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8일 화요일, 구름
알람을 해 놓고도 행여 늦잠을 자 한라산 백록담 등산을 놓칠까 밤새 살잠을 잤다. 처음에 백록담 등산을 하기로 하고 스틱과 등산화 등을 챙겨와서도 왕복 19Km라는 거리에 질린 보스코가 ‘내 나이를 생각해서 3시간 정도 걷는 영실코스나 다녀오자’고 했다. 제주는 내가 태어나 여덟 살까지 큰 고향이기도하고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 땅으로서 상징성을 가지기에 꼭 한번은 오르고 싶었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는 점점 더 힘들어지기에 어쩌나했는데 우리 희정씨가 ‘성판악~백록담’ 코스는 평탄하고 길이 잘 돼 있어 노인들도 갈 수 있다며 꼭 가시라고 등을 떠민다.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호텔을 떠났는데도 거기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 좀 지나 성판암 입구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모든 차량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렌트카였다. 서울에서 접어온 지팡이를 펴다가 분지르고 말아 하는 수 없이 거금을 주고 지팡이 두 개를 더 샀다. 그 지팡이가 오늘 제값을 할 줄이야,
주차비 1000원을 내고 6시 50분에 성판악 주차장을 떠나 산길을 오르는데 어제 밤까지 비가 와서 길은 젖어있고 돌도 방부목도 참 미끄러웠다. 그래도 보스코가 잘 걸어 주었다.
숲은 아직도 비에 젖어 있어 바람이 불면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 장대비처럼 후두둑 쏟아지곤 했다. 구름이 숲속에 자욱하고, 화요일인데도 사람들이 일렬로 줄지어 올라갔다. ‘진달래밭대피소’를 10시 30분쯤 통과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우리를 추월해 올라가는데 ‘몇 시에 성판악을 떠났느냐?’ 물으면 8시에 떠났다거나 9시에 떠났다 하니 두어 시간을 추월하는 젊음들이 부러웠다.
길은 길고도 비교적 평탄한데 나무 밑으로만 계속 가니 재미가 적었다. 그래도 잡목과 단풍, 소나무가 산대와 어울린 숲과 하늘을 찌르는 낙엽송 숲은 멋졌다. 11시가 진달래대피소를 지나니 주목이 울창했던 고사목 단지며, 그 자리를 채우는 자작나무가 막 구름을 헤치고 얼굴을 내민 햇살에 반짝이는 장관을 한참 걸었다. 백록담까지의 마지막 데크 길을 사람들이 줄지어 가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하는 맘으로 쉬엄쉬엄 갔어도 우리 걸음으로 다섯 시간 반가량 걸려 백록담에 12시 10분에 도착했다. 백두산에는 2008년에 오르고(그땐 북한정부측에서 지프차로 실어다주었다) 오늘 드디어 한라산에 올랐다.
저 아래 백록담엔 겨우 물이 한두 바가지 쯤으로 말라있었는데 분화구 바닥까지 내려가는 게 금지되어 있었다. 한라산 백록담 1950m 정상을 디딘 사실이 우리를 충분히 감격케 했다. 백록담이 새겨진 돌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30분은 줄을 서야했다.
내려가는 길은 관음사 길로 잡았다. 산봉우리며 능선, 멀리 소라도 풀을 뜯길 분지에 파란 풀 밭과 암석 봉우리며 단풍 그것과 어울리는 고사목 그쪽으로 하산길을 잡은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그런데 단풍 구경에 홀려 하산 시간이 지체되며 보스코의 조급증이 시작되었다.
올라온 길이 9.6km 내려가는 길이 8.7Km 총 18.3Km에서 나머지 3km를 놔두고 그의 다리가 풀리고 오를 때 길보다 더 험한 길에 질리고 자꾸 미끄러지더니 허벅다리에 쥐가 난다며 걸음이 무척 느려졌다. 이 산속에서 어찌나 걱정이 됐던지 성모송을 한번 바친다.
(2008년 9월 23일 백두산 장군봉 아래서)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5033
‘도움이신 마리아’께서 참 할 일이 많으실 텐데도, 그가 성모송을 마치자마자 관음사입구에서 대피소까지 짐을 실어 나르는 모노레일이 저만치 숨속에서 멈춰섰다. 다리가 풀려 못 걷는 (일산에서 왔다는) 아줌마를 싣기에 보스코의 사정도 얘기했더니 그의 나이를 듣고서는 모노레일에 실어줘 3Km거리를 무사히 실어 보냈다.
그가 엉기다 가버리니 그 화산석 돌길을 나 혼자 달리듯이 내려갈 수 있었다. 핸폰 배터리도 떨어져 손전등도 못 켜고 이미 사방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사물을 구분하기 힘든 밤길을 달리다시피 내려가며 함께 내려가던 국립공원 아저씨와 주고받은 말. “뭔 아줌마가 그렇게 잘 걸어요?” “지리산 ‘날녀’ 아닙니까?” “웬 남자가 마누라를 버려두고 혼자 타고 간데요?” “늙었잖아요? 그는 다리에 쥐가 났다구요.” “왜 그렇게 늙은이와 사시오?” “제 나이도 예순여덟이라오.” “난 쉰 갓넘은 후췬가 했네.”
하지만 ‘도움이신 마리아’께서 정작 도와주신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 어둠 속에 불도 없이 돌서들길 한 시간반을 달려 내려오고서도 멀쩡했으니 말이다. 그 일산아줌마 세 가족과 우리 둘이 2만원에 택시를 합승하여 성판암까지 돌아가 거기 주차해둔 우리 렌트카를 타고서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 여덟시. 열네 시간만의 귀환이었다. 한라산은 크다!
- 20171017_131909.jpg (119.1KB)(7)
- 20171017_151645.jpg (144.7KB)(9)
- IMG_2591.JPG (126.5KB)(12)
- IMG_2631.JPG (106.0KB)(7)
- IMG_2642.JPG (184.0KB)(8)
- IMG_2661.JPG (239.6KB)(8)
- IMG_2671.JPG (119.4KB)(6)
- IMG_2672.JPG (159.4KB)(7)
- IMG_2685.JPG (197.5KB)(5)
- IMG_2687.JPG (151.6KB)(5)
- IMG_2718.JPG (163.3KB)(4)
- IMG_2722.JPG (122.2KB)(9)
- IMG_2729.JPG (146.1KB)(10)
- IMG_2828.JPG (133.6KB)(5)
- IMG_2833.JPG (369.4KB)(8)
- 20171017_125708.jpg (115.3KB)(5)
- IMG_2822.JPG (182.8KB)(4)
- DSC05232.jpg (154.3KB)(6)
- 2017-10-17 23.43.39.jpg (171.2KB)(10)
- 2017-10-17 23.46.12.jpg (137.3KB)(6)
- 2729.JPG (104.9KB)(7)
왠 절식이라요?
암튼 대단하신 인내우다. 왕년에(69년 ~)제주도청 근무할때의 연가를 들은것 같은 기분입니다.
건강관리 잘해 주시고 굼기지는 말아 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