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5일 일요일, 맑고 미세먼지


도시 사는 친구들이 간혹 물어온다. “50m 앞이 안 보여 답답해 죽겠는데 지리산엔 미세먼지 같은 것 없죠?" 요망사항은 나도 같으나 지리산도 마찬가지다. 지리산 하봉이나 먼 산은 아예 안 보이고 앞산도 뿌예서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내 눈에 백내장 수술을 한 번 더 해야 하나 고민을 한다. 그래도 겨우내 창에 붙였던, 방한용 뽁뽁이 비닐을 걷어내니 창문 앞마다 매화가 환하게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지척에서 화사하고 아리따운 여인을 볼 수 있는 터에 먼 산 미세 먼지에는 신경을 끊자.


오늘은 성지주일로 성주간이 시작된다. 본당 미사에 가고 싶지만 몇 안 되는 공소예절에 빠지는 것도 맘에 걸린다. 이럴 때는 결정을 못 내리고 보스코에게 묻고 그가 결정을 내리게 하고, 그 결과나 책임도 그에게 미루는 편법을 쓴다. 그의 판단이 훨씬 정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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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부님 강론말씀대로 하찮은 나귀 새끼도 주님께서 당신의 구원사업에 쓰시겠다하시면 잠자코 순명을 하는데...” 오늘 하루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니 측백나무 작은 가지라도 흔들어 드려야 할 것 같아 성당엘 갔다. 그러고 보니 근 일년 만에 함양성당엘 간 길이다.


오신부님이 산청에 계시고 미루가 그 가까이 있어 함께 만나는 재미로 거의 일년 간을 본당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성심원으로 미사를 갔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고양이와 별반 다름 없이 온기가 있는 곳으로 머리를 디밀고 배를 깔게 된다. 아마 우리가 다음에 천당을 가더라도 지금 이곳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고 싶으리라.


오신부님도 서울로 떠나 안 계시고, 귀요미 미루의 오늘 향방이 어디로 갔을지 몰라 우리도 오랜만에 함양 본당엘 갔다. 본당신부님은 전례를 공부하신 분답게 전례에 대해 그때 마다 설명을 해주시고, 주일 교중미사마다 향을 피우시고, 끝날 때는 가급적 장엄축복을 해주시기에 같은 성찬이지만 우아한 자갯상에서 걸게 차려 받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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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공성사를 주러 여섯 분의 인근본당 신부님들이 오셨는데 신자들은 백여 명밖에 안 와서 신부님들이 내어주신 시간이 아까웠다며 그런 것에 안 매이는 우리 교우들의 여유 있는 신앙생활’(?)이 존경스럽다고 하셨다. ‘대단한 교우들이라며 박수를 치자니까 교우들은 뭣 모르고 따라친다. 웃으며 박수치며 에둘러 나무라시니까 꾸중 들었다기보다 '참 좋은 목자시구나!'하는 안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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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당에 왔다고 미사 후 스.선생이 주일마다 만나는 팀에 초대해 줘 점심을 같이했다. 여섯 쌍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그 팀은, 성찬의 식탁에서 애찬의 식탁으로 옮겨 앉아, 올 여름에 갈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얘기로 벌써 반쯤은 그 길에 들어서 있다. 여행이란 계획하고 준비하며 떠나기까지가 제일 설레고 행복하다. 우리야 하루 30여 킬로씩 걷겠다는 욕심조차 없으니 별로 부러울 일도 아니지만 계획만으로도 신이 난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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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우리 둘은 오랜만에 상림을 거닐며 꽃향기가 주는 봄의 유혹에 흠뻑 빠졌다. 이런 봄날에 사순절의 어두움을 관통하는 하느님 사랑의 절정, 곧 부활절이 있다는 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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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에 우리가 와있는 줄 알고 고라니가 더는 내려오지 않는다. 밭에 쪽파가 잘 커서 더 뻗세지기 전에 파김치를 담가 4월에 온다는 빵기 편에 작은손주 시우에게 보내야겠다 싶어 드물댁을 불렀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 사람이고 함께 일하면서 니약니약 파김치라도 나눠주면 서로가 좋다. 드물댁도 혼자는 일하러 들지 않지만 같이 하자면 언제라도 흔쾌히 올라온다.


넘어 가는 해에 그녀가 풀어내는 허스토리’, 그보다 더 먼 얘기로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그니... 젊은 날 잊히지 않던 고맙던 일, 아쉽던 일, 속상했던 일, 버무린 파김치처럼 뒤엉키고 고단한 삶에서도 고스란히 남겨진 그리운 세월이여, 그리운 세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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