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7일 화요일, 맑음 미세먼지 자욱


어제 읍내에서 돌아오는데 면소재지가 있는 목현에서 공공근로 나온 아줌마 넷이 행길을 건넌다. 면소재지라야 교회 하나, 이발소 하나, 밥집 하나, 슈퍼 하나, 그리고 공공시설로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 보건소가 있다. 지난번 서울서 내려오다 우유와 계란이 필요해 혹시나 해서 그곳 슈퍼에 들렀는데 슈퍼 할메는 우유는 없으니 두유를  마시라’하고 ‘계란은 떨어졌으니 다음에 사가라.’ 했다. 간판만큼 슈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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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 동네 문정리보단 훨씬 문화시설이 있어 저 아줌마들이, 비록 공공근로를 하러 온 길이긴 하지만, 이곳까지 진출한 것만도 해방의 한 걸음이다. 그 중 드물댁이 보여 같이 가쟀더니 뒷좌석 세 자리에 네 아짐이 우르르 다 탄다. ‘내가 여러분을 태워 준 건 드물댁이 내 친구여서라고 거듭 치켜세웠다.


공공근로에 차비 빼고 얼마나 받느냐니까, 일주일에 세 번 나오고 월 27만원인데 통장으로 따북따북 들어오니 오지다는 설명. 노인연금에다 이 돈까지 하면 50만원은 된단다. ‘그 돈 다 어디 쓰느냐?’통장째 새끼들 준다.’는 선선한 대답. 참 기막힌 새끼들에 못 말리는 어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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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돈 버는 아짐들은 그래도 내 물음에 신나서 대답을 하는데 그 중 끼어앉은 문상 할메는 말이 없다. ‘찾아올 자석 한 개도 없어 공공근로라도 한번 해 보께라고 나왔는디 나 많다꼬, 일하다 쓰러지면 골치 아프다꼬 일을 안 줘.’ 라며 배낭 멘 아짐들을 부러워하는 눈치다.


일을 해도 못해도 사방이 쑤시고 아프기는 엇비슷한 나이. 나마저도 밭에서 긴 시간 김을 매고 일어설 때면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나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망가지기는 비슷한 터에 저렇게 벌어서라도 돈 쥐어 줄 자식이 있다는 사실은 아짐들에게 삶의 활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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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댁이 오늘은 '머리도 뽁고' 염색도 했기에 딸네집 가느냐?’ 물으니 어디?’ 란다. 딸네 집엘 가도 애들 어렸을 땐 걔들이 집에 있어 자길 데리고 다녔는데 이제 다들 커서 학교 다니니 못 간단다. 글자도 숫자도 모르고 그 많은 아파트가 다들 똑같이 생겨 어느 구멍에서 나왔는지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통 모르겠고죙일 집구석에만 앉았기도 지겹고...


새끼 네 개를 놔두고 마흔이 갓 넘은 서방 앞세우고 안 해 본 일 엄섰다는 드물댁. 밭 한 뙤기 없고 논 한마지기 없이 가난하여 밭일이든 허드렛일이든 일 나가서 돌아올 때는 보리 한 됫박을 받아와 시엄씨에게 내밀면 시엄씨가 받아 살림했단다. 그러다 보니 자기는 사내일을 해와서지금도 김치나 반찬엔 재주가 없단다


그러다 비라도 몇 날 오면 나락이 없어, 정미소를 하던 조합장댁으로 쌀 꾸러 가면 언제라도 그 집 마님이 말없이 식량을 내주면서 미안해 말라. 양식은 나눠먹어야제 이웃을 굶기면 벌 받는다하더란다. 한번도 못 갚았는데도 많이도 꾸어 줬다는 그 마님이 바로 내 친구, '운림원'의 강영숙씨 친정엄니다. 그 엄마를 닮아 영숙씨도, 우리동네 새 이장(영숙씨 동생)도 그렇게나 착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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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드물댁 손으로 키운 막내 시동생이 논 두어 마지기를 사줘 거기서 농사를 지어 나락 열댓 섬을 집에 들이던 날!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단다. 하지만 시엄씨가 죽자 그 시동생이 자기가 사줬다며 논을 팔아 가져가 버렸을 때는 속이 많이도 상했단다. 애들이 커서 다들 도시로 나가 재주껏 벌어 야간이라도 고등학교를 나왔고, 엄마 굶을까 몇 푼 보내주어 그 돈으로 밥 먹을 땐 마음이 몹시 불편하더란다


요즘 공공근로 가는데 싸 갈 반찬이 없다기에 찬을 좀 나눠주면 고마워하는 모습에서 가난해도 당당한 그니의 모습이 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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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남해 형부가 형부네집 앞바다에서 막 캔 피조개를 갖고 언니랑 휴천재를 찾아왔다. 아우를 잃은 보스코를 위로해 주려는 형부의 따뜻한 마음이 남해에 살랑대는 봄바람처럼 따스하다. 진이네와 드물댁에게 피조개를 조금씩 나눠주고 남은 것은 다 까서 손질해 냉동고에 넣어 놓았으니 손님 오시면 다져서 쪽파랑 전을 부쳐 내야겠다.


형부는 살아 있는 피조개 까는 법을 소상하게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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