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4일 화요일, 흐림


재의 수요일.’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며칠 후면 십자가에 매달고 못질을 할 인간들이 그날은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팔마가지를 흔들며 유대인의 왕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 ‘성지주일에 성당에서 흔드는 나뭇가지를 가톨릭신자들은 집에 가져다 십자가 위에 걸쳐놓고서 유다인들이 흔들었던 나뭇가지를 상기한다. “너희가 왕이라 부르며 아첨하던 그 입으로 죽여라! 죽여라! 십자가에 매달아라!’ 소리 지르지 않았느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십자가 위 누렇게 마른 나뭇가지가 소리 없이 영혼을 잡아흔든다.


IMG_8810.JPG


우리는 민중의 희망이 어떻게 짓밟히는지 지난 세월 너무나 많이 보았다. 민주와 인권과 남북화해를 이루기 위해 긴 시간을 바쳤지만 그 꿈이 부서지는 데는 잠깐이었다. 해방은 남북분단으로, 4.19혁명은 박정희 군사반란으로, 10.26은 전두환의 광주학살로, 6월항쟁은 양김의 욕심으로 군부의 재집권으로 끝장났었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민중을 짓밟고 잔인하게 미소 짓던 친일기득권세력, 매춘언론이 지금도 활개친다.


오늘 오후 늦게 광화문을 지나며 작년 그 강추위 속에 광화문을 촛불로 가득 채우던 신성한자리에 한 줌도 못 되는 태그끼아재들이 성조기를 같이 흔들며 추루하게 늙은 얼굴에 증오를 번득이며 행렬지어가는 광경을 지켜봐야 하는 모욕감! 그러나 옆자리의 미루가 “‘우리 이니는 청와대 가 있다. 그래 너네 대장 지금 어디 가 있니?” 한마디 하여 맘을 가라앉혔다.


IMG_8896.JPG


IMG_8905.JPG


IMG_8924.JPG


미루네가 하루 함께 산을 걷자고 우이령길을 예약했다. 보온병에 끓는 물을 싸가서 컵라면에 김밥을 먹을까 궁리하다 재의 수요일아침에 금식을 했을 테니 점심을 좀 일찍 먹이기로 했다. 어제 남해 파스칼 형부가 산골 사람들에게 바닷내음 가득한 생굴을 가져오셨다고 미루가 우이동까지 배달을 왔다. 미루네가 도착한 시각에 이엘리가 설전에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우이동까지 달려오더니 얼굴만 보고 차 한 잔 마시고는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니를 누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 많은 성당일, 직장일, 가사일을 하면서도 주변 모든 이들에게 정성을 다 하는 그니는 날개만 안 달렸지 천사다. 천사는 날개가 아니라 발이 달렸다는 게 내 신앙이다.


1518612059253.jpg


미루네랑 4.19탑 앞으로 나가서 꽁보리밥집 신정에서 사순절다운 식사를 했다. 식당 여주인이 수척하기에 어머니 안부를 물으니 달포전 세상을 뜨셨단다. 내가 20여년 그 식당을 오가며 언제나 부엌 구석에서 채소를 다듬던 체소한 노인이 떠오른다. 4년 이상 그 바쁜 식당 영업중에도 따님이 아침저녁 돌봐드리던 엄마가 떠나셨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지척인데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착에서는 놓여나기가 여간 쉽지 않다.


IMG_5881.JPG


IMG_5886.JPG


IMG_8869.JPG


IMG_8863.JPG


점심 후 우이동 골짜기 명상의 집에 차를 주차하고 우이령길에 오르니 비가 뿌릴 거라는 일기예보와 연휴 앞이어선지 우리가 산길에서 만난 사람은 세 명이 전부였다. 그 숫자가 그 산길을 독차지한 오늘의 주인이었으리라. 눈이 덜 녹아 빙판이 된 구간은 간편한 아이젠을 발에 끼고 엉금엉금 걷거나 길에서 주운 나무지팡이로 더듬더듬 걸었다. 한반도 한겨레가 걸어온 역사의 도정도 주변에서 보기엔 힘찬 듯해도 스스로 돌이켜보면 엉금엉금, 더듬더듬 걸어온 길이다. 그래도 늘 손잡아 주시고 일으켜 주신 분이 계셨기에 하느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오봉산밑 석굴암에 올라 사파세계를 휘 둘러보고 급히 하산길에 들었다.


IMG_8844.JPG 


IMG_5895.JPG


IMG_8857.JPG


IMG_8859.JPG


작년 말 산청을 떠나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 와 계신 오신부님을 보러 네 사람이 함께 찾아갔다. 사순첫날 단식재인데도 당가수사님은 손님이 온다면서 정성껏 밥상을 차리고 우리를 수도원 식탁에 맞아주셨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속얘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산청에서 오신부님과 정이 많이 들었구나 싶었다. 9년 세월에 성심원에서 혼신을 다하다가도 명령 한 마디에 흔연히 그곳을 떠날 수 있는 수도자들의 초연함에 머리가 숙여진다. 귀요미 미루네는 우이동집까지 우리 노친네를 데려다 주고서 용인까지 먼 길로 귀가하였다


20180214_174116.jpg


1518611976124.jpg


151861197185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