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5일 목요일, 맑음


보스코에게 옷을 겹겹이 입히고, 목에 머플러를 돌돌 말아 올려 코와 귀까지 덮어주고, 머리엔 모자를 씌우고 나니 그의 작은 키에 동글동글 여지없이 눈사람이다. 장갑에다 마스크에 털구두도 신겨 대문을 나서는 그에게 뒤에서 소리친다. ‘주머니에서 손 빼고. 유미네 가게 앞을 지날 때는 땅보고 조심조심 걸어요. 미끄러지면 큰일나요!’ 초딩도 아니고 유치원 보내는 엄마식 잔소리에 그는 씨익 웃고 말없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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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종교냐? 자성과 혁신 연대라는 이름으로 천주교, 개신교, 불교가 연대하여 종교계 정화를 내부에서 시도하려는 모임이 만들어져 가는 중이다. 함세웅 신부님과 보스코가 가톨릭을 대표하여 여남은 활동가들을 데리고 기사련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였다


저녁에 어디 깨진 데 다친 데 없이, 아침에 나갔던 그대로 돌아왔으니 엄마 말을 잘 듣긴 들었나 보다고 속없이 나혼자 흐뭇해한다. 요즘은 외출에서 돌아오면 지치는지 jtbc 저녁뉴스를 보며 잠들었기에 주변에 보이는 모든 쪽이불로 덮어준다. 내가 추우니 눈에 보이는 게 다 추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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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있는 유미네 가게 쉼터 슈퍼의 모든 과일상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있다. 처음에는 과자 사탕 라면 등 군것질이나 주점부리가 대부분이었는데 세월이 가면서 생필품 종류가 늘어나고 요즘은 식료품과 과일까지, 게다가 봄이면 양파 마늘, 가을이면 고추와 쌀까지 골목 안쪽에 사는 사람의 모든 필요를 그 구멍가게(빵고의 어렸을 적 말로는 가게구멍’)가 충족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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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과 유미네 사이에 ‘바리네 가게가 있었다. 바리엄마는 사교성 있고 얼렁뚱땅 사람을 다루는 재주가 있어 가게 앞에 앉아 오가는 모두에게 말을 걸고 인사를 하고 다른데서 사들고 들어오는 주부들의 봉지를 일일이 붙잡아 열어보기도 했다. ‘우리집 있는데 왜 힘들게 먼데서 사들고 오느라 힘뺀다요?’라며 핀잔도 주기도.


그러던 바리엄마가 환갑을 며칠 앞두고 돌 지난 딸손주를 안고서 가게방에서 잠을 잤는데 딸손주의 자지러진 울음이 행인들에게 외할머니의 부고를 알렸다. 심장마비였다. 환갑을 못 채운 그니를 두고 동네아짐들은 그래도 죽을 복이 있어 한번에 깨끗이 갔다고들 혀를 찼다.


'이여인터' 활동을 보도해준 1월 20일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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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인터' 공동대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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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나라 여자들에게 본방어로 고충을 상담해주는 서울 상담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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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30분에 종로의 서울 글로벌센터’ 4층 회의실에서 제18한국이주여생인권센터 정기총회가 있었다. 그러니까 18년 전 한국염 목사가 한국여신학자협의회총무직에서 물러날 때 이숭리 선생과 전순란이 한목사더러 새로운 일을 찾아 꾸려라. 우리가 전적으로 밀어줄 게!’라고 격려를 했는데 과연 6개월 만에 우리나라에 시집와서 고생하는 이주여성들과 함께하는 이주여성인권센터(줄여서 ‘이여인터’)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소경이 제 닭 잡아먹듯 이 일을 해왔다는 내 말에 이숭리선생이 잡아먹는 건 좋은 일이야. 닭이든 소든 먹을 게 있으면 잡아먹어야지. 그리고 커야지.’ 라고 선선히 대꾸를 했다맨손으로 시작한 일이고 모든 운동단체가 적자로 쩔쩔매는데 작년 이월금이 2000만원 넘는다는 결산을 보고 입이 벌어진다


'여인터' 지부 담당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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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직을 내놓았으면서도 한목사는 어딜 가서 강연을 하든 강연료를 갖다 사무실에 내놓는다. 오늘 심한 독감으로 그니가 회의에 난생 처음으로 못 나온 까닭도 엊그제 강연료를 벌어다 주러 창원까지 무리해서 다녀온 탓이다. 정말 과부는 은이 서말이라는 살림살이다.


2000여명의 후원자들이 운영을 뒷받침하고, 한 개의 서울 센터가 지방에 6개로 불어났는데 제각기 자립을 하고 미약하나마 본부를 돕기까지 한다. 설립자 한목사의 후임으로 뽑힌 똑똑하고 야무진 새 대표와 공동대표들, 헌신적인 직원들, 관대한 임원들이 마음과 뜻을 모아, 이제는 우리나라에 시집 온 여자, 일손을 도우러 온 남자 200만 명 이상의 이주민과 함께하고 있다. 내 친구 한목사가 꼭 필요한 곳에 겨자씨 한 알을 심고 스무 해를 물주었는데 어느덧 하느님이 아름드리 나무로 키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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