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일 목요일, 맑음


엊그제 마을회의에서 마을 앞에 폐교된 초등학교가 사학재단에 팔린 다음 흉물로 전락한데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로 결정되어, 진정서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터라  우선 내 일기에 사신 형식으로  공개서한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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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대학 총장님께


저희가 문정리 문하마을을 처음 찾은 것은 1993년 여름이었습니다. 앞으로는 휴천강이 흐르고 뒤로는 법화산과 삼봉산이 솟고 오른쪽 멀리는 지리산 하봉, 맞은편으로는 와불산, 왼편으로는 밥상같이 평평한 왕산이 바라보입니다. 아침마다 왕산 위로 태양이 고봉으로 떠오릅니다.


귀농하여 막 정착한 진이네 가족은,아빠는 생업으로 창원공단에 이탈리아어 통역을 나갔고 진이 엄마는 뒷산에서 흑염소를 키우며 토종벌을 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터라, 문정초등학교 1학년이던 진이가 학교에 가면 네 살짜리 남동생 진호와 강아지 메리가 누나 따라 등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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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소사 아저씨가 하는 스피커방송이 마을로, 산비탈로 울려 퍼졌습니다. "진이어머니, 진호와 메리 좀 데려가주이소." 보통 때는 그냥 보아 넘기지만 진호와 강아지가 누나의 수업에 방해가 될 때 나오던 방송이었는데 지금은 진이가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문정초등학교가 문을 연 것은 1934년이었습니다. 면소재지에 있던 목현초등학교로 아이들이 가녀린 다리로 시오리나 되는 등교 길을 걸어야 하는 고생을 면해주려고 문정리 어르신들이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217번지에 땅을 내고 십시일반으로 학교를 지어 가난한 살림에 문맹으로 살아온 서러움과 어려움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지어진 학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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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70년대부터 시골마을 자손들이 직장을 찾아 도회지로 떠나고 마을인구는 고령화되면서 취학아동들은 점점 줄어 1999년에는 분교로 격하되었다가 그 해 9월에 폐교되었습니다. 그렇게 개교한지 65년 넘는 학교에는 낡은 건물들만 남아 학교를 짓기 위해 애썼던 조상들이나 이 학교 졸업생들의 아픈 가슴을, 객지에서 귀촌한 저희 부부도 생생히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20031120일에 마산대학교에서 학교 수련장으로 쓰기 위해 학교 터와 건물을 샀다는 얘기가 들렸고,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에 대학생들의 힘찬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학교 옆에 사는 주민에게 관리를 맡겼다며 마당도 손질되고 나무도 이발을 했습니다. 동네 청년들은 휴천강에서 래프팅을 운영하여 잠시 생기가 도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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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년도 안 되어 녹슨 채 굳게 잠긴 철문과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합니다. 무단으로 출입시 법적 조치를 하고자 하오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마산대학교 총장이라는 위협적인 팻말이 새 주인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15년째 방치된 운동장에는 잡초만 한 길로 자라 오르고 버려진 건물은 하나씩 망가져갔습니다. 교실과 숙직실 유리창들은 깨졌고 남겨진 커튼은 창밖으로 펄럭거리고, 건물에는 검은 이끼가 꺼멓게 피어올라 한길을 지나가거나 지리산 두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귀곡산장으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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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연수원으로 학교를 사용하고 주민들의 문화생활에 이바지하겠다던 마산대학교측의 약속은 어디 가고 15년간 방치된 학교 건물은 흉물로 변해 마을 입구를 가로막고 있어, 학교를 지으려고 조상이 땅을 기증한 가족들이나, 특히 이 학교졸업생인 고령의 주민들 마음은 더없이 착잡합니다. 근자에는 학교 터를 팔려고 내놓았다니 대학교를 운영하는 사학재단이 땅 투기 목적으로 사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주민들을 더분개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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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을 주민들이 마산대학교와 교육청에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결의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중입니다. 먼저 무난하고 성의 있는 방도로 마산대학교 측에서 사태해결에 나서도록 저희 부부가 서신으로 미리 일깨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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