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3일 금요일, 비오다 흐림


3000일 동안 어떻게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기를 썼는지 내가 돌아보아도 믿기지 않는다. 손님이 오는 날은 뒷정리를 하고나면 자정이 넘어서야 일기를 썼고, 뒷목이 뻣뻣해 눈을 번쩍 떠 보면 펜을 든 채 졸고 있었으며, 10분만 눈을 붙이고 쓰자며 소파에 쪼그리다 보면 자다 쓰다를 거듭하며 새벽 서너 시를 넘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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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엔 인터넷이나 와이파이가 안 돼 고생했고, A4 용지 꼭 한 장 분량(200자 원고지 10)을 쓰기로 마음먹은 터라 필력도 시원찮은 나로선 그걸 채우는데 힘이 들었다. 아파서 열이 펄펄 나거나 입원하여 수술로 마취가 덜 풀려 횡설수설 적기도 하고... 염치 좋게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자기 얘기를 썼다고 화를 내며 글을 지워 달라거나 사진을 빼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다시는 자기들 얘기 언급 말아달라면서...


지리산휴천재일기를 쓰기 시작한 동기는, 지리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자칫 스스로 고립될 내 삶을, 사람들 앞에 내려놓고 열어 보이고 나누고 싶어서였다. 공책에 하루의 삶을 옮겨 쓰면서 자기를 뒤돌아보고, 깊이에서 만나기도 한다. 진작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로마에서의 13년 세월도 기록으로 남겼을 텐데.... 보스코의 바티칸 주재대사 5년의 그 다양한 경험과 인간관계도, 80년대 남편의 가난한 유학 시절의 갖가지 황당했던 얘기도...


오늘자 일기가 보스코의 홈피(donbosco.pe.kr)에 세 들어 있는 내 블로그에서 3000번째 꼭지를 맞는다고 아름다운 초록국화 꽃바구니까지 들고 찾아와준 이엘리와 사랑하는 동창 한목사가 고맙다. 앞으로 650일을 마저 채우고 절필하는 날엔 어떤 기분일까? 보스코 말로는 그때 가서 또 다른 10년을 시작하고, 그러다 보면 한 30년 잠깐이라나? 글 같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뽑아 책을 만들자는 출판사가 간혹 있었지만 내 글 땜에 아까운 나무가 베어지는 일도 죄스럽고,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서 내 이야기도 함께 사라지길, 나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로 만족하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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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리와 한목사 그리고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서당골에서 점심을 했다. 전에는 목우회친구들이 곧잘  만나던 곳인데 나이 들며 만나는 시간도 점점 뜸해진다. 식사 후 집에 와서 ‘3000꼭지 축하' 케이크도 자르고 커피도 마시며 언덕에 빛나는 황금색으로 물든 나뭇잎을 바라본다. 늙어도 아름답고 땅에 떨어져 밟혀도 서럽지 않음을... 이 순간의 찬란함에 감사하면서...


오후 4. 서울교구 민화위에서 개최하는, "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이라는 포럼에 발제 강연을 하러 오신, 보스코의 오랜 친구 벨기에 반 로이(윤선규) 주교님을 뵈러 혜화동 대신학교에 갔다.  http://donbosco.pe.kr/xe1/?mid=s_live&document_srl=300


2004년까지 바티칸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를 지냈던 비쎈테 질 대사가 아르헨티나 정평위원장으로 강연을 하러 와서 그분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그는 보스코와 대사들의 성서읽기클럽을 만들어 함께 활동했다). 또 얼마 전 한반도의 평화를 주선하는 교황 특사라는 소문이 났던, 엘살바돌의 차베스 추기경도 만났다. 함께 휴전선을 방문하고 돌아오시던 염수정 추기경님도 인사를 나누고... ‘디모니카의 고모니카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고.... 윤주교님, 질대사와는 한 시간 가까이 환담을 나누다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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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달리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신학생들의 활기찬 함성에서 40여년전의 보스코가 겹쳐졌다. ‘자네 반이 축구를 하면 말야, 제일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다니는 게 자넨데 말야, 자네가 공을 차는 건 한번도 못 봤거든...“이라는 말씀을 김창렬 학장신부님(후일 제주교구장 주교)께 들었다는 보스코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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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1973) 보스코가 부제품을 앞두고서 한 처녀와의 사랑에 빠져, 사제의 길을 가느냐 그 처녀와 인생을 함께하기로 바꾸느냐 깊은 번민 속에 거닐었을 낙산의 숲길을 오늘은  그 둘이 함께 걸었다. 그에게 버거웠을 결단을 받아들인 결과로 초로의 여인과 낙엽진 길을 걸으며 주름진 70대 후반의 노인이 내게 부탁했다. “내 묘비엔 이 구절을 새겨줘! ‘주께서 너에게 잘해주셨으니 고요로 돌아가라 내 영혼아!’(시편 114[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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