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7일 토요일 맑음


아침 기도를 하고 있는데 2층 뒷문을 누가 세차게 두드린다. 뒷문을 두드리는 건 아래층 사람을 성가시게 않으려는 시골 분들의 배려다. 드물댁이 아침 일찍 텃밭에 와서 배추 속에 배추벌레와 달팽이를 잡고서 쪽파를 심으려는데 도대체 내가 대가리를 안 내밀어' 문을 두드렸단다


아줌마는 문맹이다. 어려서 오라비들은 다 배웠는데 (초등학교를 나와 자기 이름자 석자 쓰고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에 숫자만 셀 줄 알면 사는데 별 지장도 없고 더 알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게 시골생활이다.) 당신은 가이나라고 아예 학교 문턱넘어볼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단다.


그래도 살면서 입으로 열까지 세는 법은 익혔다. 돈을 주면 10장인 것은 헤아리는데 그게 5000원짜리인지 50000원짜리인지는 구분이 어렵다. 퍼런 돈뻘건 돈은 구분하기에 내가 아줌마를 불러 일을 시키고서 돈을 드릴 때는 아줌마가 좋아하는 퍼런 돈으로 한 장씩 세가며 드린다. 그 다음 내가 얼마 드렸느냐 물으면 "퍼런 걸로 다섯 개 줬어" 한다. 내 보기에도 답답해 그니에게 글을 가르치려 했더니만 "일 없다. 그거 배울 시간 있으면 그림 맞추는 화투를 치겠다."고 거절한다. 10원짜리 고스톱판은 겨우내 마을 회관 아낙들의 유일한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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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뽑아 말린 쪽파를 내드리니 싹과 뿌리를 잘라 텃밭 빈자리마다 가득가득 꽂아 놓았다. 심고 남은 건 아랫집 소담정에 주려고 했는데 아줌마는 아래 텃밭에 다 심고 "땅 남았는데 와 남주노!"라며 집 앞 꽃밭 꽃진 자리에까지 더 심겠단다. 저 많은 쪽파는 파김치를 잘 먹는 우리 작은 손주에게 파김치를 담아 보내고 그래도 남으면 함양 오일장에 이고 나갈 생각이다. 겨우내 휴천재를 발갛게 물들여줄 포인세티아 화분들도 아줌마랑 함께 집안에 들여놓았다. 


아줌마가 이렇게 쪽파욕심을 부리는 것은 올 가을부터 인건비와 씨앗 값은 내가 내고 작물은 두 집에서 똑같이 나누기로 약조한 다음부터다. 텃밭이 전혀 없는 아줌마는 주인이 멀리 사는 산비탈 자갈밭을 손수 일궈 감자며 양파 배추를 키우는데 퇴비랑 물뿌리개에 물까지 채워들고 오르내리는 고생을 수년간 해왔던 터에 줏어 먹고 싶을 정도로 비옥한우리 땅을 손수 가꾸니 만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시단다. '내가 부칠 내 땅을 갖는 기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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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는 텃밭에서 쪽파를 심고 나는 분홍 달맞이 꽃이 진 자리에 이번 여름 스위스에서 사온 튤립을 심었다. 보스코가 땅을 괭이로 파고 상토와 퇴비를 섞어 튤립구근들에게 맛있는 밥을 마련했다


아침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나갈 준비를 했지만 때를 놓지면 안 돼는 일이 끝나질 않아 1시를 훌쩍 넘겼다오늘 산청 성심원 글라라의 집에서 1시부터 지리산 디톡스 요법즉 팔보 효소 절식을 시작하는 날인데 팔보효소의 대표인 미루의 개막연설을 놓치고 4시에 시작하는 둘레길 걷기시간에야 겨우 도착했다


두어시간 둘레길을 걷고 나니 땀이 흠뻑. 모인 이들 중에는 3년전 정하상교육관에서 함께 효소절식을 했던 소피아씨가 먼저와 있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지난번 보스코의 서울 강연(상담심리종사자들)에도 왔다가 우리에게 준 조그만 선물만 전해 받고 못 봤는데 너무나 반가웠다. 이렇게 해서라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이라 하나보다. 휴천재일기펜이라니 살아가는 내 걸음걸이가 갈지자가 안 되도록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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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단식으로 들어가 저녁으로는 효소 한잔에 연꽃차 한잔! 밥도 안 하고 안 먹으니 갑자기 이슬 마시고 사는 들꽃이나 신선이 된 기분. 구름위에 앉아 사파세계의 먹고 마시고 싸대는 불쌍한 중생을 내려다보는 신선 말이다.


보스코는 내가 타 준 효소잔을 들여다보고 얼마나 가련하고 슬픈 표정을 하는지! 자기는 어려서 못 먹고 자랐고 더구나 인공시대엔 꽁보리밥만 먹어서 이젠 잡곡밥도 싫고 꽁보리밥집은 더 싫단다. 3년전 마누라 등살에 마지못해 단식하러 온 부자가 있었는데, 효소랑 함초를 다 버려두고 마누라 몰래 딴 것만 먹고 있었다. 보스코가 어디 무엇을 감춰두고 몰래 먹지 않나 잘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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