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0일 월요일, 종일 비바람


내가 저를 좋아하는 줄 알고 봄비가 나랑 매우 친한 척한다. 지리산에서야 업어달래든 무등을 태워 달래든 농사에 귀하신 몸이니 늘 고마워 하겠지만 모처럼 맘먹고 꽃놀이 온 제주에까지 따라와 차디찬 강풍을 데리고 개갠다면 안 되지.... 그래도 이곳에 왔으니 이 비바람 속에서도 꼭 가야 할 곳이나 가자고 ‘4.3 평화공원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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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극의 대학살이 일어난 지 70주년인데다, 올해는 문대통령이 처음 맞는 4.3인만큼 그가 참석해서 대통령으로서 행할 사과와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가해자에 대한 준엄한 책망을 담으리라는 기대에 그동안 숨죽이고 살아온 4.3 피해자들의 기대도 클 것이다. 70년간 잠들지 못하는 섬 제주를 잠들게 할 때가 왔음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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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에서도 제주교구 강주교님이 나서서 주교회의 명의로 4.3 학술세미나를 열었고, 전교회에 반성을 촉구하며, 그 사건이 제주도민만의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부의 비극과 과오임을 각성시키려 애쓰기로 나섰으니 다행이다.


아울러 친일파이면서 미군정에 빌붙어 기독교 우익이 겨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되돌아보고 하느님과 국민에게 사죄할 학살죄를 참회할 차례이기도 하다. 보스코의 지론대로, 국군도 경찰도(뒤에 생긴 안기부도) 독재자의 수중에 들어가면 국민을 학살하는 병기에 불과하다. 4.3 공원과 섬 전체에 흩어진 범죄현장을 찾아갈 때마다 피눈물 나는 아픔에 한없이 전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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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그곳에서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제주도의원으로 출마하려는 강성의 후보를 만났다. 내가 이사로 있는 이주여성 인권센터 사무처장을 했던 활동가다. 그간 여성과 약자를 편들어 활동하다 보니 진정 그들을 구체적으로 돕자면 정치에 투신해야겠다고 작심한 여성이다.


내가 강성의씨를 도울 일이 별로 없어 4.3의 원혼들이 모여든 그곳에서 보스코와 셋이서 손잡고 기도하다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그니가 교회를 다니니까 천주교 측엔 인지도가 떨어질 것 같아서 그니가 출마할 구역 화북의 성당 신부님에게 인사시켜 드리자는 착안. 당장 화북성당을 찾아가서 보스코가 그니를 양신부님께 소개했다.


제주 중앙성당 가까이서 빵고의 원장 오신부님을 만나 함께 점심을 했다. 점심을 사기는 우리가 샀는데 교구청 바로 앞이어선지 두 분 수녀님에게 점심을 대접하던 교구청 신부님이 점심값을 내고 나갔다. 까칠한 오신부님이 꽤나 불쌍해 보였는지 모르지만 고마웠다. 살레시안들이 교구민들과 사제단에게 사랑받기 시작한 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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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하도 차서 숙소에 다시 들러 옷을 껴입고서 관덕정엘 갔다. 600년 전에 지어져 처음 지어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문화재다. 그 당시의 서민들의 야박한 생활에 비추어 관원들의 모습은 화려하지만 세월이 흘러 달라진 건, 오늘의 거센 바람 때문이겠지만, 마네킹 제주목사의 굴건이 우습게 뒤집힌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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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갔다가 휴무일이어서 못보고 돌아온 김영갑 갤러리 모두악엘 갔다. 타지인으로 제주도를 그처럼 사랑한 사진작가의 예술혼이 그곳에 감돌고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두 시인 박희진 시인과 이생진 시인의 영상도 만날 수 있어 두둑한 덤을 얹어 받은 듯하다.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어머니의 가슴 같은 제주 곰부리와 오름의 곡선에 영혼을 뉘인 김영갑은 우리가 한번만 보고 지나쳤을 그 아름다움을 가슴에 깊이 새겨 주었다. 제주시로 돌아오는 길 행여 비에 젖은 유채꽃이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볼 수가 없었다. 이미 피었다 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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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7시경 렌트회사에 차를 반납하고는 공항으로 나가 9시에 도착하는 빵고를 기다렸다. 거친 바람에 여수에서 배를 타지 못하고 이틀간 광주에 머물다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한 길이다. 아무튼 아들을 한번 더 만나는 일은 특별한 보너스였다. 아들을 원장 오신부님께 딸려 이시돌 목장으로 보내고 우리는 골롬반 신부님들의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닭들이 횃대에 오르는 시각에 함께 잠드는 사람이 노인이라지만 주신부님(한국에 선교사로 오신지 63년)도 황신부님(오신지 60년)도 잠들고 불은 꺼져 있었다.


지금도 그치지 않는 이 비가 지리산에는 폭설로 내리리라는 예보인데 무너진 농장을 가까스로 추수린 토마스 부부에게 다시 피눈물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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