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4일 수요일, 원망스러울 봄비


어제 윗동네 영희 할아버지가 트랙터로 구장네 논을 갈았다. 작년에 벼베기에 우리 아래채 벽을 받은 한남 할배 가족은, 아들 말마따나, 다시는 이 동네 안 오겠다더니.... ‘논 갈고 벼 심고 벼 베기까지 다 한 뒤 가을 늦게야 기계일을 한몫으로 준다면서 서푼도 안 되는 그 돈마저 또 깎는다고 투덜거렸다. 기술이 모자랐던지 차 들어오던길목에 소담정 전기줄들을 끊고할배가 순간 정신줄을 놓았었던가 우리 휴천재 식당채 공터로 갑자기 돌진해서 벽을 받고 홈통을 일그러뜨리고 멈추기도 하고....  때마침 내 차는 그 자리에 없었고 우리는 무너진 벽돌담 대신 돌로 싼 화단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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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골인심이 그렇잖아 그 할배가 어디가 안 좋으신가 걱정되어 내일은 한남마을에 내려가 봐야겠다. 어제 헤드빅 수녀님의 부고가 떴다. 독일 요양원에서 86세로 돌아가셨단다. 공소에서 유일하게 그분과 소식이 닿던 토마스3의 연락이었다. 30년 넘게 이 시골마을에 들어와 공소를 지어 교구에 바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다 조용히 돌아간 분이 조용히 영면하셨다. 토요일 저녁미사에 공소식구들이 본당에 가서 추도미사를 드리기로 정했다.


부활절도 끝나고 엠마오 소풍도 끝났다며 빵고가 전화를 해왔다. 글라라 수녀원으로 아침마다 미사를 드리러 가는데 매일 아침 자기 식사를 준비하는 수녀님들에게도 미안하고 시간도 절약하러 집으로 와서 오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한단다. 식사는 서로 준비하는데 신부님이 무슨 음식도 기쁘게 맛있게 잡수셔서 고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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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안에도 사람 성격이 각각인데 오신부님은 과묵하고 성실하며 늘 남을 먼저 챙기는, 지금 그 자리에 꼭 필요한 분이란다. ‘장상을 그렇게나 칭찬을 하는 걸 보니 네가 정말 좋은 분을 만났구나 축하한다.’라는 어미 말에 신부님이 좋은 후배를 만나셨죠.’라는 농담이 붙고 암튼, 우리 아들 겸손도 하시고.’라는 가싯 말에는 이게 다 엄마 닮은 덕분입니다.’라고 응수. 정말 한 마디도 안 지는 게 딱 나 닮았다. 큰아들은 하는 모든 언행이 보스코를 딱 닮았다. 둘씩 나눠 닮았으니 그 또한 공평하다.


행여 꽃잎이라도 떨굴까 봄비가 까치발하고 살금살금 오는데도 엊그제 더위로 지친 꽃잎이 제풀에 떨어져 세멘트길 위로 빗물을 타고 흘러가며 철없이 물놀이를 한다. 비 내리는 먼 산과 앞산이 이리도 아름다운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니.... 인간사에서도 권력의 정상에 올랐던 하나는 낼모레 1심판결을 생중계로 받고 또 하나는 낼모레 구속기소되어 권불십년(權不十年)의 이치를 몸소 보여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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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찬란한 볼거리를 산골에 그냥 놔두고 마을 아짐들 아재들이 오늘 몽땅 부산 귀경을 떠났다. ‘문정상회 앞에 버스를 맞춰 놓았으니 한분도 낙오됨 없이 놀이를 떠납시다요하는 이장님 방송인데, 휴천재 지붕 밑에 사는 네 명은 모두 낙오됐다. 새마을지도자라는 직함 때문에 몇 해 전 봄놀이를 함께 갔던 아래층 토마스가 오가는 차 안에서 끝없는 음주 가무 소음에 죽는 줄 알았다는 엄살 아닌 엄살로 넷 다 일찌감치 봄놀이를 포기한 터였다


하지만 사방이 쑤시고 허리 굽은 아짐들이 버스 속에서 왕복 10시간 가까이 춤추고 목청을 돋구는 그 현란한 에너지!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저 여린 꽃송이와 새싹의 폭발하는 기운에서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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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고 선선해서 화분 옮기기 좋은 날. 겨우내 이층 좁은 공간에서 함께 지낸 화분 동지들을 아래채 데크밑 꽃밭으로 돌려보냈다. 지치지도 않고 꽃을 피운 제라늄과 베고니아, 여전히 새빨간 포인세티아, 난초 등을 다하면 족히 30개는 된다. 분갈이를 해 줘야 내년에도 가까이서 벗할 테니 귀찮다 생각 말자. 뭐든지 공을 들여야 후회가 없다.


보스코가 화분을 내간 자리가 어지간히 더럽다. "여보, 이건 내가 전공이고 취미생활이잖아? 청소는 내가 할께." 이웃 이교수가 새로 짓는 집을 청소하는데 백만 원 넘는 인공지능 청소기를 샀단다는 내 말에 "당신은 인공지능 청소기 사고 싶지 않아?" 묻는다. "여보, 나 최고, 울트라, 무한 충전, 무선, 고성능의 '진짜 인공지능' 청소기라는 거 당신이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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