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5일 화요일, 맑음


김영언니는 오랫동안 여성교회 담임목사를 했다. 향린교회에서 돌아가신 홍근수 목사님, 남북통일에 혼신을 다하신 분의 짝꿍인데 부부가 함께 오래 살면 닮기도 하련만 두 분은 닮은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나 조화롭게 살았다. 얼마 전 당신의 허스토리를 시니어 스토리텔링단편영화 만드는 팀에서 만들었는데 어느 한 구석도 나와 맞는 얘기가 없어서 당황했어란다. ‘나라고 왜 근심 걱정과 힘들 일이 없었겠냐?’고 되묻는다. ‘인생에 화사한 꽃길만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언니는 어제 모임에서 설교삼아 리프리츠 오르트만의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주인공은 곰스크를 가보는 게 꿈이다 아내와 일년간 열심히 일해서 곰스크행 기차표를 샀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별 감흥이 없는 아내와 함께 떠난 여행이지만 크루즈 여행처럼 가끔 커다란 도시나 아름다운 장소에 두어 시간 기차가 머물다가 그 시간동안 구경을 하고 돌아와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어 아내도 묵묵히 따른다. 그러다 어느 도시에서 야산에 올랐다 역에 도착해 보니 기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 표로 탈 수 있는 기차는 그 기차뿐이었고, 그렇게 고생하여 산 곰스크행 기차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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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그 마을에서 열심히 일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서.그러나 아내는 일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아름다운 안락의자를 사는 게 소원이었다. 1년 후 두 장의 곰스크행 차표가 마련되었다. 아내는 번 돈으로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아름다운 안락의자를 얻었다.


곰스크로 떠나는 기차표로 드디어 기차에 올라타려 했으나 화물칸이 없는 기차에 아내가 힘겹게 얻은 안락의자를 실을 수 없었다. 둘은 심하게 싸웠다. 남편은 혼자서라도 곰스크로 떠나기로 맘먹고 기차에 올랐고 아내는 안락의자와 편안한 삶을 살겠다고 그곳에 남기로 했다.


기차가 막 떠나려는데 아내가 "가서 머물 곳의 주소라도 알려주세요, 아이가 태어나면 아빠에게 연락이라도 하게요." ‘아내에게 아이가 생겼다?’ 그 사실을 안 남편은 기차에서 내려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아내와, 부셔버리고 싶은 안락의자와 함께 그 마을에 남는다. 둘째 아이가 생기자 공석중인 마을에 유일한 학교에 선생이 된다. 나이가 들어 교사 자리에서 물러난 선생님도 실은 곰스크로 떠나려는 평생의 꿈을 가슴에 묻고 늙어버린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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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원하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고, 그대의 운명은 그대가 원한 것이랍니다." 김영언니는 얘기를 마치고 각자의 곰스크각 사람의 안락의자를 얘기해 보자고 했다


경희언니는 같은 반 친구와 결혼했다. 남해의 가난한 집, 딸 다섯에 큰아들인 남편은 교회 부목사를 하면서도 오로지 꿈은 외국유학이었단다.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곰스크의 그 남자는 아이들을 위해 기차표를 찢었는데) 포기를 못하고 기어이 당회장 목사님께 1년간의 시간을 허락받고 캐나다로 떠났다


세 아이와 교인들이 애타게 기다리는데 1년이 지나자 남편이 장학금을 찾았으니 언니더러 캐나다로 들어오라 했다. 그러나 말씀이 영험한 목사님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는 교인들의 기도와 기다림을 배반할 수 없다며 언니가 안 따라 나서자 하는 수 없이 남편은 곰스크에서 돌아와 그 교회에서 40년간 목회를 했다. 지금은 은퇴하여 쉬고 계시다.


이렇게 얘기가 한 바퀴 돌고 내 차례가 되자 후배가 얘기를 가로챘다. “순란이언니는 식당에서 일하는 남자가 기차표도 마련했고, 언니도 안락의자를 드디어 장만했는데, 낯선 남자가 하나 나타나서 기차표 두 장을 흔들어 보이자 그 남자 따라 안락의자도 본남자도 다 놔두고 냉큼 기차를 타고 곰스크로 떠나버렸대요.”라며 나를 놀리며 좌중을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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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45년전 보스코 따라 곰스크로 떠난 순란이는 오늘도 자정이 다된 이 시각에도 부엌에서 유자청이 들어간 쿠키를 굽고 있다.


오전에는 보스코랑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몄고(결혼 첫해부터 트리를 꾸며온 그가 70대 후반이 되어 이젠 손주들과 함께 트리를 꾸미고 싶다는데 그 꿈은 좀처럼 이루어질 성싶지 않다), 점심에는 한목사와 엘리1을 만나 점심을 먹고서 집으로 와서 보스코가 예쁘게 세팅한 식탁에서 올해 첫 성탄 손님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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