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8일 금요일, 맑음


오늘은 하루쯤 쉬며 나는 책도 읽고 보스코는 경향잡지에 게재할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마리오가 전화를 했다. 오늘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비가 온다니까 오늘 파쏘 곱베라(Passo Gobbera)에 가서 산중턱의 산실베스트로 경당(Chiesetta di San Silvestro)엘 가잔다. 부지런히 간식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트란스아콰(Transacqua)에서도 멀리 산중턱에 보이는 성지인데 초세기 교황 실베스텔 성인을 경배하다가 12세기에 저 경당이 지어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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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베라(Passo Gobbera)는 위의 협곡에서 아래 평원으로 넘어오는 고갯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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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해마다 51일 하루에는 경당문이 열리고 계곡에 있는 여남은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서 행렬을 하고 축제를 지낸단다. 우리가 오늘 걸은 산그늘의 좁다란 산길이 그날은 수천 명 인파로 가득하단다. 오가는 길이 아름답다고 오던 날부터 마리오가 가보자던 곳이다.


오늘은 프리미에로-산마르티노 자동차 경주가 있는 날이라 전세계에서 모인 경주차들이 사방에서 붕붕거리더니 프리미에로와 파쏘 고베라 산길 경주가 아침 내내 골짜기를 울렸다. 내일은 프리미에로에서 산마르티노까지 올라가는 경주가 벌어진단다. 정해진 거리를 차마다 제각기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각을 재어 등수를 매긴단다. 경주차가 경주차를 추월하는 경기는 스타디움에서나 보는 광경이고 외가닥 산복도로에서 그러다간 선수들 다 죽을 게다. 어딜 가도 전설이 있고 가족과 친구들과 엉킨 추억이 있어 이 골짜기 사람들도 고향을 못 떠나고 늙어 죽고, 떠났던 사람들도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산란기의 연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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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홀로 돌아온 에르미니오는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마리오에게 물으니 아내가 있는 뉴욕에서도 그 집에선 아무도 요리를 할 줄 몰라. 식당에서 하루 세 끼를 떼우더라고. 어느 핸가 추수감사절에 뉴욕에 가 있었는데 모처럼 요리를 하려는지 형수가 칠면조 요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나한테 물어오더라니까. 아니, 내가 칠면조 먹는 구경도 못했는데 요리를 뭐 알겠어?’ 산도 바다도 싫고 뉴욕 시내의 문화생활에만 익숙한 뉴요커를 아내로 둔 터이고, 어느 핸가 모처럼 알프스에서 한 달 지내겠다고 따라오더니 일주일도 못돼서 돌아 가버리더란다. 부부가 같은 가치관과 취미를 갖는 것은 외롭지 않은 노후를 맞는 첫째 조건이리라.


산실베스트로 경당에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며 알프스 대자연의 적막을 사정없이 유린하는 카레이서들의 질주와 소음을 들으며 마리오네 집으로 돌아가 혼자 먹기가 심심한마리오와 파스타 페스토를 함께 해 먹고 치즈와 샐러드 살루미로 점심을 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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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마리오를 만나면 그의 첫아내 세레나에 대한 추억을 일부러 끄집어내곤 한다. 오늘은 세레나를 어떻게 처음 만났나?’를 물었다. 세레나에 대한 애기를 할 때 그의 눈이 가장 빛나고 그의 어조가 제일 신바람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학을 나와서 첫 직장을 구해 면접을 보러 로마 브리테인스쿨에 갔을 적에 문을 열어주는 비서에게 첫눈에 넋을 잃고 말았단다. 집에 돌아와 직장과 면담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오늘 만난 아가씨가 얼마나 예뻤는지만 얘기하고 또 했단다.


그 처녀를 보려고 그곳에 취직해서 직장을 다니며 그동안 사귀던 숱한 아가씨를 다 정리하고(모델을 하는 작은아들 플라비오가 바람둥이였던 것은 자기를 닮아서라는 자부심) 세레나에게 전력투구했단다. 둘 다 알리탈리아로 옮겨 근무하다 파리에서 있던 항공사간 친목 파티에서 세레나가 퀸으로 뽑히고 15일간 아프리카 여행 상품권을 받자 기회가 왔다. 세레나의 엄마가 처녀 혼자는 못 보내니 딸과 동행하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그런 절호의 찬스를 어느 총각이 마다했겠는가?


그 여행 후 둘은 결혼을 했고 둘 다 알리탈리아 직원으로 아이 없던 8년 간 원 없이, 공짜로, 신나게 세계를 누비고 다녔단다. 그때의 아름답던 추억을 되뇌이며 세레나가 먼저 간 아픈 세월을 혼자 견뎌냈을 게다. 누구에게나 힘든 세월을 견뎌내는 비장의 러브스토리가 있는 법. 사람은 사랑이기에 사랑으로 살아가고 사랑의 추억으로 삶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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