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발표

(2015년)

 

교황청의 아시아복음화 정책과 중국교회의 현황

 

교회사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지식인 신자라면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에서 저질러온 뼈아픈 과오들 가운데 교회분열과 종교전쟁, 이단자 박해와 마녀재판 그리고 근대주의 탄압 등의 사상적 억압 외에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복음화의 호기를 상실하고 불필요한 종교 갈등(박해)을 유발한 중국 제사문제를 꼽게 마련이다. 교황청이 분열과 분쟁을 촉발하고, 근본주의 성직자들을 내세워 복음선포 방식의 혁신을 주창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박해를 남발한 잘못이 유독 아시아대륙만 그리스도교 인구 3%라는 공백을 남겼기 때문이다.


2004년 요한바오로 2세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들어가는 추기경들이 공동집전하던 미사에 참석하던 필자는, 벌써 유권자 절반을 지지 세력으로 확보했다고 보도되던 라칭거가 추기경단단장의 자격으로 미사를 주례하면서 토로하던 신앙교리성 장관다운 열변에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대사가 저 사람이 백조의 노래를 부르는 거야?”라고 속삭이기에 아냐. 저건 교황 취임사 리허설이야.”라고 대답했는데 라칭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톨릭교회에 만연한 신학적 교리적 윤리적 사목적 상대주의를 성토하고 있었다.


과연 베네딕토 16로 즉위한 그가 맨 먼저 취한 행정조처가 종교간대화평의회의장 피제랄드 대주교를 주이집트 교황대사로 파견하고서 해당 평의회를 문화평의회에 산하로 격하시킨 일이었다. 아시아 주교 시노드의 성령론’,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 ‘구속론과 창조론의 공시적 이해가 후속 교황문서(“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에 미미하게밖에 채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교리성이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을 반포하여 아시아 주교들의 사목적 고뇌를 종교다원주의라고 공박했던 전례로 미루어 예상할 만했다. 그의 타종교관은 정복론(征服論)’ 내지 전략적 적응론(適應論)’을 벗어나지 못하고 익명의 그리스도교도론에도 완성론에도 한참 거리가 멀었다. ‘가톨릭근본주의라는 의심까지 받던 그의 보수적 입장은 레겐스부르크대학에서의 부적절한 대이슬람 발언(“칼이냐 코란이냐?”)으로 세계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 좀 후퇴하였다.


필자는 그들 앞에서 저희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셨듯이 저희 앞에서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소서.”(집회 36,4)라는 말씀에 의거하더라도[1] 아시아에서 가톨릭교회가 펼 선교신학은 성사론더구나 상호성사론(相互聖事論)’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

[1] 공동번역: 주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을 그들이 본 것처럼, 주님의 위대하심이 그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보게 하소서.

[2] 참조: 요한 바오로 2, “아시아 교회 Ecclesia in Asia (1999.11.6.);  교황청 신앙교리성, “주님이신 예수님 Dominus Iesus)  (2000.8.6.); 아시아주교회의 연합회(FABC) 문서들성염,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관용에 있어서 아시아 교회의 공헌, 신학전망 132(2001), 21-35; “‘익명의 그리스도인’에 이른 가톨릭교회의 타종교관. 심상태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칼 라너 학설의 비판적 연구」 이해를 위한 안내, 성염, 이태하, 최성수 공저, 『종교다원주의 시대의 기독교와 종교적 관용』 (민지사 2001) 195-229]

 

제사문제를 두고 오만한 독선을 발휘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세계적으로도 실리적 민족으로 평가받는 중국인들을 (황실이 입교함으로서) 집단적으로 복음화할 유일무이한 기회를 상실한 쓰라린 경험 때문인지 지난 한 세기에 바티칸이 세계 인류 5분의 1을 점유하는 중국을 상대하는 자세는 퍽 신중해졌다.


우선 필자의 공직생활 기간 중 각별한 친분을 나누던 대만(Republic of China) 대사들은 신임장 제정사부터 대만에 교황대사를 파견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지만, 유럽에서 유일하게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대사관을 두고 있으면서도 교황대사파견은 끝내 보류함으로써 두 개의 중국을 사실상 포기한 외교를 고수하고 있다.


