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9일 목요일 맑음


성목요일.’ 누군가 가까운 사람들과 예수님이 하셨든 사랑의 만찬을 나누고 싶어진다. 수난과 십자가를 지시기 전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셨기에 우리도 절박한 상황이 다가오는 예감이 들면 가까운 이들과 밥을 나누며 속내를 나누고 싶어진다.


사람은 의외로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입고서 용서 못하고 미워하며, 용서 못하는 그 일로 또 괴로워한다. 우리 본당은 나이 많으신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어 신부님 강론도 평범하고 실생활을 암시하는 소박한 얘기로 삶의 문제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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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있을 만한 이야기이기에 고백의 비밀은 아니에요. 어떤 분이 재산 문제로 형제간에 싸워 원수 같이 되었대요. 그 형제가 미워 그 형제가 모시는 어머니마저 미워 어머니를 뵌지가 수년이라 괴롭다고 고백했어요. 신부마저 너도 똑같이 갈궈라, 고소하고 싸워서 재산을 찾아라.’ 할 수는 없잖아요? 할 말은 그냥 져주세요. 이기려 하지 마세요. 힘없고 나약한 엄니를 무조건으로 찾아가세요.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얘기하고 용서하세요. 늙으신 어머니가 돌아가 버리시면 그 죄책감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세요?’뿐이었어요


"자존심들 내려놓으세요. 예수님이 예루살렘 들어가시면서 새끼 당나귀를 쓰셨듯이, 못났지만 나를 평화의 도구로 하느님께 내어드리세요. 당나귀도 주님께서 타시라고 자신을 내어 놓는데 그만 자신을 송두리째 내려놓으세요....”


실생활에서 형제나 이웃에게 하찮은 자존심으로 상처입고 또 입히는 경우를 본다. 내게도 그런 아픔이 있는데 그 일이 판공성사 때마다 목에 매단 맷돌 같아 지금 그대로 물에 빠지면 영원히 살아나올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 상대방의 모진 맘도, 원망하는 내 마음도 달라질까 마냥 기다리는 중인데 그때까지 주님이 기다려 주십사 은근히 애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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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따스한 날씨에 마당 화단 소나무 밑에 심은 수선화가 한꺼번에 피어난다. 천천히 돌아가며 하나 둘 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한번에 왕창 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휴천재 텃밭의 두 그루 벚나무도, 문하마을 초입의 커다란 벚나무들도 내일이면 활짝 피어오를 태세다.


사순절의 마지막 날 오늘작은아들은 제주도 이시도로 목장에서 삶은 계란에 눈을 붙이며 부활 계란 바구니를 준비하는 중이고아픈 생인손 같이 늘 마음 쓰이던 시동생도 훌쩍 주님께로 떠나가 마음 놓이고, 대통령직을 도둑질로 이용한 인물도 감옥으로 보내 마음 풀리고,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다녀왔고 문대통령은 동남아로 아랍으로 한 바퀴 돌다와서 마음 흐뭇하고... 


427일 남북정상외담을 시작으로 우리 민족의 운명을 넘겨줄 회담들이 줄줄이 마련되어, 제자들이 맞았을 수난절만은 못해도, 모두가 어지간히 어지러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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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목요일 주의 만찬 미사는 미루네 부부와 봉재 언니네 오누이랑 성심원에서 함께 드리기로 했다. 엽렵한 미루가 마련하여 4시 반에 산청 남사마을의 국숫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환담을 나누다 모두 성심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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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와 몸살 기운이 있어 미사 전에 먹은 약 기운으로 나는 미사 내내 졸았다. 미루는 마님 신심이 갑자기 엄청 좋아졌나 탄복했시유라며 나를 놀리고, 보스코는 졸지 말라고 나를 살짝살짝 흔든다.


주님이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감하고 제자들더러 깨어 기도하라고 이르시고 피땀 흘리며 고민하시다 내려와 보시니 제자들이 자다가 졸다가 하더라는데, 나는 최후만찬 식탁에서 졸고 있었으니 주님도 한심하셨고 주변 교우들도 퍽 황당했으리라


유신부님이 발가락 없는 발들을 씻어주시는 세족례가 있고, ‘만찬 미사가 있고, ‘무덤 제대로 성체가 옮겨지고, 감실은 비워지고 주님을 상징하는 제대는 벗겨지고.... 주님의 부재를 눈으로 맘으로 느끼는 시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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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제대앞에서 기도를 올리다, 주님 잃은 제자들이 뿔뿔이 헤어지듯 우리도 조용히 일어나 제각기 헤어져 문정리로 돌아왔다. 히브리 닛산달 보름달이 지리산 위로 휘영청 밝다가 구름 속으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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