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30일 금요일, 맑음


빵기가 4월 중순에 온다는 연락이 왔다. 아들이 온다면 우리는 스케줄을 조정하고 긴급조치로 들어가 짓던 농사도 팽개치고 잡초 정리는 아예 사라진다. 아들의 시간과 장소에 맞춰 떠날 때까지 서울 도시생활로 돌아가고, 아들이 떠난 다음에 산으로 돌아와 자연을 다시 만나 어르고 달래다 보면 떠나 있던 시간만큼 또 긴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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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작은아들에게서 어제, 그러니까 일주일 만에 전화가 왔다. 돕고 있는 성당에 미사 나가고, 문서작업으로, 새로 시작하는 사업준비로, 바쁘지는 않지만 한가하지도 않단다. 지금 이 시각은 은인들에게 드릴 부활계란 바구니를 만드느라 계란에 눈을 붙이고 있단다. ‘병아리 눈은 두 개니까 세 개 부치지는 말라뭘 먹고 사느냐?’니까 얻어온 밑반찬에, 엄마 말대로 택배로 주문해서 냉동실에 넣어둔 국을 데워서 먹는단다. ‘내가 가서 식사를 해줄 일도 아니고, 혼자 사는 남자들이니 오죽 잘 하겠나?’ 이렇게 혼자서 문제를 출제하고 나 혼자 해답을 단다.


성금요일이어서 모처럼 아침은 금식을 하고 점심엔 전복죽을 쑤어 먹었다. 식사 중에 창밖을 보니 이한기교수와 부인 김승임 선생이 왔다. 지난번 선물해 준 문재인커피가 너무 맛있다는 말을 했더니만 카페 하는 동생에게 부탁하여 가져왔단다. 방곡에 짓는 집은 거의 완공이 되었고, 대전에 전세 살던 집도 전세자가 나타나 짐을 이곳으로 옮기는 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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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야 건축가들이 짓지만, 끝난 후 청소가 너무 힘들어 일생에 딱 한번 할 일이란다. 그런데 휴천재 아래층 진이아빠는 이 집에, 강건너에, 도정에 벌써 서너 채를 지었고, 그가 뚝딱하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한 층이 올라가니 그 재주에 우리가 놀랄 뿐이다.


이 교수가 젊었던 로마 유학 시절, 성질 급한 깔끔이이던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안경을 닦아 줬다. 그래서 내가 자기를 가만히 바라보면 ", 또 안경 닦아 주시려고요?"라고 웃곤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의 안경이 깨끗하다. 내 눈이 나빠져 안경 때가 안 보이는지, 이교수가 나이 들어 자기 안경을 자주 닦는지 구분을 못하겠다.


요즘 내 안경이 유난히 잘 안 보여 자꾸 벗어서 닦곤 했는데 안경이 더러워서가 아니고 오른 눈이 마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중임을 알고는 마냥 안경알만 닦아대던 짓을 멈췄다. 보스코도 왼쪽 눈이 현저하게 시력을 잃어 공안과 공박사님께 하소연하더니만 4월에는 서울 가서 수술이라도 하기로 오늘 진료예약을 했다.


그가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들여다 볼 때는 왼눈은 아예 감고 오른쪽 눈으로만 보고 있다. 저러다 실명이라도 한다면 누군가 그를 위해 점자 라틴어 사전이라도 만들어야 할 텐데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다. 그러니 그 눈을 끝까지 고이 모시고 달래가며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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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 금요일’ 을 보러 본당엘 갔다. 성당입구에 나무 십자가가 보라색 천에 싸여 있다. 뭔가 한 끗발꿰어 찰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었을 텐데 주님’으로 부르던 분이 저토록 허망하게 죽고 말았으니 제자들은 여지없이 쫄딱망했다고들 절망했을 게다. 우리 인생도 허황한 기대로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지 않던가?


기다란 주님의 수난사를 읽고, 십자가 경배를 하고, 일년에 유일하게 '미사 없는' 영성체를 하고 돌아서는데, 저 먼 날 십자가에 처형되어 매달린 스승의 최후를 멀찌감치서 목격하다 황망히 돌아서던 제자들의 심경이 생각나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진다. 맘 같아선 차라리 스승 따라 죽고도 싶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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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는 아들의 처참한 처형을 목격하면서도 까무러치지 않고 버티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는 아들 당부에 양아들까지 얻는 성모님의 강단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보스코는, 아드님의 최후의 유혹을 곁에서 붙들어주시려고,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게 말리러 거기 가 계셨다는 어려운 설명을 하는데,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 신학적 풀이 같다.

(3. ㉯ 난 안 내려간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76 ) 



멜 깁슨, Passion of the Christ 에서 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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