교황청은 중국이 공산화하고(1948) 선교사들이 추방당하자 비오 12세의 중국 민족에게 보내는 서간’(Ad Sinarum gentem: 1954)를 반포하여 기본입장을 밝혔으므로,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2007년의 베네딕토 16세의 중국교회에 보낸 서간”(La lettera del Santo Padre Benedetto XVI alla chiesa in Cina: 2007)에 드러나는, 이전 서간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면 아시아를 복음화하려는 바티칸 정책에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3]

[3] 중국교회 관련 교황청 문헌: 비오 12, “중국민족에게 Ad Sinarum gentem(1954.10.7: 1952년도 Cupimus inprimis 보완); 베네딕토 16, “중국교회에 보낸 서간 La lettera del Santo Padre Benedetto XVI alla chiesa in Cina(2007.5.27.); 교황청, “중국교회에 보낸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서간 개요 Compendio della lettera del Santo Padre Benedetto XVI alla chiesa in Cina (2009.10.16.); “중국교회에 보낸 국무원장 타르치시오 추기경 서한(2009.11.5.); 교황청중국위원회, 2011년 총회 메시지(2011.4.14.).


바티칸은 서방세계가 지하교회라고 명명한 천주교 신자와 성직자들에게 소위 중구천주교애국회나 정부당국과의 화해를 거듭 강조하는 동시에 지하교회에 새로 주교를 임명하기를 사실상 중단함으로써, 순교자다운 자세로 로마교회와의 유대를 금과옥조로 고수해온 주교들이 연로하여 사라지기만 기다리는 태도를 보인다. 또 최근 10여년의 바티칸과 중국의 알력을 관찰하면 주교후보들을 중국교회가 선발하고 협의를 거쳐 교황청이 인준하고 임명한다든가, 중국 측의 독단적 주교임명과 서품을 바티칸이 강력하게 비난하고 심지어 자동파문을 엄포하면서도 당사자들에게 교회법상의 구체적 징계를 내리지 않는 정책은 여성사제를 서품한 주교들이나 비오10세회주교들을 제재하는 조처와 크게 대조된다.


베네딕토 16세의 서간과 2년 뒤 서간의 의도를 중국인들에게 다시 설명한 개요’(Compendio)를 읽는 사람은 반세기에 걸친 중국정부의 삼자운동(三自運動)’ 앞에서 교황청이 중세와 근세 내내 전유를 주장하고 투쟁해온 주교서임권마저도 상당한 선까지 양보하고, ‘중국천주교애국회에 대해서 프랑스 혁명 이래의 속인주의(俗人主義 laicisation)조류에 순응하는 자세를 감지할 것이다. 21세기를 평신도시대로 내다보는 지식인들은, 중국교회가 교황청을 상대로 벌여온 씨름에서 하느님의 영께서 금세기에 일으키실 새로운 교회상을 예견하기도 한다.

 

중국이 유엔 상임이사국지위를 확보하고(1971)와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룬지(1978) 30여년 지난 2007(“noi pensiamo per i secoli”), 바티칸은 베네딕토 16세의 서간형식을 빌려 중국 당국과 정중하고 건설적인 대화”(4)를 요청하였는데 그 대화는 한편으로는 중국 주교들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정부 당국과 갖는 정중하고 열린 대화”(12)였다.


이 교황서간의 일차 수신인은 중화 인민 공화국 가톨릭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이며 서간에서 다루는 중국교회의 현안 문제는 교회 내부와 중국 사회의 긴장과 분열’(6), ‘국가 기관[애국협회]의 기능’(7), ‘주교 임명과 주교의 사목 직무 행사’(8-10)에 따른 성사 거행(10), 교회 관구와 교구의 승인과 경계에 관한 정부와의 타협(11) 등이다.

