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8일 토요일, 맑음


북청색 가을밤 하늘에 반달이 쓸쓸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약 없이 떠나가는 중년남자의 뒷모습 같다. 흐린 달빛에 빛바랜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시린 늦가을 밤을 맞고 있다. "영심아~" 부르면 "어이, ? 심심해? 그럼 올라와. 자 먹어 이건 벌써 물렀네" 친구가 금방이라도 담너머로 보름달보다 더 둥근 얼굴을 내밀 것 같아, 그 친구가 이사 간 후로는 그 집을 쳐다보는 게 아릿하다.


새로 이사 온 사람네는 애가 셋인데 고만고만한 사내애들이 지붕 밑 테라스로 달려다니면 떨어지지나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 해도 바라만 보아도 좋았는데 이사온 지 6개월도 안 돼 무슨 일인지 이사 나간다고 복덕방 아줌마가 자주 오가더니만 요즘은 불조차 꺼져 있다. 웬일 일까?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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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 한 집에서 40년을 살다보니 살아있는 동네 역사책이다. 부부싸움이 심하던 맞은편 집은 그날도 고성이 아침부터 터져 나오더니만 집을 나서는 아저씨 뒤통수에 아줌마의 악다구니가 쏟아졌다. "나가서 자동차에나 치어 칵 뒤져버려라, 보험금이나 타먹게!" 한 여름이면 열어놓은 창문으로 집집의 대화가 다 들리는, 서글프도록 가난한 동네다.


아줌마의 저주대론지 자정 넘어 퇴계로 12차선 도로를 무단으로 건너다 아저씨는 차에 치어 객사를 했다. 아줌마가 바라던 보험금은 안 나왔고, 장례비만 더 들었고, 아들에 대한 며느리의 저주를 잊지 못하던 할머니는 집과 인연을 끊고 남의 집에 얹혀 식사 도우미로 사시다 또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듣기로 함께 살던 그 집 주인부부가 잘 모셔드렸단다


동네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 며느리 욕과 가엾은 그 노인 팔자에 대한 타령에 뒤이어 노인의 장례를 치러준 착한 주인이야말로 복 받을 거라는 이야기로 끝났다. ‘부모 복이 있어야 남편 복도 있고, 남편 복 있어야 자식 복도 있다는 속담을 입에 올릴 만한 원주민은 이제 대부분 이사를 가버리고 가난한 동네의 가난한 저런 구전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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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때문인지 며칠 전부터 잇몸이 붓고 앞니가 아파 서정치과 곽선생에게 연락을 하고 찾아갔다. 아침 밥상에서 식구들 보는 앞에서 접시에 이빨이라도 !’ 떨어진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이태 전 보스코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특히 시아 시우라도 본다면 이 할메 완전히 스타일 구겨지는 일이다. 곽선생은 감기에서 오는 바이러스성 잇몸질환이니 한 열흘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그냥 기다리라 한다. 치과의사를 친구로 두면 여러 면에서 좋다. 늘 무료로 해 주니까 진료나 치료에 돈이 안 들고 6개월에 한 번 씩 연락을 해와 스케일링까지 해준다, 20년 넘게....


또 정신과 의사를 친구로 둔다면 내가 헷가닥할 적마다 같이 놀아 줄꺼다. 김원장님처럼 말이다. 보스코의 외사촌동생은 심장전문의인데 오늘 전화를 해 왔다. 아마 우리가 지리산에 있으면 올가을 단풍구경이라도 왔을 텐데... 부모님이 왕십리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해서 서울대를 보내 의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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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금지가 있던 옛날에는 외삼촌이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여관잠을 주무시고 생선을 떼다가 새벽에 실어다주시면  겨울 새벽 찬 바람에 동상 걸린 손으로 네 자식을 키워내신 외숙모님...


마지막에 두 분 다 치매가 왔다. 효성스러운 이 막내 시동생이 자그마한 요양병원을 만들어 마지막까지 모시다 보내드렸다. 부모님이 사셨고 자기들이 자란 황학동 '시장통집'도 부모님 생각에 차마 못 팔고 세를 주다가 너무 낡아 리모델링을 하는 중이라는 소식이 전화기에서 들린다부모 없던 보스코네 형제들도 어려서 외삼촌 댁에 가서 따순밥을 얻어먹곤 했으므로 20여년전까지는 설날이면 왕십리 삼촌댁으로 세배드리러 가곤 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한 얘기다.


착하기만 하고 주변머리 없으신 외삼촌, 그 가난 속에서도 교육열이 대단하셨던 외숙모님은 두 아들 두 딸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고 다들 착하고 반듯하게 컸으니 늘 생선 비린내에 절어 있던 두 분의 옷자락이었지만 자식 사랑은 늘 향그러웠다.


(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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