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31일 토요일, 맑음


어제 밤 주의 수난 성금요일전례를 마치고 나오는데 지난여름 반년의 세계 여행을 여행기로 엮어낸 방모니카가 길 위에서의 다섯 달이라는 책을 선물해주었다. 몇 해 전 출판한 수필집에 이어 그니의 두 번 째 저서인데 읽기가 좋아 술술 넘어간다. 책 표지도 알프스의 환상적인 마타호른(이탈리아 쪽에서는 몬테 체르비노’) 원경이 사람을 홀린다.


반년이라는 긴 캠핑 여행이어서 부부도, 모녀도, 자매도 자칫 투닥거린다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바로 내 얘기 아냐? 혹시 우리 사이를 베낀 거 같은데?’ 하는 느낌도 오리라. 특히 낯선 데서 길이나 장소를 물을 때 여자들은 백이면 백 모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는데 남자들은 거의가 남에게 묻기를 꺼리고 책이나 지도를 들여다보다 길을 잃고 사람을 고생시키곤 한다. 남녀의 근본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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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자들은 언어의 마술사여서 모든 것을 말로 풀어내고 말로 창조한다. 하느님도 말씀으로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던가? 그래서 우리 여자들이 남정들보다는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있고(적어도 성당을 가득 채우는 건 하얀 미사포 쓴 여교우들 아니던가?), 그래서 괴테도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위로 끌어올린다하지 않았던가?


지난 가을 여행을 마치고 왔노라던 모니카에게 내가 물었다. ‘그 긴 여행 중 어떤 곳이 다시 가보고 싶더냐?’ 그니는 서슴없이 알프스 돌로미티를 꼽았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우리가 적어도 열다섯 번 이상 돌로미티에서 여름을 났는데 그 산과 자연이 지닌 매력은 마력에 가깝다. 그니가 머문 돌로미티, 그리고 스위스와 독일 쪽의 알프스를 사랑하게 된 여인의 여행기를 읽자니 마치 초등학교 동창이라도 만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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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의 책을 읽노라니 지리산 휴천재 일기도 책으로 내달라는 페친들의 꾐에 슬쩍 넘어갈까 하는 유혹도 스미지만 종이책은 절대 안 만들겠다는 초심을 다잡는다. 한 때 번역을 생업으로까지 삼은 바 있는 보스코가 120여 권의 책으로 숲속 나무를 엔간히 베어낸 죄가 있어(찬성이 서방님은 150권이 넘는다), 안팎으로 나무를 베다가는 내세에 나무로 태어나 도끼질을 당할지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어서다. 


보스코가 아침에 구글에서 무슨 검색을 하다 작년 10월간조선이 천주교 꼴통들을 한데 모아놓고 사제단을 성토하는 자리를 마련한 대담에서 자기 이름이 거명된다며 낄낄거린다. ‘교회 장상들은 일부 정치편향 사제에 왜 침묵하고 있나요?’라는 물음에 참 무식한 답이 나온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주 바티칸 교황청 대사가 성염 대사다. 당시 그분 밑에서 주교가 된 분들이 많다. 그분들이 주교가 된 뒤 보수적인 주교들도 (신세를 져서) 발언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천주교 내부 분위기다.” 언젠가는 그들의 사이트에 정의구현사제단 지도위원 성염 신부를 성토하는 글도 실렸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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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보스코가 심한 부정맥으로 잔기침을 하고 왼눈은 빨갛게 피가 맺혀 있어 어제는 손가락마다 사혈을 하고 우황청심환마저 먹었다. 심장마비로 죽은 동생을 놓아 보내기가 퍽 힘든가 보다. 나도 땅을 파고 김을 맸더니 오른팔을 쓸 수가 없어 안팎이 읍내로 나가 그는 안과로 나는 통증클리닉으로 갔다.


안압이 있는지, 백내장 외에 녹내장도 있는지 의사에게 자세히 물어보라 신신당부하면서 혼자 보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5분도 안 되어 안질이래. 사흘치 물약 처방해 줬어.’ 하며 내가 진찰받던 의원으로 쫓아왔다진료비 1500약값 1500원을 냈단다. 내가 보호자로 따라갔어야 의사를 붙들고 자세히 증세를 설명하고 의사한테서 자세한 설명을 받아냈을 텐데... 시골 의원에서는 딱 1500원 어치만 진료를 해주고 약도 1500원 어치만 주니까 아파도 1500원 어치만 아프고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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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장에서 체리나무 한 그루, 엄나무 두 그루, 철쭉 다섯 그루를 사왔다. 오후에 보스코랑 식당채 뒤꼍에 가득한 산죽을 모조리 쳐내고 엄나무를 심고, 길가에 연산홍 다섯 그루를 심고, 지난 봄 체리나무 두 그루를 심었지만 보스코가 예초기로 하나를 잘라버린 자리에 한 그루를 마저 심었다


뿌듯은 하지만 일에 지쳐 다시 읍으로 차를 몰고나갈 힘이 없어 '성토요일 파스카 성야'는 (파스카라는 말이 '통과'라니까) 그냥 거르고 내일 부활대축일 미사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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