 

우선 눈에 띄는 바는, 비록 베를린 장벽의 붕괴 후 15년만에 나온 언사이지만 중공의 반세기 역사를 하느님의 탁월한 안배’(비록 악의 부추김에 동조하는 인간의 사악함과 더불어라는 보복적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로 보려는 시각적 변화가 괄목할 만하다. “역사는 완전히 해독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채로 남아 있어서, 누구도 읽을 수 없다.... 아시아인들이 받아야 했던 박해 앞에서 하느님께서 침묵하신 것에 대한 아시아 교회의 절망은... 교회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시련은 아니나, 이것은 악의 부추김에 동조하는 인간의 사악함과 더불어, 사건들 안에 보이는 하느님의 탁월한 안배를 드러낸다.’”(3).[4]

[4] 참조: “아주 먼 시대부터 중국 국민은 그 위업과 그 문화와, 그 찬란한 문명으로 아시아의 다른 백성들 사이에서 특출났으며, 이 세상의 지혜를 무한히 초월하는 복음의 빛으로 비추임을 받은 후에는 이 빛으로부터 자기네 정신을 위해 보다 큰 부를, 곧 민간 덕성을 완정하고 견고히 해주는 그리스도교 덕성들을  이끌어냈습니다.(1954: Ad Sinarum gentem


로마교회는 이 문서에서 (서방세계가 함부로 구사하는 지하교회애국교회니 하는 대립적 용어를 구사하지 않고) ‘중국의 가톨릭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중국의 가톨릭교회는 본질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보편 교회의 일원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전면에 내세운다(서문). 인류복음화성은, 중국교회가 지하교회와 공식교회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는 작업을 기울여 왔다.”는 표현을 쓰면서도 오래 겪은 파탄 타협에도 불구하고, 중국교회는 한 번도 열교(裂敎)가 된 적이 없다.”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5] 이것은 바티칸이 중국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을 확신하고 그들의 일치를 지지하여”(4) “오늘날 중국의 사회 역사적 상황에서 복음을 선포하여야 하는 요구에 응답하는”(14) 자세를 취했다는 메시지다.[6]

[5] Andrea Gagliarducci, China-Vatican Relations Take a Small, Positive Step", Catholic News Agency (2015.7.31).

[6] 참조: “여러분의 공동체는 매사에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교황에게 복속해야 하고 종교신앙과 도덕에 관한 한 교황과 긴밀하게 일치해야 합니다. 인민이나 시민당국이 교계의 권한이나 교계의 설정 분야를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Ad Sinarum gentem)


아울러 정의로운 사회는 교회가 아닌 정치를 통하여 성취되어야 하다.”는 서간의 문구는 현실사회주의의 무신론이나 중국공산당의 종교 통제에 적극적으로 갈등을 야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7] 가톨릭교회는 중국 가톨릭 신자들의 선익과 중국에 사는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하여 자기 관할 영역 안에서 겸손하고 사심 없이 봉사하겠다.”고 재확인한다(4).[8]

[7] 18세기 조선왕조의 쇄국정책이 천주교 박해는 물론 서양문물의 도입 실패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화를 초래함으로써 교황청의 ‘제사논쟁’의 폐해를 가장 크게 입은 나라가 한국이다. 한일합병에 묵인동조하고 천주교신자들의 신사참배를 공인하고 전쟁 중 일본인 교구장 임명을 강행한 교황청이 중공에 대해서 완강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반공 이념’으로 교회의 실익을 크게 놓친 두 번째 실수로 보인다.

[8] 참조: “여러분의 정치 당국자들에게 그 직임에 합당한 영역에 있어서  존경심을 품을 것이며, 여러분의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민으로서의 여러분의 본분을 수행하려는데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보다 큰 이유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Ad Sinarum gentem)


물론 바티칸이 이 서간으로 중국 정부에 건네는 요지는 주교 후보자의 선발, 주교 임명의 발표, 그리고 새 주교에 대한 국가 당국의 인정(필요한 경우 사회적 효력과 관련된)에 관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부와 합의에 이를 수 있겠다.”(9)는 협상제의이고 그 조건으로 보편 교회가 중국 가톨릭교회 안에 현존한다.”(5)는 선언으로[9] 중국천주교애국회를 중국천주교로 공식 인정한다는 양보사항이다.

[9]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주교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가톨릭교회의 예법을 준수하면서 유효하고 합법적으로 서품된 주교들에게 직접 주교품을 받은 주교들이 이렇게 계속 현존하고 있는 것에 주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8)면서 그 현존이 ‘지하교회’를 통해서라는 암시도 빼놓지 않는다.

