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2일 월요일, 맑음


자다가 몇 번이나 일어나 그의 이마를 짚어본다. 자정이 넘어 해열제를 줬는데도 열기가 여전하기에 일어나 체온계를 찾았다. 작은 배터리를 넣는 체온계는 얼마나 오래 방치되었던지 아예 배터리가 없다. 다시 말하면 그간 열나서 체온을 잴 일도 없이 긴 세월 건강하게 잘 살아왔다는 말이니 고마운 일이다. 그의 이마와 뒤통수가 손바닥만큼 알레르기로 거북이 껍질처럼 부풀어 오르고 두 손도 꼭 쥐기도 힘들만큼 부었다. 몸은 너무 뜨거운 것 같은데 본인은 춥다니 몸살 기운도 있다.


아침을 챙겨먹고 읍내에 있는 병원엘 갔다. 월요일에다 함양장(2, 7)까지 열려 최악의 날이다. 대기실에는 족히 20여명 할메들이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새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돌아앉아 인물평을 하는 게 그니들도 살아있다는 유일한 권력행사 같다. 시간 반을 기다려도 우리 차례가 될 기미가 없어 간호사에게 물으니 원장님(1진료실) 건너편 제2진료실로 들어가면 전혀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볼 수 있단다. 맞는 말이었다. 묻는 말마다 "그런 건 대학병원에 가서 알아보세요."라는 대꾸가 의사 입에서 나오니 전혀 기다릴 필요 없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시골할메들도 두어 시간 넘게 기다리며 제1진료실(원장님)에서 진료를 받으려는 데는 다 까닭이 있다. 지난번과 똑같은 처방으로 주사를 맞고 이틀치 약을 탔다.


정자 옆에, 배나무밭 아래, '미루집' 옆에 봄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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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못 산 연산홍 몇그루를 더 사려고 연수씨네 주차장에 들어갔다 자리가 없어 빈 곳에 적당히 차를 세우고 다녀왔는데, 그리고 그 동안 보스코가 차속에 있었는데, 장애자주차석에 차를 세웠던 남자가 주차, 이렇게 하는 게 아녜요. 사진을 찍었으니 군청에 신고를 하겠소.”란다. 내 차 바퀴가 장애자 주차를 보호하는 옆날개 선을 좀 밟고 있었다. 나도 내 차를 사진찍고 신고한다는 그 사람 차량도 찍자 자기 차는 왜 찍느냐고 시비다. "취미라서요. 신고하고 싶으시면 하셔야죠. 나도 내 입장을 설명할 근거를 남기는 중이랍니다. 수고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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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보스코에게는 점심으로 녹두죽을 쒀주고, 아침 일찍 나서며 어수선한 집안을 정리했다. 환자가 있는 많은 집은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고, 모든 생각과 생활이 환자의 질병에 함몰되어 평범한 생활리듬이 사라진다. 그래도 그 환자의 리듬에 모든 걸 맞추고 환자와 조금이라도 더 이어지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 환자 보다 더 큰 사랑을 소유한 사람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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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부활 선물로 바오로딸 수녀님들이 보내주신 눈물 한 방울을 읽었다. 갑작스런 발병으로 몇 달 간 인사불성이 되어 누워 있고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데, 정작 본인은 의식이 너무 생생하여 주변의 모든 일과 오가는 대화를 기억하던 환자의 회고록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서 흘린 눈물 한 방울에서 그니가 살아있다는 확신을 얻고, 장례준비를 하라던 의사 말을 거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남편이 있었기에 3년만에 알프스를 걸을 수 있었다. '눈물 한 방울'이 산 채로 묻힐 뻔한 사람을 살렸다. 


생각해 보라내 의식은 너무 또렷한데 인공호흡기를 떼고 시체실 냉장고 속에서 얼어 죽어가는 공포, 아니면 멀쩡히 살아있는데 관에 들어가 땅에 묻혀 질식사하거나 화장당 소각로에서 불타죽는 처지라면 얼마나 끔찍할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땅 위에서 영원히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니까 아무리 희미하게라도 뇌파가 나타나는 사람은 산채로 묻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여서 혼수상태 환자를 둔 이들에게 퍽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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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길가에 연산홍을 심으려는 참에 드물댁이 왔다. 벚꽃이 너무 고와 벚나무 옆에 서고파 왔다며 자진해서 사진을 찍잔다. 사진을 찍고 나서는 꽃도 심어 주며 내 팔이 불편해 보였던지 "씨앗만 사다주면 내가 뿌리고 심을 테니 함께 농사를 짓고 나눠먹자"는 제안을 해온다. 저 말이 그니의 입에서 나오기까지 3년 걸렸다. 말하자면 그니가 우리라는 개념을 갖게 됐다.


유영감님이 어둑한데도 마른논을 갈고 있어 "아저씨 이젠 그만 일하고 싶죠? 다 팽개치고 그만 놀아요." 했더니만 "어데, 우리는 이 논에라도 나와 뿌시럭거려야지, 놀 사람도 엄는데 우두커니 앉아 있는 거 그게 더 지랄같드라고." 맞다. '멍 때리기'처럼 못할 짓도 없어 "(할) 일 없는 게 (고된) 일이다"(non laborare est laborare)라는 로마 속담이 있다. 엊그제 보름을 넘긴 밝은 달이 왕산을 넘어오면서 유영감님의 외로운 논갈이를 구경하고 있다.


휴천재 화단에 수선화가 만개하고 튤립도 첫 송이를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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