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22일 목요일, 흐림


보스코가 없는 날 아침은 아주 일찍 눈이 떠지는데 빵고가 마룻방에서 자고 있어 마음이 놓였는지 깊은 잠을 잤다. 며칠간 숙면을 못 취해 낮에도 눈이 뻑뻑하여 피곤했지만 오늘은 살 만하다. 큰아들 빵기보다는 작은아들 빵고가 더 살갑다.


319일에 보스코가 회의차 제주에 가야 하는데 우리 부부(나도 따라간다. 더구나 그땐 아들이 부임해 있을 텐데)의 왕복 비행기표, 렌터카 예약을 평소 같으면 희정씨가 해 주지만 오늘은 빵고가 해 주었다고장난 보스코의 노트북도 오후 내내 '갈아엎고' '다시 깔고'를 했다. 정신없는 엄마에게 화도 안 내고 능숙하게 왔다갔다 자상하게 해주니 지리산 내동댁 말대로 아들은 역시 낳고 봐야하는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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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상에서 야쿠르트도 먹고 과일, 빵과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야 쟤가 우리 가족이라는 게 실감난다. 이젠 코끼리처럼 커버린 아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다 몰라봐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려서 얼마나 착하고 곰살맞았는지! 그 귀염이 남의 딸과는 비교도 안됐다. 유아원에서도 맛있는 과자가 나오면 휴지에 싸서 가방에 살짝 넣어와 엄마, 맛있으니 먹어보세요.’라며 내밀었고 유치원에서 배워온 이탈리아 노래를 엄마한테 가르쳐 준다고 애쓰기도 했다


걔가 배워다 가르쳐준 성탄절 노랫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마리아는 빨래하고 요셉은 빨래 널고

포도주는 안돼, 넌 우유나 마셔[젖이나 먹어]

우유나 마셔, 우유나 마셔!

아주 어려서부터 남녀의 가사협업과 남녀평등을 가르치던 가사였다. 저 가사대로 우리집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빨래 바구니를 갖다주면 빨랫대에 널어 말리는 일은 보스코의 몫이다.


그렇게 잘 먹고 많이 먹는데도 바짝 말라 내 가슴을 태우던 아이, 이번 4년의 유학생활이 끝나고 돌아와선 먹고 공부하느라’ 또 움직이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토실토실해져 돌아왔다. 초딩 때에 귀국하여 고등학교 때까지는 한국에서 선생님들이 워낙 애들을 닦달하고 체벌을 해서 스트레스 살이 올라 집안에서 부르는 별명이 `꽃돼지`였다.


그러다 수도원에 입회하고 부모가 97, 98년 이탈리아에서 2년의 안식년을 지내고 돌아오니 17kg나 몸무게를 빼서 거의 불쌍한 몰골이었다. 바짝 말라 꺼벙한데다 한 해에 두 번씩 하는 부모님 모임을 해도 부모 중 아무도 없었고, 모임의 뒷바라지만 하는 걔를 보고서 어떤 엄마는 '가족도 부모도 없는 불쌍한 수사'로 짐작하고 옷도 사주고 용돈도 주었단다. 그러다 부모가 엄연히 살아있는 걸 보고 놀랐다는 얘기를 그 엄마가 내게 들려주었다.


전주 화산동 성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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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아침일찍 이신부님이랑 본당 회장님이랑 전주 콩나물국밥을 먹고(전주에서 이름난 ‘이백집이었다나?) 830분차로 떠났는데 서울까지는 딱 두 시간이 걸리더란다


어제 강사소개를 하면서 이신부님은 ‘부인이 언제나 늘 남편을 모시고 다니면서 아들처럼 보살피는데 오늘은 혼자서 내려오신, 아주 희귀한 경우라면서 그 까닭이 여러해만에 귀국한 아들을 돌보느라 못 오셨다. 과연 아들이기는 엄마 없다는 자상한 얘기까지 교우들에게 들려주시더란다. 연말에 대림절 특강을 또 초대받았다니 다음에 내가 함께 가면 요즘 보기 아주 드문 희귀한 아줌마로 본당 교우들의 구경꺼리가 될 것 같다


트렌토의 쟌카를로 신부님 댁에서 누이들과 함께 드린 마지막 미사는 2012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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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집에서 함께 지내니 맘이 편해선지 내 긴장이 풀려선지 감기기운이 있어 좀 쉬었다오후 6시에는 수도사제의 본분대로매일미사와 성무일도를 함께 바쳤다. 20여년전부터 트렌토의 쟌카를로 신부님댁에서 누이들과 함께 드리던 가족미사가 생각난다. 오늘 미사 역시 오롯이 우리 가족 안에 내리는 주님의 축복과 은총의 시간이어서 깊은 감동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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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의 양식을 영하고는 이번에는 육신의 양식을 취하는 순서. 오랜만에 탕수육, 군만두, 삼선간짜장을 먹겠다고 해서 덕성여대 앞 중국집으로 걸어가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어렸을 때와 꼭같은 행복한 얼굴로 짜장면을 맛나게 먹는 아들, 다른 게 있다면 고량주를 반주로 곁들인다는 점. 사람은 생각처럼 많이 변하지 않고 내가 안아 키우던 모습 그대로인 듯해서 마음이 크게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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