 

교황청은 개별 국가들에서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각 주교가 다른 주교들과 친교를 이루어야 하고 모든 주교는 교황과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친교를 이루어야 한다.”(5)는 훈계는 잊지 않으면서도, 정작 바티칸의 우려는 중국교회가 교회가 내부적으로나 중국 사회와 맺는 관계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들, 긴장과 분열과 상호 비난”(6)에 있다고, “긴장과 분열 또는 평신도와 목자가 모두 관련되어 있으며 심각한 차이 때문에 빚어진 가슴 아픈 상황”(9)이라고, (교황에게 충실했던 지하교회더러 공식교회에 대해서) “기억을 정화하고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며 그동안의 불의를 잊어 주고 괴로운 마음에 사랑으로 평안을 되찾아 주라고권유하는 문구는 교황청이 지하교회애국회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오해가 컸다. 오죽하면 2년 뒤(2009) 교황청이 서간개요’(Compendium)라는 공식문서를 별도로 발표해야 했겠는가? 성직자 사이에서나 평신도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가슴 아픈 상황의 근본은 국가 기관과 가톨릭 공동체 생활의 주요 결정자로 지정된 기구들’(‘중국천주교애국회중국천주교교무위원회’)을 인정하느냐는 문제라면서, (‘지하교회로서는 신앙의 사활을 결정하는 요체를) 교황청은 교회 외적인 요인들에 좌우되는 상황으로 평가한 사실이 다수 신자들에게 좌절과 불만을 크게 초래한 것으로 알려졌다.[10]

[10] “가톨릭 공동체 생활의 주요 결정자로 지정된 기구들이 의미심장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기구들의 인정이 공동체나 개인이나 종교 장소를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것으로 선언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성직자 사이에서나 평신도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켜 왔다. 이는 무엇보다도 교회 외적인 요인들에 좌우되는 상황이지만, 의혹과 상호 비방과 비난을 낳으면서 교회의 발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왔으며, 여전히 교회의 취약한 부분으로 남아 있어 걱정을 낳는다.(7)


바티칸은 일단 애국회가 중국교회를 정치적으로 주관하다시피 하는 양상은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일반원칙을 이론상으로 천명하면서도[11] 애국회와 협력하고 가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어려운 문제를 로마가 결정하지 않고 개별주교들에게 맡기고, 일단 교구장이 정하면 교구공동체 전체가 받아들이라는 혁신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이러한 면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한다. 교황청은 원칙들을 다시 한 번 밝힌 다음, 결정은 개별 주교들에게 맡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결정이 받아들여져서 교구 공동체와 그들 목자의 일치가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란다.”(7)

[11] “국가의 지지를 받지만 교회 조직과는 무관한 몇몇 기구들이 스스로 주교들보다 위에서 교회 공동체 생활을 이끌겠다고 하는 주장은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기구들이 표방하는 ‘교회의 독립, 자주, 자영(自營)과 민주적 운영의 원칙들’을 실행하려는 목표는 가톨릭 교리와 양립할 수 없다...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온다.’고 고백한다.(7)


특히 지하교회에 속한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은 교황 서간을 읽으면서 소위 박해시대에 중국교회 성직자들에게 부여된 특별 사목 권한을 철회한다는 선언과 그 동안 비밀리에 임명된 주교들의 직책이 당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양성화하기 바란다는 요청에 당혹하였고[12] 중국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524) 제정으로도 그 불만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18-20).

[12] 일부 (지하교회) 주교들은 “비밀리에 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상황은 교회 생활의 정상적인 특징이 아니며,... 교황청은 이러한 합법적인 목자들이 필요하다면 사회적 효력을 위해서도 정부 당국의 인정을 받고, 모든 신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환경 안에서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8)

 

