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9일 월요일, 맑음


오늘은 별일 없겠지?’ 이 산속에서 별일이라야 별 볼일 없는 게 별일이다. 가끔 내려다 보는 한길에 읍내 버스가 오가고 마천석재들 나르는 25톤 트럭이 굉음을 내고 달려 내려가지만 눈으로만 소음이 보이고 500미터 떨어진 휴천재에서는 그 소리가 안 들린다. 휴천강 물살도 부지런히 내닫지만 큰물 질 때만 물소리가 들리고 여기서는 그냥 거기 강이 흐르고 있어 든든하다는 느낌뿐이다.


휴천재가 지어지기 전 1992. 토마스네가 문상마을에 살 때 토마스네를 보러 와도 잘 방은 없어 바로 이웃 천주섭리회 수녀님 댁에서 묵었다. 방밖으로 툇마루가 있고 툇마루에서 돌계단을 내려가면 사시사철 빨래를 할 정도의 물이 졸졸 흐르는 빨래터가 있었다. 낭만적인 환경에 반해 걸레와 양말을 빨아 나뭇가지에 널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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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툇마루에 나와 달과 별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면 창호지 쪽문 넘어 밤새 조잘대는 시냇물소리의 비밀을 훔쳐들으랴, 솔숲에서 '밤새 들리는 솔솔바람의 먼나라 얘기들'도 엿들으랴, 창호지에 얼비치는 나뭇가지의 춤사위에 매료되랴, 꼬박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낭만적인 물가와 나무들이 통으로 그림자 지는 창속에서는 하루 이틀만 살 만하겠구나’ 그때 알았다.


아침에 보스코의 왼눈이 아예 새빨갛다. 흰자위에는 동그라미도 하나가 또렷하다. 엊그제 시제 때 꽃바람 흙바람을 맞아 알레르기로 그리 됬으려니 했지만, 눈이 제일 귀중한 사람이기에 진주에 있을 만한 안 돌팔이안과를 찾아보기로 하고 미루에게 물었다. 그니에게 물으면 즉시 답이 나온다. 게다가 함께 가주겠다며, 자기 차로 가자며, 앞장선다


그니 주변에 있는 65세 이상의 독거노인, 동거노인들이 모두 그니의 이런 친절과 보살핌에 폭 빠진다. 자기는 효소사업을 접고 아무래도 효도 요양원을 열어야겠단다. 아무튼 평소에 늘 아내가 보호자로 따라가야 든든해하는 보스코, 오늘은 나와 미루, 두 여자를 보호자로 내세우며 진찰실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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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디나젊은 의사는 그냥 실핏줄이 약해져 터져서 그러니 일주일간만 약을 넣으면 된단다. (그의 왼눈 백내장은 다음 주 공안과에서 진단을 내릴 게다.) 곁불에 고기 굽는다고 나도 간 길에 검진을 받았더니 내 오른눈 백내장이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되도록 빨리 수술을 마저 받으란다


보스코는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메타여서, 의사의 괜찮습니다라는 진단이 나온 순간, 이미 병은 완쾌되었다. 늘 시간이 아깝다면서도 아침부터 2 보호자로 나선 미루가 예뻐서였는지 함양 백전에 한창일 벚꽃구경을 가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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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돌아나오는데 갑자기 옆으로 다가선 자동차가 우리더러 창문을 내리라더니 미루 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고 일러준다. 다행히 바로 가까이 수리점이 있어 타이어를 고쳤다. 참 재수놓은 날이다. 산청 미루네 매장으로 돌아와 차를 마시고, 미루네와 우리 부부 넷이서 함양 샤브향에서 점심을 하고 병곡으로 올해 마지막 벚꽃 구경을 떠났다


상림 벚꽃이 모두 졌기에 걱정했지만 함양에서도 유난히 춥고 봄도 유난히 늦는 백전 병곡은 구불구불 길가에 양옆으로 삼십여리 시립한 벚나무가 깔끔하게 서로 손을 맞잡아 꽃터널을 만들어 우리를 반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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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봄날을 보여주던 꽃길이여, 축복 있으라! 아직도 이 봄을 보며 찬탄하는 여린 가슴들이여, 축복 있으라! 또한 밝고 화사한 날을 함께 탄성지르던 여인들이여, 축복 있으라! 그러나 오늘 4월 9일은 박정희가 43년전 사법살인을 저지른 '인혁당 사건이 우리 양심을 무겁게 짓누르는 날이요 세계법학자들이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스위스의 국제법학자협회)로 기념하는 날이다.


유신독재를 연장하러 무고한 8명의 생명을 죽인 아비의 범죄를 '뭐가 어때요?'라는 어투로 대법원 판결이 유죄(1975)와 무죄(2013)로 둘로 나왔지 않아요?" (인혁당 시비는) "나에 대한 정치공세에요.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에요.”라고 호언했던 딸은 엊그제 2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적어도 그 사법살인을 최종 확정한 대법원 판사들(민복기 재판장,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 한환진, 임항준, 안병수, 김윤행, 이일규[유일하게 반대의견])의 사법살인은 언제 누가 죄를 물을 것인가

(희생자중 유일한 가톨릭신자로 기억되는 여정남씨를 애도하여 당시에 보스코가 쓴 글: 

http://donbosco.pe.kr/xe1/?mid=column05&document_srl=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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