥련씨 말대로, 그 병원에서 친절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분이라는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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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도 흰죽을 먹으며 중병이라도 걸린 듯 힘없어 하던 보스코, 어제 밤 못 잔 잠을 실컷 낮잠으로 채우면서 평화로운 오후를 맞는다. 오늘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80대 노인을 보며 저 나이면 삶과 죽음에 도통해야 품위 있게 보일 것 같아 이 다음 정기검진은 그만 받아야겠다 맘 먹었다


담넘어로 봄볓에 해바라기를 하는 상수 엄마와 동네 아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이 봄의 찬란한 꽃그늘 아래 동네 아짐들도 조금씩 져감을 실감한다. 이 동네에서 함께 살고 함께 늙어가는 이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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