문서에는 교황청이 중세 내내 신성로마황제들과 서임권 논쟁을 하면서 고수해온 주교임명권에 관해서도 대단한 양보가 보인다.[13] 교황청은 “‘서품되지않은 사람들, 때로는 심지어 세례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다양한 국가 기관의 이름으로 주교 임명을 포함하여 중요한 교회 문제에 관한 결정들을 내리고 통제하고 있는상황을 애탄하면서 종교 영역에서 성좌로부터 독립된교회를 구상하는 것은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8)는 원칙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도 교황청은 중국교회의 자의적 주교서품 문제를 두 가지로 선의적으로 해석하여 해법을 모색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임을 밝혔다.[14] 먼저 교황의 위임 없이 주교품을 받았으나 베드로의 후계자와의 친교 안에 받아들여지기를 요청한 경우는...주교의 재치권을 온전하고 합법적으로 수행하도록 교회의 보편 목자의 고유한 책임으로 허락하였다.”(8) 두 번째로, “교황의 위임 없이 서품을 받았고 필요한 법적 허가를 요청하지 않았을 경우, 합법적이지 않다고 여겨져야 하지만, 유효하게 서품된 주교들에게 성품을 받았고 가톨릭 주교 서품 예식이 존중된 것이 확실하다면 유효하게 서품된 것”(8)으로 인정하고(non licet sed valet), 따라서 그들은 교황과 친교를 이루지는 않지만, 성사 집전으로 비록 합법적이지는 않다 하여도, 그들의 직무를 유효하게 수행하므로”(8), 그 주교들에 의한 사제서품과 그 주교들과 사제들에 의해 거행되는 성사들은 유효하다고 가닥을 잡아준다.[15]

[13] 중세 내내 주교서임권을 두고제정(祭政)논쟁이 있었지만 교황령과 교황청내부, 그리고 선교지의 주교 임명에는 교황이 임명권을 행사했지만, 유럽 왕정시대의 교구장들은 사실상 국왕이 선발하고 교황이 인준하는 절차였음이 보름스 이래의 각종 종교협약(concordata)에서 드러난다. 19세기부터 왕정들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탄생하면서 교황청이 전 세계에 주교임명을 사실상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14] 이런 상황에서 바티칸은 가장 미묘한 현‘중국주교단’의 교회법적 지위를 분명하게 정리한다. “사도좌는 현재 중국 천주교 주교단을 주교회의로 승인할 수 없다.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았지만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는 ‘비밀 주교들은 중국 천주교 주교단에 속하지 않는다. 이 주교단은 아직 비합법적인 주교들을 포함하며,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요소들을 담고 있는 정관에 따라 운영된다(8). 중국교회가 ‘가톨릭교회’이고 ‘중국주교단’이 엄존하지만 교회법상의 ‘주교회의’로는 아직 인정 못한다는 선언이다.

[15] “그들의 주교품은 비합법적이지만 유효합니다. 또한 그들이 수여하는 사제 서품은 유효하며, 그러한 주교와 신부가 집전하는 성사들도 유효합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 점에 유의하여 성찬례 거행과 다른 성사들을 위하여 되도록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는 주교들과 신부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큰 불편 때문에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수 없는 곳에서는 영적 선익을 위하여 신자들은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지 않은 이들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10)


그 동안 교황청이 대변인을 통해서 중국교회에서 사도좌의 위임 없이 어떤 이를 주교로 축성하는 주교와 그에게서 축성을 받는 이에게 모두 큰 제재를언급하면서도 그런 제재를 공표하지 않았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주교 임명에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하고 주교 후보자 선발, 주교 임명 발표, 그리고 필요한 경우 사회적 효력과 관련하여 새 주교에 대한 국가 당국의 인정에 관한 몇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와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9)는 요지의 대화요청으로 그치고 있다.


바티칸의 이처럼 유화적인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는 끊임없이 비등록주교와 성직자들을 연금하거나 구속함은 물론, 바티칸과 아무런 협의 없이 주교를 선출하고 서임하는 돌출행위를 감행하여 교황청을 거듭 시험해 왔다. 이런 문제를 연구하려고 2007년에 설립된 중국 가톨릭교회에 관한 위원회2011년 총회에서 청도에서 서품된 주교들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냈다(2011.4.14).


청더에서 거행된 주교 서품은...그것이 무효하다고 여길 근거는 없지만, 중대한 불법 행위라고 여긴다.... 그러나 외부의 압력과 압박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동 파문이 따르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 관련된 모든 주교는 하며, 교황님께 충성 서약을 다시 하고,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3)


중국천주교애국회에 실무적으로 종사하는 성직자와 신자들에게도 이전 문서에 비해서 교황은 이해할 만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12-13). 1954년에는 천주교애국회와 중국정부의 삼자운동(三自運動)’에 대해서, 성서를 인용하면서까지,[16]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의 교회가 온전히 독립하기를 바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교 교리의 가르침이나 거룩한 설교에서도 자율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삼자운동(三自運動)’으로 알려진 위험한 원칙이나 다른 원칙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하듯이...” 그것이 국가교회를 건설하려는 획책일 뿐이라고 단정함으로써(Ad Sinarum gentem)[17]이후 60년 넘는 갈등을 초래하고 만다.

