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7일 월요일, 맑음


비라도 한줄기 쏟아져줬으면 좋겠다. 검푸른 하늘은 바르셀로나 바다가 그대로 비치는 거울이다. 아마 요즘 서울의 더위가 바로 이럴게다. 새벽 2시까지 일기를 쓰고는 궁금할 친구들을 위해 (사실 또 사고치지 않았나 걱정할부지런히 사진과 일기를 올렸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그때서야 어제 빵 사오는 걸 잊었음을 알았다. 점심먹을 빵도 준비해야 되서 빵집엘 갔다. 가는 길에 보니 엊저녁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떠들던 자리는 휑덩그레하고 썰렁하다.


화려한 바르셀라에서도 서민지역이어선지 이 동네는 거의 몇 집 건너 구멍가게가 하나씩 있다. 사람이 그만큼 많든지, 그만큼 먹고 살기가 힘들든지 둘 중 하나겠다. 고단한 삶은 제3세계 모든 민중이 골고루 등에 진 십자가다. 가게에서 파는 과일이나 채소도 다듬어 먹기에도 성가실만큼 쳐진 것들이어서 그만큼 싼값을 찾는 손님들의 요구에 맞춘 셈이다. 삶을 하늘이 주신, 무슨 수로도 살아내야 하는 숙제로 여기고 오늘 하루를 연명하는 게 우리 아닌가? 내일 죽음이 온다 해도, 본인이나 주변 몇몇이 안타까워 할뿐인 숙명이라 해도, 부유한 스페인에 와서 그래도 안도감을 갖는, 3세계인들의 하루하루가 눈에 선하다.


크기변환_IMG_3929.JPG


                     크기변환_20170807_130242.jpg                    


크기변환_20170807_130003.jpg


우리가 숙박하는 집에서 전철로 한 정거장 지나, 그러니까 람블라거리(La Rambla) 맨 끝 바닷가에 거대하고 드높은 콜럼부스 동상(Estatua de Colom)이 있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5세에게 신대륙을 발견했노라는 소식을 전한 일을 기리기 위해 1888바르셀로나 엑스포 때 세운 기념탑이란다. 높이 60m의 기둥 위에서 7.2m의 콜럼부스가 바다를 향해 팔을 쭈욱 뻗치고 있다


누굴 놀리는 이탈리아말에 "아메리카라도 발견했냐?(Hai scoperto d’America?")라는 농담이 있지만, 총과 대포가 없는 다른 나라들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무수한 남미 원주민을 학살한 역사를 영화 미션으로 온 세상에 알려진 터에, 이곳 동상 밑에는 원주민 족장이 선교사 손에 감사의 키스를 바치는 형상으로 조각해 놓았다. ‘미션’(Mission)선교(宣敎)’라는 말이니 복음선교를 명분으로 총칼과 학살과 약탈을 앞세워 들어간 그리스도교 역사가 가소롭다


궬공원에서 

크기변환_20170807_150750.jpg


크기변환_20170807_144945.jpg 


크기변환_IMG_3974.JPG


                     크기변환_20170807_163722.jpg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카르멜 언덕위에 가우디가 만든 구엘 공원’(Parc Guell)엘 갔다. 거기도 헛걸음! 인터넷 예약을 안 했다고 내일 저녁 7시에나 오란다. 맥이 빠졌다. 아들이 예약해 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러가는 길에 가우디가 지은 까사 밀라’(Casa Mila: 일명 La Pedrera)까사 바트요’(Casa Batllo)를 바라보았다. 이 동네는 어디 가나 가우디로 먹고 사나보다.


크기변환_IMG_4044.JPG


크기변환_IMG_4043.JPG 


                     크기변환_20170807_191656.jpg


크기변환_IMG_4055.JPG


              크기변환_IMG_4039.JPG


크기변환_IMG_4057.JPG


크기변환_IMG_4103.JPG


크기변환_IMG_4062.JPG


크기변환_IMG_4161.JPG


드디어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들어서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빛과 자연으로 건축된 거대한 성전은 인류가 창조주에게 바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는 찬탄이 저절로 나왔다


카탈루냐 출신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불과 26세에 설계하고 건축이 확정되어 무려 40년 이상을 이 건축에 매달리다 전철사고로 죽었다는데 착수한지 13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완성이 못됐고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에나 완공할 예정이어서 2010년 11월 7일에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성당축성을 앞당겼다. 우리나라처럼 반년, 일 년 안에 뚝딱 성당을 짓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유다인들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는 조롱일까, 현실일까?

크기변환_IMG_4094.JPG


크기변환_IMG_4015.JPG

서쪽 입구 조각(가우디 작품은 아니지만 메시지는 아주 강렬하다)

크기변환_IMG_4091.JPG


                     크기변환_20170807_195552_001.jpg


크기변환_IMG_4089.JPG


크기변환_IMG_4090.JPG


때마침 저녁햇살이 유난히 밝은 시각이어서 서쪽의 붉은 스테인글라스가 얼마나 찬란하며 성당안을 얼마나 골고루 빛이 나도는지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환하다. 동쪽 입구의 예수성탄 조각들은 목가적으로 평화롭지만 서쪽의 심각한 예수수난은 인류의 고난과 악을 부각시킨 조각이다. 한결같이 '진리가 무엇이오?' 하던 빌라도의 물음에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시오!'라는 가우디의 답변이 들어 있다. 보스코의 평으로는, 단테의 「신곡」만큼이나 진지한 신학적 해석이 담긴 건물이고 조각이고 배치여서 가우디는 '하느님의 건축가'라는 경칭이 합당한 인물이란다. 


동쪽 측면의 목가적 성탄 메시지 크기변환_IMG_4030.JPG


크기변환_20170807_195935.jpg


                     크기변환_20170807_195857.jpg


돌아오는 길에 람블라 거리에서 타파스’(tapas)라는 해물접시들을 배불리 먹고 전철 한 정거장쯤의 거리를 걸이서 집에 오니 자정이 넘었다. 우리 생체시계가 그새 남구의 태양 속에 야행성으로 변했다.  


                     크기변환_20170807_131426.jpg


크기변환_20170807_210500.jpg