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일 일요일,


어제 밤12, 제네바에서 잠깨어 24시간 만에 서울집에서 잠들고 오늘아침 6시에 일어났으니까 시차적응이 제대로 되었다. 우리 둘 다 파스타에 버터 치즈로 3, 4킬로씩은 몸이 불어나 티벳 요가라도 쉬지 말고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우리 보스코는 막달의 새댁처럼 살살 걷고 몸조심해야 한다. ‘어떻게 생긴 밴데...’ ‘빠질까봐 걱정이셔...’ 그렇게 실실 놀려도 속 좋은 보스코를 바라보는 내 시선 한켠에서는 그래, 늙으면 마른 사람보다 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 산다더라.’는 마누라 심뽀거나 꼴찌면 어떠냐! 건강하게만 자라다오.’하는 엄마 맘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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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미사엘 갔다. ‘어린이 미사다운건 어린이들뿐 아니라 제대에서 앞자리에 앉은 아이들과 끊임없이 눈짓손짓을 주고받는 신부님 표정이고,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만면에 미소를 띠는 노인들의 얼굴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즐겨 이 시간 미사에 나오는 까닭은 교중미사는 엄숙하기만 한 예식임에 비해서 어린이 미사는 즐거운 축제이기 때문이다. 하느님도 "그래, 잘들 논다."하시며 흐뭇하신 표정일 게다.


미사가 끝나고 그동안 못 만난 북한산을 보려고 성당 테라스엘 나가보니 당신들이 구원하셔야 할 속세를 내려다보는 성가정 성상의 크기가 교우들 믿음의 순서대로다. 당연 예수님 체구가 1, 성모님이 2, 3등의 성요셉은 어디서나 그렇듯 체소하고 늙고 쇠진한 모습.... 이층 홀에서는 짜글짜글 주름투성이 90대 할머니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20대 젊은 처녀의 성상 앞에서 연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라고 중얼거리며 간절한 얼굴로 묵주알을 돌리고 있다. 개신교에서 성모님께 워낙 자리를 안 내드려 그렇지 가톨릭만 보면 성모님 자리, 어머니 자리가 참 크다. 할머니 손의 저 로사리오만 해도 주기도문 다섯 번에 성모송은 쉰 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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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마루에 있는 김치 냉장고를 석 달 만에 열었더니 아뿔싸! 냉동실은 녹아 물구덩이가 되고 냉장실은 뜨뜻한 온장고로 변했다! 박총각에게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얼마 전부터 그랬노라고, 나름대로 껐다 켰다를 해 보았노라는 대답. 집주인한테 연락하거나 기사를 불러 수리해주길 바랐다면 내 욕심이 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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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천이에게서, 큰외삼촌(영원이삼촌)이 많이 편찮으셔서 오늘 내일 하신다는 소식을 받았다. 내 외사촌 혜경이의 주선으로 영세를 받으신 소식과 환자의 누님들(90)이 다녀가신 사진도 보내왔다. 일산 가좌동 신부님이 오셔서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셨는데(외숙모께서 15년전 돌아가시면서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받으셨다) 대부는 막내이모부가 섰단다. 외할머니께서 106세로 돌아가실 적에 대세를 받으시게 하자던 주변 의견에 단호하게 반대하시던 외삼촌이 당신의 영세를 너무 흔쾌하게 수락하셔서 모두가 놀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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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병실에 들어가니 외삼촌은 죽음의 언덕을 힘겹게 오르며 가쁜 숨을 헐떡이고 계셨다. 병상 곁에는 큰아들 종상이와 올케, 병실밖에는 후처로 들어오신 외숙모가 마지막을 지키는 중이었다


함께 간 우리 막내 호연이(장로)와 올케(권사)가 기도를 해드리고, 보스코는 기도서에 나온 기도문을 나와 함께 바친 뒤 외삼촌의 손을 잡고 귀에 대고 뭔가 속삭이고 있었다. “세 아들, 세 며느리, 여섯 손주를 축복하고 가세요. 맘에 걸리는 사람들은 다 풀어주시고요. 조금 뒤 눈감았다 번쩍 뜨시면 외삼촌의 다정했던 분들이 외삼촌을 맞아주실 거에요.” 의식이 뚜렷한 환자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하고 뭔가 한 마디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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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위독하면 연락하라던 가좌동 신부님께서 급히 오셔서 전대사 강복을 주고 가셨다. 보스코의 주선대로 우리 각자가 돌아가며 삼촌께 고별인사를 드렸다. “삼촌, 오빠와 내가 대학 다닐 적에 우리집 사정을 알고 등록금을 대주시고(오빠는 외삼촌댁에서 얹혀살며 서울 유학을 했다), 주변머리 없던 시골 중학교 교장 집안을 물심양면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한 시간 후 외삼촌 조영원 요셉(85)은 먼저 가 당신을 기다리는 모친과 아내 그리고 세 매형(우리가 장례에 참석한 분만 해도)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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