[16] 문서는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갈라 1,8)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17] 참조: “저런 운동을 촉진하는 사람들은 단순하거나 겁 많은 사람들을 기만하거나 바른 길에서 멀어지게 하고... ‘삼자(三自)를 갖춘 교회에가담하는 사람들만 애국자라고 거짓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은 여러분 가운데 ’국가교회‘를 건설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Ad Sinarum gentem)


그런데 이번에는 천주교애국회실무자들이 힘든 시기와 상황에 대처하려고 교회적 관점에서 언제나 동참할 수는 없는 지위를 떠맡은 형제들로 불리고, 교황도 제 존경하는 선임 교황께서 중국 교회에 되풀이하여 권유하신 그 깊은 화해의 정신으로그들을 대하겠다면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아버지다운 마음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사도좌에 문의하여 그러한 바람에 올바로 응답하라.”는 사목 지침을 내린다(13). 교황청 중국 가톨릭교회에 관한 위원회역시 위의 메시지에서 8회 전국 가톨릭 대표자 회의와 관련하여... 이는 완전히 우리 손안에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문제가 더 커지지 않기를, 화합과 평화를 희생시키고 분열의 골이 깊어지지 않기를 호소하는”(4) 선에서 그쳤다.

 

국제 언론이 말하는 프란치스코 충격(Francis’ Impact)’은 첫 회칙 복음의 기쁨과 두 번째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서 이미 국제정치와 환경문제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황은 소위 문화충돌의 맥락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라는 세계종교가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도모하기는커녕 근본주의자들에게 장악되어 증오와 전쟁을 일삼으면서 인류 파멸을 재촉하는 현시점에서 천주교신자들에게 신자유주의 경제와 소비주의 환경파괴에 정면으로 나서라는 새로운 복음화과업을 부여하고 호소하는 중이다. 따라서 현 교황이라면 타종교(문화)에 존경심을 잃지 않으면서 상호성사론의 선교신학도 용납하고, 중국문제에도 적극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끝으로 필자는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은 교황청의 중국정책을 북한복음화에도 인용하자고 제언하고 싶다. 우선, 한국주교회의에서 평양, 함흥, 덕원 교구의 서리를 겸임하는 주교들보다 앞서, 북한에 현존하는 신앙공동체, 예를 들어 장충성당조선천주교연맹의 인사들을 북한 교회의 실체로 인정하고 공표할 만하다. 바티칸이 중국천주교애국회라고 불리던 교회공동체를 중국교회로 지칭하였는데 왜 한국천주교는 북한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조작된 괴뢰로 하시하는가? 동구권에 70년간 현실사회주의 정권들이 온갖 제재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이전의 신앙공동체들이 고스란히 소생하고 있음을 미루어, 한국천주교도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루카 3,8)던 세례자의 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북한의 주체사상은 이데올로기라기보다 종교심처럼 인민에게 주입, 배양되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김일성 가문을 향한 북한 인민의 이 특유한 유교적 종교심을 북한선교에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연구하도록 제언하고 싶을 것이다. 주체사상이 김일성 가문을 구세주로까지 격상하지 않았다면, 교황청이 애국회주교들과 평신도지도자들에게 취하는 유연한 자세를 유념하여 가톨릭의 대북선교 역시 주체사상선구자개념으로 순화할 여지를 모색할 만하다.


셋째로, 작년의 방한 마지막 날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북한이 한 민족임을 무려 여섯 번이나 상기시키면서 한 가정을 이루는 이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기도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동아시아복음화에 앞서 북한의 복음화, 그보다 먼저 남한교회의 새로운 복음화를 연구함이 바람직하다. 분단 70주년을 맞아 주교회의가 전 신자들에게 남북한 화해를 기원하는 기도문을 배포하였고 가을주교회의 총회를 마치면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광복 분단 70주년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를 주교단이 공동 집전한 행사는 남한천주교 새로운 복음화의 한 걸음으로 평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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