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3일 화요일, 맑음


"여보, 당신 결혼을 축하해, 44주년이야" 매해 듣는 이야기다. ‘그렇구나. 오늘은 내가 누군가와 결혼한 날로 축하받아야 하고, 그것도 44번이나....’ 그렇다고 선물도 외식도 없다. 그걸 따져서 뭐하랴,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큰 선물인 걸? 외식도 필요 없다, 요리사가 집에 와 있으니 그것으로 됐단다. 처녀 하나 데려오니 그렇게나 편한 게 많아서 좋더라는, 44년 결혼생활에 대한 보스코의 촌평. 이것이 전부다.


영원이외삼촌장례미사가 8시에 일산 마두동성당에서 있어 오빠랑 함께 도시외곽순환 도로를 의정부 쪽으로 달렸다. 북한산 뒤통수가 보이는 길이다. 우리집에서 보는 앞모습에 비해 북한산의 뒤통수는 참 못생겼다.


북한산(삼각산)의 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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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속에서 담담하게 들려준 오빠 인생의 무거운 처지를 듣고서, 오늘 관속에 누워 당신의 장례미사를 치르는 외삼촌은 우리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인생의 시시비비와 오빠의 어려움을 두고 우리에게 뭐라고 하실까?


우리가 도착한 시간과 비슷하게 운구 행렬이 성당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은 마두동 교우들이 우리 외삼촌의 장례미사에 참석했고 미사 중에 노래를 불러준 성가대의 성가도 좋았다. 신부님의 차분한 모습과 엄숙한 미사집전과 강론은 성당이라곤 처음 온 우리 친척들 모두에게 참 설득력 있고 경건하게 받아들여졌다. 죽은이들을 함께 동반하는 '연령회'의 헌신적 봉사는 가톨릭교회의 커다란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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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인이 두 다리를 쭉 뻗고 아주 편하게 누워 계시는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딘가 떠나온 그곳, 우리 모두가 떠나온 곳이 있다는 표현이다. 이 땅에서 누구는 돈을, 누구는 명예를, 누구는 쾌락이나 그 외에 여러가지를 추구할지라도 이곳은 우리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라고, 언젠가 떠나온 어딘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언제 우리가 누구 앞에서 저렇게 다리 뻗고 편하게 누워 본 적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눕지 않을까?”


고인도 건강만 아니라 사업상의 걱정과 인생의 파란만장한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힘든 상황에서 영원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의 선언이 죽음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다리 쭉 펴고 돌아갈 날이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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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나고 사제가 관에 성수를 뿌리고 분향을 하고 두 손을 합장하여 간절한 고별식으로 고인을 보내드리며, 그 몸을 땅속에 묻어, 신체로 빛어지기 이전의 흙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보면, 삶이란 참 거룩하다. 그리고 죽음은 더 거룩하다. 거룩하신 하느님이 사람의 삶과 죽음을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미루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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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호천이 호연이 삼형제는 외삼촌의 장지까지 가고 우리는 할 일이 많아 집으로 돌아와서 어제 자르던 마당의 풀과 나무를 마저 손질하고 지리산 내려갈 짐을 챙겼다. 430분 용인에 있는, 우리 귀요미 미루네집에 도착했다. 추석이라 미루 이사야와 두 아들 푸코와 안셀모, 네 식구가 다 모여 있었다


미루는 우리 결혼 44주년 잔치를 차려놓고서 우리를 맞았다. 내가 좋아하는 꽃게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2년 전에 함께 갔던 이탈리아 곳곳과 만난 이들을 일일히 물어보더니 "어째, 내가 없으니 심심 했쥬?"로 마감을 하여 "그래, 미루가 없어 정말 재미없었어."라는 대답을 받아낸다


8시 평택, 막내 교장선생님댁에는 찬성이 서방님, 하준이네 가족, 하빈네 가족이 저녁을 먹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들은 뛰놀고, 여자들은 수다를 떨고, 남자들은 JTBC뉴스를 보며 중앙정보부에 욕폭탄을 투하하고, 민주당에서 나간 국민의당 호남인 정치인들 면면에 촌평을 가하면서 결국 인이네 정부가 잘돼야 한다는 축원을 모으고 있어 우리 친정집 꼴통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성씨집안에 시집온 여자들은 "뭐야, 이 집안 사람들 몽땅 좌빨들 아냐?"로 싫지 않은 결론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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