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6일 금요일, 오전에는 비 오후에는 짙은 황사
이틀간 비가 내리니 계절과 상관없는 엉뚱한 눈이 내린다. ‘꽃눈’이 내린다. 세찬 바람에 나무에 붙은 꽃잎들도 사방에서 ‘꽃눈보라’를 이룬다. 얼마나 바람소리가 드센지 휴천재 좌우편 능선에서는 하루 종일 송림이 사납게 '표호'한다!
비닐 씌워가며 고생스레 눈을 틔운 새싹, 아직도 고깔모자 뒤집어 쓴 두 잎 짜리 어린 싹들이 아예 녹아 버리는 중. 하도 여러 가지를 포트들에 나눠 심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갓 태어난 생명들의 신생아실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당당하고 질긴 싹은 루꼴라다. 남의 애들은 다 벌겋고 어슷비슷한데 ‘내 새끼만은 유난히 코도 오똑하고 시원하게 넓은 이마에 귀마저 부처님 닮아 백일이나 되어 보이지 않수?’ 남들이야 '그 할매 웃겨'하겠지만 어차피 미의 기준은 상대적이고 거기에 사랑이란 콩꺼풀이 씌우면 하느님도 못 말리신다. 당신도 세상을 만들어 놓고서 ‘참 좋다!’하셨다니까...
그런데 상처 입고 움츠러드는 건 새싹이나 어린아이만 아니고 어른들도 마찬가진가 보다. 내 나름 맘을 다해 정성껏 돌봤는데 받아들이는 쪽이 시큰둥하거나, 선의를 베푸는 내가 ‘갑’이 되어야 하는데 ‘을’이 된듯한 느낌이면 묘한 불쾌감에 사로잡히나보다.
그럴 때는 내가 뭔가 베푼다는 자만심, 상대방은 당연히 내게 감사해야 한다는 우월감이 상처를 줄 수 있겠다. 여려 해 전 제네바 루터교 미사에 참석했을 때 여사제가 “선행을 베풀 때에는 받는 사람의 심경을 늘 헤아리세요.”라던 충고, 여자만이 간파할 수 있는 섬세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도 전에는(아마 지금도?) '해주고 욕먹고`를 되풀이했는데 나와 비슷한 언행을 내 눈으로 목격하면서 조금씩 깨달아왔다. 우리 주님이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신 까닭을 알 만하다. 그리고 “선행은 받은 사람이 소문내야지 베푼 사람이 소문내서는 안 된다”는 로마시대 속담도 있다.
체칠리아가 우리 텃밭 부추와 파를 좀 뽑아다 달래서 신선초까지 뜯어 한 양푼 담아 들고 도정 ‘솔바우’로 갔다. 많이 야위어 봄바람만 불어도 날려갈 것 같다. 나야 매일 '여보, 살이 찐 것 같아.' '나 빼야겠어.'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니 앞에선 그런 말마디가 죄스러웠다. 헌데 그리 아파도 자신의 고통에 함몰하지 않고 담담하게 평정을 유지하는 그니의 모습에서 병고 속에서 잘 영근 향기를 맡는다. 나와 비슷한 나이면서도 ‘살만큼 살았고 혹여 죽어도 이 고통을 멈추는 일이니 그리 애달플 일도 없다’는 구도자의 의연한 모습이랄까? 그녀를 보기 전 까지는 그니 걱정을 많이 했는데 돌아내려 오면서는 내 마음이 오히려 위안을 받는다.
오후에 어제 전호나물 보내준데 고맙다고 잠깐 보건소에 들렀다 어제보다 더 많은 선물만 안아들고 나왔다. 새로 온 보건소 선생도 외로움이 뚝뚝 듣는다. 사람은 타인을 필요로 하는 한, 나 외롭다는 걸 넌지시 일깨우면서들 살아간다. ‘나 여기 있어요. 너무 추워요. 당신은 견딜만해요?’ 그렇게 상대방을 향해 똑똑 벽을 두드리는. 누구의 노랫말대로, ‘인생은 섬이다.’
‘벽속의 여자’ 박그네에게 1심 공판이 있었다.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 그 선고의 의미를 모른 채 오늘도 전신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를 주문외고 있을까? 자신만을 비쳐보면서 타인이 필요 없는 삶은 누구에게나 저주이리라. 그래도 내심 착잡해서, 뭔가 따뜻하고 향기로운 것이 필요해서, 지난 10여년 느껴온 정치적 오한을 떨치려 나는 저녁에 사과파이를 구웠다.
“오늘 모두의 가슴에는 메마르고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나라 전체로 봐도 한 인생으로 봐도 가슴 아픈 일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오늘을 잊지 않겠다.”는 청와대 논평과 “오늘 이 순간을 가장 간담 서늘하게 봐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라면서 언젠가 복수하겠다는 칼끝을 내비치는 자유당, 독재자의 딸을 인형처럼 흔들어보이면서 지난 10년간 온갖 패악을 저질러온 집단의 파렴치가 오늘도 너무 대조된다.
(한겨레에서 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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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글 읽고 정말 오랜만에 크게 소리내어 웃었네요.
마침 휴일이라 혼자만의 공간에서 맘껏 웃게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누군가에게 '외로움이 뚝뚝 돋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인다는 것이 이렇게
고맙고 반가운 일임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저도 여기서 위의 표현을 보기 전까진 짐작도 못 했던 일이랍니다.
"나 여기 있어요. 너무 추워요 당신은 견딜 만해요?" 한 번도 입 밖으로 내 뱉은 적이 없는,
맘 속에서조차 떠올려 본 적 없는 언어로 저 자신도 몰랐던 심연의 모습을 끌어내어 비춰주심에
외경의 마음을 더한 감사인사를 다시 전합니다. 그리고..
가만히 소리내어 말해봅니다.
나, 여기 있어요..(으아~ ~ ~ + n/v signs)
너무 추워요.(ㅋ,ㅋ 열체질인디..?)
당신은 견딜만해요?(자문해보곤 그저 웃을 뿐....)
아,, 죄송해지네요..
하지만 저는 타인처럼 낯선 제 모습과 오늘부터 사랑에 빠지기로 했답니다.
어느덧 사모님같이 사랑스러운 여인의 고백이 되어버린 저 절규?들도 함께요..
저를 비춰준 거울 속에 투사된 또 한 줄기 맑고 따뜻한 기운은 봄의 전령을 닮은,
함초롬 아침이슬 머금어 곳곳에 짙은 꽃향기 뿜어낼 수선화 그대의 그림자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