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5일 일요일, 맑음


9시 어린이미사에서 악다구니로 성가를 부르는 댓살짜리 꼬마가 있다. 주님을 찬양하는 건지 소리쳐 나를 알아달라고 호소하는지.... 다른 성당이면 신부님이 행여 나무랄까봐 교우들이 마음조릴 텐데 우리 신부님은 어린이들과 함께 신난다. 저런 태평을 보다 못해 어느 동료사제가 “‘애들은 떠들어도 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라고 일침을 놓더라지만 우이성당 신부님은 미사 중에도 애들과 사이좋게 노는 모습이 나는 되레 좋다. 그분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신앙으로 올곧게 커주기만 바라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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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내내 장난질에 딴전이지만, 유치원이나 다닐까 하는 애들도, 성가만 나오면 음정도 가사도 정확히 따라부르는 걸 보면 재들이 자라서 중고등부에 나오고 청년부에 들어가고 어른이 되어서는 각종 신심회나 사목회를 구성하는 열성신자가 되지 않겠는가


요는 부모다. 어떻게든 주일미사에는 나가게 독려하는 일은 신앙을 물려주는 첩경이다. ‘커서 알아서 성당다니겠지하는 책임회피는, 가톨릭교회가 교적상으로 550만 신자를 자랑하는데 정작 정부의 인구조사(2017)에서는 380만명으로 나타나는, 170만이 ‘내가 세례는 받았는지 모르지만 난 가톨릭신자가 아니오!’라고 선언하는 결과를 빚는다.


모처럼 나란히 성당가는 보스코와 빵기 (부자가 O자로 휘어진 다리까지 딱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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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미사가 끝나면 자모회에서 아이들에게 아침을 마련해준다 오늘 메뉴는 햄버거. 다들 신나서 폴짝 뛰는데 어떤 아이는 엄마가 햄버거 먹으면 병 걸린다고 먹지 말랬어요라고 능청을 떤다. 그러다 크게 한 입을 베어 먹고서는 맛있게 먹는다. 역시 어린이는 어린이다. ‘하늘나라가 쟤들 것이다아이들의 언행은 기상천외할수록 사랑스럽고 대견하다. 저런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손주들 생각도 나고 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보내온 큰손주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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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딩 5학년, 의젓한 큰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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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가 방콕으로 한 주간 출장을 간다고 가방을 싸고 그곳에서 만날 이들에게 줄 선물들을 챙기며 부산스럽다. 그런 중에도 작은놈 먹을 파김치, 깻잎김치, 장아찌, 새우젓 등을 좀 마련해달라고 챙긴다. 내 아기가 아기를 얻자 어미인 나는 아기를 잃었다. 걔는 이제 더는 아이가 아닌, 호칭도 애아범이니까


우리 부부가 미루네 효소절식후 보식을 하느라 밥 한끼 못 차려 주다가(저도 끼니마다 밖에서 회식이 있긴 했지만) 오늘 점심에야 밥상을 차려주었다, '애아범' 먹이라고 미루가 보낸 굴비를 구워서.... 보스코의 보식에 맞추어 싱겁고 소박하게....


옛말에 이사 나간 집 같다라는 말이 있다. ‘총체적으로 어수선하다는 말이다. 박총각이 이사 나가고나서 벽장에는 50개는 족히 되는 옷걸이들이 쌓여 있고, 이불장 안에는 그 동안 선참집사들이 두고간 이불 요가 가득하다. 습기를 말리기 위해 보스코가 이층으로 들고 올라가 테라스에 종일 해바라기를 시키고 나는 세탁기를 돌리고 또 돌렸다. 총각 때는 벽장에 있는 낡은 이불 요를 쓰다가 장가를 가면 색시가 마련해온 새이불을 덮으면서 침상의 신분상승을 하므로 쓰던 이불은, 구렁이 껍질 벗듯, 다 이 집에 놓고 떠난 참이다.


오늘 모두가 올려다보았을 가을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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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의 옷수집함에 솜이불, 베개, 방석만 안 된다니 우리집 꺼는 다 수거 대상이 된다. 저렇게 살아온 세월과 사연과 엉킨 이불을 버리듯 어렵고 힘든 시간 다 잊어버리고, 우리집에서 살다간 집사들 다 행복하기를!


점심 먹고 빵기를 수락산 터미널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 집안을 정리한다. 저녁이 되자 북한산 위의 구름이 신비스로울만큼 화려하다. 여름도 가고 가을도 중반을 넘으니 산도 구름도 바쁜가보다, 떠나기 전 할 일이 많아서...


알프스 마리오가 보내준 산마르티노의 가을(산악전투 전몰자를 기념하여 세워진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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