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4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내 카메라에서 사진을 옮기던 보스코가 사진기에 에러가 나 안 옮겨진단다. 어제 내가 진 죄가 있어 빨리 고쳐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라스 난간에 뱁새가 노란 배를 보이며 우리 방을 들여다보던 모습이 너무 귀여워 급하게 사진기를 집어들다 그만 마룻바닥에 떨어뜨렸다. 얼른 사진을 찍어보고 켜고 끄기를 거듭해 보았지만 별일이 없었는데? 빵기가 손을 봐도 안 되길래 서둘러 남대문 시장 안에 있는 캐논 AS센터로 갔다. 내일은 일요일, 모레는 제주엘 가서 사흘을 지내야 하고, 오늘 12시에는 박총각 이사 짐을 실으러 차도 올 꺼고... 마음이 바빴다.


뜨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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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A/S 기사님은 카메라를 열어보고는 사진이 너무 많이 저장되어 작동이 안됐단다. 무려 9400장이 저장되어 있다니 지난여름 내내 찍은 사진을 보스코가 하나도 안 지웠다는 말. 창피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지난번엔 스크린에 화면이 안 떠 찾아갔더니 작동미숙이라며 만지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나이든 사람들이 카메라 다루는 행태가 딱해 보일 게다.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오니 총각의 짐은 대문 앞 골목에 들려나와 용달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난한 총각의 짐은 그 면면만으로도 보는 이를 서글프게 한다. 같은 용달차 아저씨에게 이곱번째 이삿짐을 맡긴 참이란다. 거의 해마다 이사를 다녔단다.


우리집 제4대 집사로서 다음 달엔 제주도에 가서 몇 달을 있다 와야 하기에, 겨울 추운 날에 우리집을 그냥 버려두고 다니는 게 부담스러웠나 보다. 어깨를 다친 박총각한테 짐 나르는 일을 도우러 온 형제 총각들도 다들 옥탑방에 산단다. 형은 전세 3000에 월세 10만원, 동생은 전세 200020, 박총각이 얻어가는 곳은 전세 2000에 월세 15. 셋이 모두 자유업으로 하나는 3개월간 전국 자전거투어를, 동생은 몇 달간 인도여행을 떠난단다. 셋 모두 자유로운 영혼들이어서 아름답다.


제4대 집사의 때이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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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이 다들 이러지는 않는다. 부모에게 전셋집을 얻어 달라거나 집을 사달라며 끝없는 부담을 주곤 하지만 이들은 일찌감치 자기 삶에 자유와 독립을 선언한 젊은이들이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훨훨 날아보고, 가고 싶은 세계를 넘나드는 건 젊음만의 특권이다.


박총각의 이삿짐이 떠나고 난 다음 집을 둘러보았다. 젊음이가 자던 침대는 받침 6개의 다리 중에 3개가 부러져서 없고 상자로 받쳐 마트라스를 올려놓아 가운데가 불룩 솟아올라 있다. 어떻게 저기서 잠을 잤을까? 지난 봄 새로 단장한 화장실은 그 6개월 만에 한 10년 넘게 쓴 화장실 같다. 하기야 쭈그리고 앉아 화장실 바닥을 청소할 사내애들이 하나나 있을까? (있다! 있다면 캐나다에 가 계신 문교수님 딱 한 분!)


엽이도 그때마다 엄마가 올라와 시집살이를 했었다. 사내아이들은 내 것, 내 집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가 장가가서 한 여자에게 묶여야 비로소 둥지개념이 생기고 퇴근길에 처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듯하다. 그러니 집안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청소하던 송총각이나 손총각 같은 사람들이 되레 희귀종이었나 보다.


우선 수유시장 건너편 가구점에 가서 침대 다리 7개를 5000원에 사오고, 화장실 청소용 강력세제를 샀다. 화장실 샤워 커틴은 락스와 세제를 풀어 담그고, 바닥은 양껏 세제를 뿌려 놓았다가 수세미로 문질러 두어 시간 박박 닦았다. 곰팡이 난 쪽방도 도배를 해야겠다.


화장실 대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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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할 풀이 필요하다니까 이사간 박총각이 밤늦게 자기가 쑨 풀을 가져다 주었다. 멀쭉하게 큰 키에 얇은 옷, 추운 날씨에도 7부바지, 늘 고무 슬리퍼에 일년내 맨발의 이 젊은이를 보면 가슴이 싸~ 아려온다. 하지만 타인의 보살핌보다 자유를 찾아 떠난 길이니 부디 행복하거라빌어준다.


빵기가 밤늦게 와서 망가진 침대 다리를 고쳤다. 제네바에서도 집안의 모든 가구를 이케아에서 사다가 혼자서 조립하는 고수라서 엄마가 이래저래 잔소리를 하니 엄마는 가셔서 책 보시는 게 도와주는 일이란다


자기는 엄마 닮아 전씨 집안 피를 받은 현실수용주의자, 아우 빵고는 성씨쪽 피가 섞여 원칙주의자인데, 아빠는 이것저것 달관한 수도승’(이상주의자? 무능력자?)이란다. 이렇게 다양한 품성의 세 남자가 한 집안에 살다보니 늘 심심치 않다는 큰아들의 가문평.


얼어죽은 감나무 곁가지가 실하게 살아남아 실하게 단감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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