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0일 금요일, 맑음


아침 9시 30분에 한전병원에 가서 정기건강검진을 받고, 우리소나타 네비와 몇 군데를 점검받고, 수유시장에 가서 벽지를 사왔다. 그 동안 보스코는 마당 덩굴장미와 덤불로 자란 나무들을 손질하였다. 어제로 보식을 마치고 드디어 오늘 점심부터 정식을 시작했다.


크기변환_20171020_124420.jpg 


               크기변환_20171020_141317.jpg 


크기변환_20171020_141330.jpg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오늘로 32. 그때 우리는 로마에 있었다. 가난한 유학생활에 겨우겨우 한 달씩을 넘기고, 도중에 서울을 다녀오는 친구들도 찾아볼 수 없었던 시절이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들 치르고 나서야 사위에게 연락을 해왔다. 가난한 유학생 남편을 두어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 못한 나에 대한 미안함을 보스코는 가까운 친구 사제들을 초대하여 연미사를 올리며 위로해 주었다.


보스코가 먼저 로마로 떠나고 내가 두 애를 데리고 로마로 뒤따라가기 전 6개월간 화전에 있던 엄마 집에서 친정살이를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있을 시간이 있었다(1981년). 큰손주 빵기를 유난히 사랑하셨고, 교장으로 계시던 덕양중학교에 출근하실 때마다 빵기를 데리고 다니곤 하셨는데, 그때는 이미 치매가 시작되어 집에만 계셨다.


크기변환_IMG_3432.JPG


크기변환_20171020_192932.jpg


크기변환_IMG_3433.JPG


피난으로 떠나온 고향 평강 땅이 그리워 모친에 대한 추억 속에 지내셨다. “어머니가 문규야! 텃밭에서 풋고추 따와라, 고등어자반 조려 줄 께.’ 하시면 텃밭으로 달려가 풋고추랑 강낭콩을 따왔단다. 고등어가 바다에서 평강 산골까지 들어오면서 얼마나 쩔었던지 풋고추에 졸여 강낭콩밥과 먹고 나면 입술이 두 배로 부풀었단다는 말씀을 레코드판처럼 들려주셨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열살 때 돌아가시고, 대농에다 마방을 하던 집안을 할머니가  억척스럽게 꾸려가셨단다, 남자가 마방의 주인하기도 힘들다는데. 지금 내 성격과 억척도 할머니께, 그리고 ‘연천고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다. 할머니도 연천고모도 뵙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 서울 배제학당으로 유학을 가셨고 그 뒤 일본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셨다. 귀국하여 황해도 해주 처녀인 엄마와 결혼을 하셨는데, 일본에서 공부하느라 얻은 폐병도 치료할 겸 제주도로 내려가 표선중학교 교장이 되셨으니 그때가 당신의 나이 32세였다.


배제학당 선배이셨던 우리 외할아버지가 판사이셨으므로 사위더러 사법고시를 치루라고 그렇게나 권유를 하셨다는데도 안하신 걸 보면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우리 남자 세 형제가 다 이과(理科)인 걸로 미뤄 공부엔 별 취미가 없으셨던 것 같다. 강직하고 의리의 사나이지만 주변머리가 없어 엄마가 어지간히 고생을 하셨다. 우리 5남매가 중학교교장 박봉에도 모두 대학을 나온 건 오로지 엄마의 억척스러운 교육열의 결과였다.


크기변환_IMG_3439.JPG


크기변환_IMG_3438.JPG


오늘 아버지 기일에 오신 엄마도 우리까지는 알아보시지만 당신이 키워준, 막내의 두 아들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제사는 아들이 주관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시며 추도예배 기도도 식사기도도 사양하실만큼 말짱하시다가도, 밥상에 놓인 호연이의 포도주 잔을 보고 뭐냐고 물으시고 맛을 보여드리니 "뭐가 이렇게 시고 씁쓸하냐?" 하며 찡그리시곤, 얼마 후에 또 묻고 또 맛을 보고 또 같은 말을 반복하셔서 오늘 예배에서 부른 찬송가 대로 "하늘가는 밝은 길"이 가까워옴을 몸소 보여주신다.


아버지’, 내게는 그분이 누구며 어떤 의미일까? 내 이름이 '순란(順蘭)'인 것은 아버지가 멋진 여인이라 생각하던 박순천에서 자를, 김활란에게서 자를 가져오며 그분들 같은 여걸이 되라는 의미였다는데 사회의식은 별로 없던 분이다. 내 나름 저런 여걸들을 별로 닮고 싶지 않아서 한국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했고, 덕분에 내 평생을 한신에서 배운 정신으로 살아왔으니 어쩌면 이게 아버지가 정말 원하시던 길이 아니었을까?


크기변환_20171020_223430.jpg


크기변환_20171020_223902.jpg


추도예배와 저녁식사가 끝나고 합정동 절두산 옆에서 모임을 갖고 있던 보스코를 데리러 갔다. 모임 장소가 아피(AFI) 회관이어서 그 회원인 윤순녀 언니도 만났다. 언니는 친절하게 회관의 예쁜 소성당, 200여명을 함께 교육시킬 수 있는 대강당, 그리고 언니방을 보여 주었다. 언니방에 걸린 가족사진 속에는 내가 아는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와 인연이 많은 집안이다. 그 집 옥상에서는 한강, 여의도 국회의사당, 절두산성지가 건너다 보였다. 밤에도 멋진 풍광이다. 한국에서는 수도회마저도 여자들의 능력이 출중한데, 역시 한국의 힘은 아줌마들이다.


합정동 아피회관에서 건너다 본 절두산성지와 여의도 

크기변환_20171020_222732.jpg 


크기변환_20171020_22281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