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8일 일요일, 맑음


우리 성당 9시 어린이 미사는 날이 갈수록 모양을 달리한다. 처음에는 전례에서 축제로 바뀌더니 이제는 축제에서 아예 놀이로 변하는 중. 성스럽고 경건하기만 한 미사에 익숙한 어른들은 문화적응이 안돼서 어리둥절할 게다. 어린이들의 관심을 모으려는 생각에서 커다란 제병을 쓰는데 "그리스도의 몸!"하며 성체를 들어 올리면 사제 얼굴이 아예 안 보인다.


오늘 미사 영성체 시간.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 ??? 보라! 서영아, 보라!" 그러자 서영이라는, 맨 앞줄에서 딴전을 피우던 다섯 살짜리 꼬마 아가씨의 천연덕스러운 대답. "다 보고 있어요, 신부님. (미사) 계속하세요.” 성당은 미사 내내 까불고 밀치고 장난하는 어린이들의 한 판 놀이터. 애들은 놀고 있지만, 서영이 말마따나, 다 듣고 있고 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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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밴드가 연주를 하는데 드럼이 시원치 않았나 보다. 아이들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는 대목에서는 사제가 아예 제대에서 내려와 드럼치던 아이의 채를 받아 들고 한바탕 신나게 두들겼다. 노래가 끝나자 다시 제대에 올라가 성찬의 전례를 계속한다. ‘무식한 프로텐스탄트라는 말을 듣던 내가 45년간 참석해 본 미사 중 처음이어서 사순절의 미사 놀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탄식하는 내 말에 보스코는 여유만만하다. “예수님도 다락방에서 어린이들과 최후만찬을 하셨더라면 저렇게 하셨을 게야.” 주일학교 선생을 오래 했던 내 경험으로는 어린이들도 놀이와 기도의 경계는 스스로 배워 잘들 지키던데...


12시 좀 넘어 이엘리와 엄엘리가 집에 왔다. 요즘 들어 감기와 맘고생으로 몹시 쇠약해 있는 내 친구 한목사의 몸보신을 해주겠다는 이엘리의 갸륵한 마음이 오늘만남을 주선했다. 우리한테 세배도 할 겸 왔단다. 이엘리는 설날 34일을 하루에 20여명씩 함께 지냈다면서도 너무 싱싱하고 팔팔하여 아무 일 없이 쉬다 온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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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치렀냐니까 대답이 태평하다, “쉬지 않고 먹고 마시고, 화투판에 장기자랑. 우루루 몰려나가서 볼링 한 게임 하고 돌아와 먹고 마시고, 우루루 몰려나가서 당구치고 돌아와 또 먹고 돌아가며 노래자랑하고.... 펴놓은 술상에서 비운 그릇 치우고 새 접시 올리고... 또 치우고 또 올리고... 여자들이 음식도 함께 만들고 치우고 하니 힘들 것도 없어요. 예전에 시어머니 계실 때는 3, 40명 되던 손님들, 세배하러 도착하는 손님들마다 상을 새로 차려내던 그 때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녜요!”


여자들의 엄살과 심술이 시월드 탈출”, “며느리 사퇴로 집집이 분란을 일으키는 요즘에도 이런 가족이 있다니 TV에 출연시켜야겠다. 우리 큰외삼촌댁도 엘리 같았다외할머니(1세대) 살아계시던 때, 엄마네 여섯 남매(2세대), 그 짝이 여섯, 거기서 나온 우리 3세대가 스물하나, 결혼한 조카사위나 조카 며느리와 더불어 손주들(4세대)까지 합치면 설엔 60여명이 북적였다. 앉을 자리가 없어 아예 서서 먹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세뱃돈 수금하여 용돈도 비축하고, 이래저래 우리는 모두 명절을 기다렸다.


그러던 숙모가 환갑을 막 넘기며 암으로 돌아가시자 조씨네 대가족 명절은 거기서 막을 내렸다. 그 뒤로 우리 우이동집이나 호천이네서 사촌들을 불러모은 몇 번이 만남의 전부였다. 작년 가을 큰외삼촌 장례식에서 십수년 만에 만난 외사촌들도 처나 아이들도 생판모르는 얼굴에 인사도 없이들 헤어졌다. 핵가족이 끼리끼리만 혈통을 유지하는 슬픈 현실이다.


오늘 모인 우이동 4인방은 설 내내 몸으로 때워 세뱃돈을 제일 많이 벌었노라는 이엘리가 모두에게 닭백숙으로 몸보신을 시켜 주고, 식구들 몫까지 챙겨 줬다. 가까운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주로 우리 이니 잘한다), 가족얘기로 4시까지 노닥거리다 헤어졌다. ‘중요한 얘긴 다음에 만나서 하자면서... 일과 놀이는 조화로울 때 삶이 풍요로워지기에 이렇게 맘 맞고 정든 친구들과 만나고 돌아올 적마다 로또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다


자정이 넘어가는 이 시각, 우리 작은아들이 뱽기를 타고 로마를 떠났겠다. 4년만에 돌아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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